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대남이 원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레스프리 2026. 7. 8. 10:44



탈이념적이라 불리던 이대남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당에 충성하지 않는 캐스팅보터, 후보 개인의 매력에 따라 표심이 출렁이는 부동층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라 규정하는 20대 남성이 늘고 있으며 이 변화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 어떤 이는 기득권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알고리즘이 만든 극우화라고 부릅니다.

청년층의 보수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2024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절반 가량이 트럼프에게 투표했고, 독일에서도 2025년 총선에서 18~24세 남성의 4명 중 1명꼴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했는데 같은 연령대 여성의 지지율은 14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스웨덴에서도 20대 남성층이 강경우익정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으며,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강경 우파 혹은 극우 정당이 약진했습니다.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보다 보수화된다"는 성별 격차 자체는 서구 국가들에서도 관찰되는 패턴입니다.

한국은 이 격차의 '강도'에서 이례적이죠. 파이낸셜타임스의 존 번머독이 전 세계 청년 남녀의 정치적 양극화를 그래픽으로 표현했을 때, 한국이 20대 남녀 분화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미국/독일/영국의 경우는 '이대남 현상'보다 오히려 여성의 진보화 쪽이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은 남성의 우경화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원인 진단에서도 결이 다릅니다. 서구의 극우화 논의는 민주주의 불신, 외국인 혐오, 권위주의, 반다원주의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청년 남성 집단에서는 인종과 이민보다 젠더와 공정성, 기회 배분을 둘러싼 갈등의 성격이 훨씬 강하죠.

'청년 남성의 우향우'라는 구조 자체는 초국가적 현상이지만 다만 한국은 병역·입시·취업 경쟁이라는 압축적 스트레스 구조와 파편화된 온라인 젠더 담론이 결합하면서 그 진폭이 세계 최대치로 나타나는, '글로벌 현상의 극단적 사례'로 보는 게 적절합니다.

청년층 보수화 배경에는 세계 경제성장률의 구조적인 둔화가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국면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취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실물경제가 아니라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국경을 모르는 금융자본은 서울의 부동산까지 밀어 올렸죠. 성장은 정체되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자산 가격만 뛰는 이 비대칭은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구조적으로 상회하는 구간에 진입했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저금리/양적완화 국면에서도 국가별 결과는 갈렸습니다. 자가소유 비중이 낮고 임대차 시장이 두터운 독일은 2015년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에야 뒤늦게 가격이 뛰기 시작했고, 그마저 임대료 규제가 상승을 어느 정도 붙잡았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은 같은 유동성 속에서도 2010년대 내내 가격이 정체하다시피 했고, 최근에 다시 오르는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전세라는 레버리지 제도와 경직된 토지 공급이 겹치면서, 같은 유동성 충격이 유독 빠르고 크게 자산 가격에 반영되었습니다. 유동성 과잉이라는 쓰나미는 전 세계가 함께 맞았지만, 그 파도가 어디까지 차오르는지는 각국이 쌓은 제방의 높이에 달려 있었던 셈입니다. 그 격차를 몸으로 겪고 있는 게 현재의 청년층입니다. 해결이 어렵다는 것과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정치의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의심이 기성세대를 위선적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20대 청년층이 요구하는 것은 복지가 아닙니다. 국가가 돌봐야 할 시혜의 대상이라는 수동적 위치 자체를 이들은 거부합니다. 원하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기회를 부여받을 자격이죠. 이전 세대가 밟았던 것과 같은 계단, 즉 정규직과 내 집 마련이라는 사회적인 성공을 원합니다. 취업시장의 문이 좁아졌다고 느낀 순간, 이들이 향한 곳은 자산시장이었습니다. 20대의 영끌 투자는 월급을 모아서는 평생 집을 살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나름 합리적인 대응이죠.

