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7 12

기억, 꿈, 사상

은 칼 구스타프 융이 생의 말년에 구술한 자서전적 저작으로, 개인의 삶과 사상의 궤적이 조밀하게 얽혀 있는 고백록이다. 김영사 판본은 원서의 흐름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독자들이 융의 심리학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고민과 내면의 역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번역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며 스스로를 이해하려 하는지를 추적하는 일종의 ‘심리적 고백록’이다. 책은 융의 유년 시절과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곧 무의식과의 조우, 꿈의 탐색, 정신세계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환상과 신비 체험, ‘두 개의 인격’ 경험을 생생히 회고하며, 이러한 내적 경험이 후일 분석심리학 개념의 근간이 되었음을 밝힌다. 이는 이론이 실험실이 아닌 삶의 경..

서평 2025.06.07

칼 융 레드북

은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1913년부터 약 16년에 걸쳐 기록한 내면의 여정을 담은 저작으로, 분석심리학의 사상적 근원을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낸 텍스트다. 부글북스에서 출간된 한국어 판은 융이 손수 그린 도판과 원문 텍스트, 편집자 주석을 충실히 반영하여, 이 책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적 완성도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은 단순한 철학 에세이나 꿈 일기가 아니라, 무의식과의 생생한 대화이자, 현대 심리학의 신화적 창세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융이 심리적 위기 상태에서 무의식의 이미지와 상징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기록한 환상과 내적 대화의 기록이다. 융은 이 시기를 자신의 ‘창조적 질병’이라 불렀으며, 은 이 내면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의식적으로 따라가며, 거기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

서평 2025.06.07

아니마와 아니무스

는 분석심리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성별 원형(archetype of gender)을 다룬 칼 융과 융계 심리학자들의 주요 논문을 모은 책으로, 인간 정신 내면의 ‘이성적 자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한길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융 심리학의 실천적 응용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내서가 된다.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단지 남녀 간의 심리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타자’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자기(Self)에 도달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융은 남성의 무의식 속에 여성의 이미지, 즉 ‘아니마’가 자리잡고 있으며,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의 이미지인 ‘아니무스’가 있다고 본다. 이는 단지 성별의 대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

서평 2025.06.07

과학과 정신분석학

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이 자연과학적 탐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쓴 글들을 모은 저작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 단순한 치료 기법이 아닌, 인간 정신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존의 실증주의적 과학과는 다른 방식의 ‘정신의 과학’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열린책들 전집에서는 이 주제에 해당하는 다양한 논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철학, 생물학, 인문학과 교차하는 성격을 지닌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자연과학의 한 분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일관되게 이어갔다. 그는 정신분석이 의학, 생리학, 생물학적 조건에서 출발했으며, 관찰과 경험에 기초한 실험적 방법론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과학’은 단지 통계나 실험실 기반의 지식 ..

서평 2025.06.07

바가노바 아카데미와 현대 발레계의 변화

바가노바 아카데미의 교실에서 태어난 움직임이 런던, 뉴욕, 도쿄의 무대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이 전통적인 발레 교육 기관의 졸업생들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경을 초월한 예술의 언어에도 새로운 경계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가노바 메소드로 훈련받은 무용수들은 여전히 세계 발레계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바가노바 시스템: 제국의 유산에서 현대적 교육법으로 1738년 제정 러시아 시대에 설립된 황실무용학교는 20세기 초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의 혁신적인 교육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가노바의 저서 '클래식 무용의 기초'에는 당시의 발레학교 교사들에 ..

발레 2025.06.07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는 누구의 유산인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예술 교육 기관이지만, 그 정체성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28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이 기관은 제정 러시아의 황실 문화,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이념적 도구,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전략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을 차례로 보여왔다. 2024년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적 고립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서 바가노바 아카데미는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기관을 과연 누구의 유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후원하는 예술기관이 정치적 도구가 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문화적 딜레마다. 프랑스의 파리 오페라가 공화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영국 로열 발레가 왕실의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것처럼, ..

발레 2025.06.07

바가노바-마린스키: 287년을 이어온 예술 교육의 기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테아트랄나야 광장.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의 고풍스러운 건물 바로 건너편에는 마린스키 극장이 있다. 이 거리의 폭은 매우 좁지만, 그 사이에는 '교육'과 '공연'이 동시에 숨 쉬는 드문 예술 생태계가 펼쳐진다. 바가노바 아카데미 학생들은 교실 창문에서 마린스키 극장을 바라보며 꿈을 키운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매일 아침 창밖을 보면서 '언젠가 저기 무대에 설 거야'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이미 저는 그 무대를 밟고 있어요." 실제로 바가노바 학생들은 재학 중에도 마린스키 무대에서 공연 경험을 쌓는다. 바가노바 아카데미와 마린스키 극장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을 이루는 '몸'과 '무대'의 관계에 가깝다. 이 독특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러시아 발레 ..

발레 2025.06.07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 몸의 문법을 가르치는 학교

새벽 6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무용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용 그 자체를 만든다."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을 요약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문장은 드물다. 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른 새벽을 경험해봐야 한다. 새벽 6시, 로시야 거리의 붉은 벽돌 건물에서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기숙사 복도를 걸어가면 각국에서 온 학생들의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13세 카테리나는 벨라루스에서 왔고, 15세 유키는 일본에서, 17세 소피아는 미국에서 왔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몸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여기 있다. 카테리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매일 밤 울었다고 한다. "집이 그리워서가 아니었어요. 내가 너무 형편없다는 걸 매일 깨..

발레 2025.06.07

바가노바 메소드: 형식과 감정의 균형을 찾아서

발레를 본다는 것은 '형태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선과 균형 잡힌 동작이 음악의 흐름과 만날 때, 우리는 거기서 하나의 '문법'을 느끼게 된다. 바가노바 메소드는 바로 그 문법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훈련법은 단지 기계적 기술이나 근육의 제어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형식과 감정, 논리와 감성의 긴장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다. 혁명의 시대, 새로운 발레 교육법의 탄생 1930년대, 러시아 발레계는 격변의 한복판에 있었다. 차르 체제의 몰락과 함께 제국주의 발레 시대가 막을 내렸고,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는 예술에서도 '인민을 위한', '과학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 속에서 아그리피나 바가노바는 혁신적인 발레 교육 체계를 만들어냈다. 바가노바는 마린스키 극..

발레 2025.06.07

바가노바 아카데미: 혁명 속에서 살아남은 예술 교육

1921년, 페트로그라드.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황실의 문화 유산이 붕괴되던 시기, 한 무용 교사가 낡은 아카데미의 교실에 남았다. 그녀의 이름은 아그리피나 야코블레브나 바가노바(1879-1951). 전직 마린스키 발레단의 프리마였던 그녀는 당시로선 모순에 가까운 행보를 시작한다. 황실의 유산인 고전 발레를, 혁명의 이념과 결합해 보존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가노바는 1917년 마린스키 발레단을 떠나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녀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한 예술 교육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의 '번역'이었다—과거의 언어를 현재의 문법으로 다시 쓰는 일. 전통의 대전환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의 역사는 한 개인의 신념과 예술적 이상, 그리고 정권의 이념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되었다. 본래 이 학교는..

발레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