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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왜 민족을 열차에 실어 보냈을까

민족은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지만, 국가는 그 믿음을 배신으로 규정할 권리까지 갖고 있었습니다.1944년 2월, 체첸과 잉구시의 마을들에 소련군 트럭이 들어왔습니다. 주민들은 몇 시간 안에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고,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향했습니다. 같은 시기 크림반도의 타타르인들, 볼가강 유역의 독일계 주민들, 그리고 1937년에는 이미 소련 극동의 고려인 전체가 같은 방식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들의 죄목은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혈통이었습니다. 이송 과정과 정착 초기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한 체첸·잉구시인 사망률은 소련 공식 통계로도 20퍼센트대에 달했고, 독립 연구자들의 추정은 많게는 인구의 절반에 이릅니다. 소련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연대를 국시로 내걸었던 나라입니다. 마르크스에게 노..

칼럼 2026.07.14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토스카는 1900년 1월 14일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원래 예정된 초연일은 1월 13일이었지만, 아나키스트의 폭탄 위협 첩보 때문에 하루 연기되었죠. 이탈리아는 당시 파업과 정치적 긴장으로 사회 전체가 불안정한 상태였고, 몇 년 전 국왕 움베르토 1세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던 터라 객석에 앉은 마르게리타 왕비의 안전까지 우려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경찰은 지휘자 레오폴도 무뇨네에게 소요가 발생하면 왕실 행진곡을 연주해 객석을 진정시키라고 미리 주문해 두었을 정도였죠.공연은 무사히 끝났지만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비평가들은 고문과 살인 장면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 자체를 순수예술과 잔혹함의 부당한 결합이라며 불쾌해했습니다.푸치니가 이 소재를 택한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1889년 빅..

오페라 2026.07.12

갈리폴리 전투의 교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이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오스만 제국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수십 척의 전함으로 대서양과 지중해를 지배하던 영국 해군이, 노후한 고정포대와 구식 화포로 무장한 해안 요새를 뚫지 못해 수십만 명의 젊은이를 반도의 참호에 묻어야 했습니다. 오스만의 요새 자체는 낡았지만, 그 약점을 메운 것은 독일 고문단의 배치 조언과 이동식 곡사포의 은폐 운용이었습니다. 갈리폴리는 힘의 우열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입니다.1915년 초,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지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마른 강 전투 이후 양측은 각자의 참호선 뒤에서 서로를 소진시키는 소모전에 들어갔고, 어느 쪽도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교착을 우회할 방법을 찾던 영국의 시선이 ..

칼럼 2026.07.11

이대남이 원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탈이념적이라 불리던 이대남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당에 충성하지 않는 캐스팅보터, 후보 개인의 매력에 따라 표심이 출렁이는 부동층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라 규정하는 20대 남성이 늘고 있으며 이 변화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 어떤 이는 기득권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알고리즘이 만든 극우화라고 부릅니다.청년층의 보수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미국에서는 2024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절반 가량이 트럼프에게 투표했고, 독일에서도 2025년 총선에서 18~24세 남성의 4명 중 1명꼴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했는데 같은 연령대 여성의 지지율은 14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스웨덴에서도 20대 남성층이..

카테고리 없음 2026.07.08

민족주의는 우파일까, 좌파일까

민족은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좌파에 속할까요, 우파에 속할까요.호치민의 베트남을 비롯해 마오의 중국, 카스트로의 쿠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민족해방과 국제공산주의를 하나의 깃발 아래 묶었습니다. 반면 20세기 유럽의 극우는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민족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같은 이름 아래 정반대의 정치가 자라난 셈입니다. 결국 민족주의는 애초에 좌우를 구분하는 잣대가 아님을 시사합니다.물론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제국주의 타도의 전술로 삼았죠. 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이 제국주의 열강을 흔들 수 있다고 보았고, 현실 정치의 실리를 택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국제주의를 선언한 이념이 민족..