고착화되는 저성장 속에서 성공의 계단이 좁아진 순간부터 취업 현장은 순수한 제로섬으로 재편됩니다. 거시 통계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상승과 남성 청년실업률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자신이 취업 시장에서 겪은 서류 광탈입니다. 하나의 채용 공고에 하나의 자리가 있고 여럿이 지원한다면, 그 경쟁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그리고 20대 남성이 특히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지점은 병역입니다. 복무 기간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학업과 경력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최소 2년의 공백은 그대로 남습니다. 같은 시기 동년배 여성은 인턴십과 자격증, 조기 취업으로 격차를 벌릴 수 있고, 그 격차는 첫 취업 시점을 지나 초봉과 경력 궤적 전체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강제된 공백이 없다는 비대칭 자체가, 동등한 조건에서의 경쟁이라는 능력주의의 전제를 깨뜨립니다. 20대 남성이 분노하는 대상은 출발선이 다른데 결과는 같은 잣대로 평가받는다는 절차의 불공정입니다.

문화일보가 2025년 12월 31일 보도한 한국갤럽의 2025년 '주관적 정치 성향' 세별 연간 집계를 보면 18~39세 22개 연령 가운데 보수가 우세한 연령이 20개에 달합니다. 18세는 보수와 진보가 동률, 19세는 진보가 근소한 우세였고 20세부터는 모두 보수가 진보를 앞섰습니다. 이는 남녀를 합산한 수치로, 성별을 나누면 남성은 18~39세 전 구간에서 보수, 여성은 18~58세 구간에서 진보로 쏠려 있어 남성의 보수화 강도가 여성의 진보화 강도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5년 전인 2020년까지만 해도 보수가 진보를 앞선 연령은 하나도 없었죠. 젠더 갈등에서 시작된 진보진영에 대한 반감이 2030 남성의 보수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정황입니다.

특정 이슈에 대한 반감이 다른 이슈들로 확대되는 것을 부추기는 건 인스타 같은 숏폼 매체입니다. 30대 이상이 포털과 텍스트 기사를 거쳐 정치화됐다면, 20대 상당수는 정치를 인스타그램 릴스와 카드뉴스로 접합니다. 정치 정보의 최소 단위가 자극적인 장면과 감정으로 조직된다는 뜻이죠. 텍스트 기사는 형식상으로나마 주장과 근거의 구조를 흉내 내지만, 15초짜리 영상은 애당초 그런 구조를 담을 그릇이 아닙니다. 소비와 동시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이 매체는 판단을 굳힐 시간만 주고 되짚어볼 시간은 주지 않습니다. 반론을 검색해볼 여지 자체가 배제된 공간에서, 확증편향은 편향이 아니라 그저 유일하게 주어진 경로가 됩니다. 레거시 언론의 게이트키핑이 무력화되는 사이,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중립적인 뉴미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자유대학 인스타그램 계정은 부정선거 의혹과 반중 정서를 카드뉴스를 통해 청년층에 직접 유통시킵니다. 

부정선거 프레임 자체가 국내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의 2020년 패배를 부정선거로 규정한 미국 마가 진영의 논리가 한국의 정치 담론에 그대로 이식된 것에 가깝습니다. 자유대학은 빌드업코리아 등을 통해 이식된 마가식 프레임을 전파하는 국내 스피커에 가깝죠. 실제로 2025년 9월, 마가의 리더 중 한 명이자 미국에서 부정선거 의혹 주장에 앞장섰던 찰리 커크가 일산에서 열린 우파 행사에 참석해 교회 탄압 논란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남의 정치적 정체성은 얼마나 견고할까요. 실제로 이들 상당수는 보수 정당의 정책 패키지, 이를테면 작은 정부나 감세 노선을 특별히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책 풀패키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의 보수화가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특정 이슈에서 출발한 정치적 태도가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거치며 항구적인 것으로 굳어진 사례를 여러 나라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마가가 그랬고, 유럽 곳곳의 극우 정당이 그러했죠. 경제적 사다리가 끊어졌고 절차적 공정성이 훼손되었다고 여기는 이대남의 정치적 정체성이 어느 쪽으로 굳어질지에 대한 답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