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소포클레스를 비극의 정점에 놓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정교한 구성, 그 완벽에 가까운 균형 감각이 그의 기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정점으로 본 것이 어떤 완성이 아니라, 두 개의 힘이 팽팽하게 맞서는 찰나의 균형이었다면 어떨까요. 균형이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극이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는 폴리스의 운명을 노래했고, 비극이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에는 한 여인의 침실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에서 에우리피데스까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리스 비극의 시선은 광장에서 가정으로, 신탁에서 정념으로 옮겨갔습니다. 이것을 몰락이라 불러야 할지, 어떤 전환이라 불러야 할지는 아직 판단을 미뤄두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궤적의 출발점인 아이스킬로스의 무대에서 주인공은 종종 개인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입니다. 페르시아인들에서 비극의 주체는 크세르크세스 개인이라기보다 살라미스에서 무너진 페르시아 제국의 운명입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 이르면 사정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아폴론의 신탁과, 어머니를 죽여야 한다는 도덕적 공포 사이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복수를 완수한 뒤 에리니에스, 즉 복수의 여신들의 환영에 시달리며 실성 직전까지 몰립니다. 이것은 분명 개인의 고통이며, 어쩌면 그리스 문학이 처음으로 포착한 내면의 균열이라 불러도 좋을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오레스테스 자신의 각성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아테나 여신이 아레오파고스라는 법정을 세우고, 그곳에서 시민들의 투표로 그의 무죄를 가려줍니다. 개인의 죄와 광기는 결국 폴리스가 만든 제도 안에서만 구원을 얻습니다. 이 결말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스킬로스가 살았던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 직후, 자신들의 공동체가 개인의 죄까지도 감당하고 해소해낼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여유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수의 순환을 끊는 것은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제도라는 이 믿음은, 그 시대 아테네 민주정이 스스로에게 걸었던 낙관과 정확히 포개집니다.
소포클레스에 이르면 이 균형은 더 이상 쉽게 유지되지 않습니다.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의 국법과 안티고네의 혈육에 대한 의무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둘 다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 채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 충돌 자체가 비극의 실체가 됩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즉 공적 정체성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존속살해와 근친상간이라는 가장 사적인 진실의 담지자입니다. 이 두 자아는 화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파괴합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시대에는 개인의 고통이 결국 공동체의 그릇 안에 담길 수 있었다면, 소포클레스의 시대에는 그 그릇 자체가 금이 가기 시작한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소피스트들이 아테네 광장에 나타나 노모스, 즉 인위적으로 합의된 법과 퓌시스, 즉 타고난 본성 사이의 간극을 캐묻기 시작한 시기와 겹칩니다.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더 이상 하나의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불안이, 크레온과 안티고네가 서로 물러서지 않는 이 팽팽한 무승부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습니다.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폴리스는 사실상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메데이아를 움직이는 것은 국가의 대의가 아니라 배신당한 여인의 질투와 복수심입니다. 히폴리투스에서 파이드라를 파멸시키는 것은 신탁이 아니라 억눌린 욕망 그 자체입니다. 신들조차 정의를 관장하는 존재라기보다 인간의 심리를 비추는 거울이거나, 때로는 인간을 자의적으로 파괴하는 변덕스러운 힘으로 격하됩니다. 원래 폴리스 시민 사회의 공적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던 코러스마저, 에우리피데스의 극에서는 점점 사건의 흐름과는 무관한 노래를 부르는 장식적 존재로 물러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메데이아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 사라집니다. 히폴리투스의 결말에서도 아르테미스가 뒤늦게 내려와 진실을 밝히지만 죽음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정념이 파국까지 몰고 간 무대를, 신이 내려와 형식적으로 봉합하는 이 결말은 어쩌면 하나의 냉소일지도 모릅니다. 공적 가치를 잃어버린 사적 개인들의 세계는, 더 이상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냉소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독법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이 기계장치의 신을 신적 정의의 자의성에 대한 아이러니한 논평으로 읽고, 어떤 이들은 에우리피데스가 폴리스를 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과 여성 같은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빌려 그 폴리스의 위선을 가장 치열하게 겨눈 것이라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봉합이 아이스킬로스의 아레오파고스처럼 견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길어지며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민주정과 공동체적 이상에 대해 품었던 신뢰를 조금씩 잃어가던 시기와 나란히 놓입니다. 투키디데스가 케르키라 내전을 기록하며 전쟁이 인간의 언어와 가치마저 뒤바꿔놓았다고 적었던 그 환멸이, 에우리피데스의 무대 위에서 사적 정념의 전면화라는 형태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동은 어쩌면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에 처음부터 내장되어 있던 균열이 벌어진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비극은 태생부터 이질적인 두 원천이 봉합된 종합 예술이었습니다. 그 소재, 즉 신들과 영웅들의 운명이라는 재료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서사시는 공동체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과거를 3인칭으로, 한 발 물러선 객관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대 위에 실어 나르는 형식은 디오니소스를 향한 합창 서정시, 디티람보스에서 왔습니다. 서정시는 특정한 화자가 지금 여기의 감정을 1인칭으로 토로하는 장르였습니다. 비극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이미, 공적인 서사시의 소재와 사적인 서정시의 형식은 완전히 화해하지 못한 채 한 무대 위에 동거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이스킬로스에서 에우리피데스로의 이동은 이 태생적 종합의 무게중심이 서사시 쪽에서 서정시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동은 문학적 해석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무대의 음악적 관행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기원전 5세기 말 아테네에는 '신음악'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행이 일었고, 에우리피데스는 그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극작가 중 하나였습니다. 초기 비극에서 서정적 노래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것은 코러스가 여럿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쳐 부르는 정형화된 합창 서정시, 스타시몬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후기 극으로 갈수록 이 합창 서정시의 비중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개별 등장인물이 홀로 부르는 독창 아리아, 즉 모노디아가 채워갑니다. 코러스가 그래도 공동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서정시였다면, 모노디아는 한 개인이 오직 자신만의 고통을 토로하는, 훨씬 더 순수하게 사적인 서정시입니다. 형식의 무게중심이 다성에서 독창으로 옮겨가는 이 변화는, 극의 내용이 폴리스의 광장에서 한 여인의 침실로 옮겨가는 변화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르의 형식 자체가 이미 그 내용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폴리스가 개인의 죄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에서, 개인의 정념 앞에 폴리스가 배경으로 물러난 시대까지. 백 년이 채 되지 않는 이 이동을 지켜보며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에 자리를 내줄 때, 그것은 문명이 성숙해가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일까요. 아마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어느 쪽에 서서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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