칼럼 2026.07.07

자본과 협상한 진보의 초상

같은 이름을 쓰는 두 정당이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면, 그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국의 더불어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은 자유주의라는 계보를 함께 자임하고, 노동과 복지와 남북관계라는 의제에서 나란히 진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그러나 경제와 안보라는 가장 단단한 두 축을 놓고 두 정당을 나란히 세워보면, 이들은 같은 이름 아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역설은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반대 방향으로 갈라진 두 정당이, 놀랍게도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미국 정치의 좌우는 정부가 시장에 얼마나 개입하는가, 그리고 낙태와 총기와 인종이라는 문화적 균열을 어느 편에서 바라보는가로 그어집니다. 한국 정치의 좌우는 다른 지반 위에 서 있습니다...

칼럼 2026.07.06

그리스 비극의 시선 - 광장에서 침실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소포클레스를 비극의 정점에 놓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정교한 구성, 그 완벽에 가까운 균형 감각이 그의 기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정점으로 본 것이 어떤 완성이 아니라, 두 개의 힘이 팽팽하게 맞서는 찰나의 균형이었다면 어떨까요. 균형이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극이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는 폴리스의 운명을 노래했고, 비극이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에는 한 여인의 침실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에서 에우리피데스까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리스 비극의 시선은 광장에서 가정으로, 신탁에서 정념으로 옮겨갔습니다. 이것을 몰락이라 불러야 할지, 어떤 전환이라 불러야 할지는 아직 판단을 미뤄두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이 ..

칼럼 2026.07.06

몽골의 명장 수부타이

1206년 봄, 오논 강가에서 열린 대쿠릴타이에서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케레이트와 나이만 등 초원의 거대 부족들을 차례로 굴복시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테무친이 마침내 초원의 통일을 선포하고 몽골제국(예게 몽골 울루스)의 출범을 알렸죠.몽골 제국이 반세기 만에 베이징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를 흔히 기마술과 잔혹함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몽골을 세계제국으로 만든 것은 1206년의 쿠릴타이에서 선포된 하나의 개혁이었습니다.칭기즈칸은 씨족/부족 단위로 짜여 있던 기존의 소집 체계를 해체하고 십호-백호-천호-만호로 이어지는 십진법 편제로 전군을 재편했습니다. 이 개편은 혈통에 따른 지휘권 세습을 끊어 능력 있는 자를 지휘관 자리에..

칼럼 2026.07.05

바가노바 메소드 : 형식과 감정의 균형을 찾아서

발레를 본다는 것은 '형태의 음악'을 감상하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선과 균형 잡힌 동작이 음악의 흐름과 만날 때, 우리는 거기서 하나의 '문법'을 느끼게 됩니다. 바가노바 메소드는 바로 그 문법을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훈련법은 단지 기계적 기술이나 근육의 제어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형식과 감정, 논리와 감성의 긴장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습니다.1917년 혁명과 함께 제국주의 발레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차르 체제가 무너지자 오랫동안 귀족의 향유물로 여겨졌던 발레라는 예술 형식 자체의 존속이 불투명해졌습니다. 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아그리피나 바가노바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녀는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점프와 발기술로 '바리에이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

발레 2026.07.03

정복자의 늪, 러시아

정복자가 유럽대륙을 통일하는 순간, 가장 완강한 적을 마주합니다. 1807년 틸지트에서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의 지배자로 등극했을 때, 그리고 1940년 여름 히틀러가 프랑스를 무릎 꿇렸을 때, 두 사람 모두 승리의 정점에서 똑같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영국이었죠. 바다 건너의 섬나라는 협상도, 회유도, 봉쇄도 통하지 않는 상대였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13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영국을 굴복시키려면 러시아를 먼저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죠.영국의 대륙정책은 튜더 왕조 이래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세력균형 원칙 위에 서 있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어떤 단일 세력도 패권을 쥐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죠. 상대가 가톨릭 스페인이든 계몽군주의 프랑스든 나치 독일이든 이념은 중요하지..

칼럼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