2025/06 216

자위대의 확장과 안보 전략의 전환

자위대는 창설 이후 줄곧 애매한 지위에 머물렀다. 법적으로는 군대가 아니면서, 사실상 정규군과 같은 장비와 조직, 임무를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이중 구조는 1970년대 이후 더욱 뚜렷해진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안보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점진적 무장을 확대해나갔지만, 그 방식은 헌법 9조라는 제약 속에서 극히 정치적이고 점진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방위라는 이름 아래의 무장 확대1976년, 일본 정부는 처음으로 '방위계획의 대강(방위대강)'이라는 공식 방위 정책 문서를 수립한다. 여기서 핵심 원칙은 필요 최소한도의 방위력 유지와 비핵 삼원칙(보유하지 않고, 제조하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음)이었다. 하지만 이 문서가 시행되는 동안에도 자위대의 전력은 꾸준히 증강되었다.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사 2025.06.18

AI 시대 일본 반도체의 과제

일본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나 로직 반도체 같은 완성품 영역에서는 존재감을 잃었지만,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는 여전히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JSR, 도쿄응화공업 등 일본 기업들이 포토레지스트 전체 시장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호야와 AGC 두 회사가 EUV 마스크 블랭크 시장의 95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장비 분야에서 도쿄일렉트론은 ASML,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 이어 세계 3위 장비 기업으로 평가된다. 포토레지스트 외에도 CMP 슬러리와 실리콘 웨이퍼 등 주요 소재에서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는 신에츠화학과 섬코가 약 60퍼센트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이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반 기술을 지속적으로 보유하고 있음..

시사 2025.06.18

정부 주도의 한계: 민간 혁신 없는 일본의 반도체 굴기

2020년대 들어 일본은 다시 반도체 국가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라피더스(Rapidus) 설립을 시작으로, TSMC의 구마모토 공장 유치, 마이크론과 키옥시아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정부와 민간이 합작한 투자 총액은 일본 정부가 약 3.9조 엔의 재정 지원을 확보하며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라피더스(9,200억 엔), TSMC 구마모토 1·2공장(1조 2,000억 엔), 마이크론(1,920억 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2,430억 엔) 등 총 2조 5,550억 엔 규모의 지원이 확정된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산업 재건의 청사진이 완성된 듯 보인다.그러나 비판은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의 전략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제조설비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약 5..

시사 2025.06.18

재도약을 꿈꾸는 일본 반도체

한때 일본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절대 강자였다. 1987년 일본의 DRAM 시장점유율은 약 80%에 달했고, 1988년 전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약 50.3%로 정점을 찍었다. 1990년 기준 세계 반도체 기업 상위 10위 중 6개, 상위 20위 중 1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영광은 이제 산업 역사 속 한 페이지로만 남아 있다. 미일 반도체 협정의 충격 1986년 체결된 미일 반도체 협정은 일본 반도체 산업 쇠퇴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협정은 일본 기업들의 가격 덤핑을 문제 삼으며 체결되었고, 일본은 미국 정부가 설정한 최소 가격을 준수하고, 일본 내 외국 반도체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10%에서 20%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일본 칩 메이커들의 경쟁 우위를 즉시 무력화시켰다. ..

시사 2025.06.18

<마이 네임 2/2> K-콘텐츠와 글로벌 플랫폼

은 넷플릭스의 전략적 기획 아래 제작된 콘텐츠이며, K-드라마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2021년 10월 15일, 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었다. 총 8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의 편성 구조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플랫폼이 기획과 투자를 주도한, 이른바 ‘플랫폼 오리지널’이었다. 제작은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엔터테인먼트, 연출은 김진민 PD, 각본은 김바다 작가가 맡았다. 본편에 앞서, 1~3화는 같은 해 10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On Screen)’ 섹션을 통해 첫 공개되었다.넷플릭스는 연령 등급이나 심의 기준에서 국내 방송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강도 높은 액션 연출이나 폭력 수위가 가능하다...

드라마 2025.06.18

<마이 네임 1/2> 복수의 대가

복수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복수는 마지막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진다면, 여전히 정당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은 이 질문을 한 여성 인물의 행보를 통해 묻는다. 윤지우는 아버지를 죽인 이들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조직에 들어가고, 위장 신분으로 경찰에 잠입한다. 이 복수는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일까? 지우는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접근하며,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끝까지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존의 남성 복수극과 유사한 구조다. 아저씨의 차태식, 황해의 김구남처럼, 지우 역시 목적을 위해 자기파괴적 방식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윤지우는 개인적 고통에 머물지 않고, 복수의 정당성을 끝까지 의심받는..

드라마 2025.06.18

일본의 쌀 대란 - 비축미 방출에서 긴급 수입까지

2024년 여름 기록적인 고온으로 일본 벼 작황이 부진해지며, 쌀값이 전례 없이 급등했다. 2025년 6월 현재, 5kg 기준 평균 쌀값은 4,200엔대 중반으로, 1년 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일부 언론과 시민들 사이에선 이를 ‘레이와 쌀 소동’이라 부르며, 1993년 냉해로 인한 ‘헤이세이 쌀 대란’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단순한 기후 악화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가격은 계속 불안정하고, 수급 불균형이 반복되는 가운데 구조적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줄어드는 재배 면적, 고령화하는 농촌벼 재배 기반의 약화는 장기간 누적된 문제다. 벼 재배면적은 1969년 약 317만 헥타르였으나 2023년에는 120만 헥타르 수준으로 줄었다. 농업 인구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

시사 2025.06.17

디지털 후진국 일본

일본은 세계적으로 기술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지닌 나라다. 정밀 기계, 반도체 장비, 로봇 산업 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유지해왔고, 소니나 파나소닉처럼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브랜드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와 달리,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전환은 유난히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본 사회 내부에서조차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드러낸 디지털의 민낯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앞당긴 계기였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행정 시스템의 후진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확진자 정보의 집계 방식이었다. 2020년 당시 도쿄도와 일부 현에서는 보건소가 감염자 수를 팩스로 보고하고, 담당자가 일일이 손으로 엑셀 파일에 ..

시사 2025.06.17

아베노믹스의 착시 효과

2012년 말, 아베 신조가 총리직에 복귀하면서 내건 핵심 구호는 '강한 일본을 되찾자'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정책이 바로 아베노믹스다. 일본은행과 재무성의 긴밀한 조율 아래 진행된 이 정책은 통화완화, 재정확대, 구조개혁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며, 흔히 '세 개의 화살'로 불렸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확실한 반응이 있었다. 닛케이 지수가 급등했고, 엔화는 약세로 전환되었으며, 수출 대기업의 실적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 효과는 점차 희미해졌다. 왜 성과는 지속되지 못했을까. 왜 구조는 바뀌지 않았을까. 첫 번째 화살: 통화완화는 무제한으로 쏘아졌다 아베 정권 출범 직후, 일본은행은 2% 물가 목표를 설정하고 대규모 자산 매입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는 연간 60~70조 ..

시사 2025.06.17

멈춘 물가, 멈춘 심리: 디플레이션이라는 유령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가장 완고한 특징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이다. 물가 하락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기업 수익은 줄고, 임금은 오르지 않으며, 소비는 유보된다.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며 전체 경제가 수축한다. 일본은 이 악순환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도매물가가 하락했고, 버블 붕괴 후에는 기업과 가계 모두 긴축 기조로 전환했다. 기업은 손실 회복을 위해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자산가치 하락에 대비해 지출을 억제했다. 수요가 줄어들자 GDP 디플레이터 기준으로는 1993~94년,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는 1999년부터 본격적인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이 나타났다. 1990년부..

시사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