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은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좌파에 속할까요, 우파에 속할까요.
호치민의 베트남을 비롯해 마오의 중국, 카스트로의 쿠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민족해방과 국제공산주의를 하나의 깃발 아래 묶었습니다. 반면 20세기 유럽의 극우는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민족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같은 이름 아래 정반대의 정치가 자라난 셈입니다. 결국 민족주의는 애초에 좌우를 구분하는 잣대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물론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제국주의 타도의 전술로 삼았죠. 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이 제국주의 열강을 흔들 수 있다고 보았고, 현실 정치의 실리를 택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국제주의를 선언한 이념이 민족주의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민족주의가 이념의 내용과 별개의 층위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네이션(나시옹, nation)은 왕에게 속한 신민이 아닌, 스스로 법을 만드는 시민의 공동체를 의미했습니다. 시에예스가 말한 네이션은 인민주권과 시민적 평등이라는 원리 위에 서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인민주권과 시민적 평등이라는 공화국 토대를 세웠고, 그 위에서 자유를 중심에 놓으면 자유주의가 자랐고 평등을 중심에 놓으면 사회민주주의가 자랐죠.
같은 시기 독일 낭만주의에서는 전혀 다른 개념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헤르더는 정치적 의지가 아니라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정신, 곧 폴크스가이스트를 네이션의 근거로 세웠습니다. 시에예스의 네이션이 사회계약이었다면 헤르더의 네이션은 혈통과 문화였죠. 다만 헤르더 본인은 민족마다 고유의 정신이 있다고 보았을 뿐,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문화적 다원주의에 가까웠고, 폴크스가이스트를 배타적 국수주의로 벼려낸 것은 피히테였습니다. 나폴레옹 점령기에 쓰인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헤르더의 문화적 다양성을 독일 민족의 우월성으로 뒤집었죠.
통일 이전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민족주의는 오히려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언어였습니다. 마치니의 이탈리아든 1848년의 프랑크푸르트 의회든, 초기 민족주의는 낡은 왕조 질서에 맞선 진보의 기획이었습니다. 저울추가 기운 것은 통일이 완성된 이후의 일이었죠.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은 하나의 국가여야 한다는 등식이 규범으로 굳어졌고, 이 등식이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과 사회다윈주의와 결합하면서 혈통과 민족의 언어로 고착되었습니다.
국가의 이익을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프랑스의 극우사상가 모라스의 통합 국민주의와 독일의 나치즘은 그 극단적 형태였습니다. 오늘날 민족주의가 우파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것은 19세기 후반 이후에 굳어진 인상일 뿐, 네이션의 원형이 본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좌파와 우파는 이미 존재하는 정치공동체 안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다툽니다.
반면 근대 민족주의는 내부의 가치를 다투기 전에, 경계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없던 경계가 새로 만들어졌고, 그 인위의 산물은 곧 태고부터 존재했던 자연인 것처럼 스스로를 재구성했습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 발명의 메커니즘을 '상상된 공동체'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한 마을 사람은 옆 마을 사람의 얼굴을 압니다. 하지만 민족은 다릅니다. 파리의 시민은 마르세유의 시민을 평생 만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둘은 같은 민족이라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얼굴을 마주한 경험이 아니라 인쇄물이었다고 앤더슨은 말합니다. 신문은 매일 아침 서로 모르는 수백만이 같은 사건을 같은 시각에 읽고 있다는 동시성의 착각을 만들어냈습니다. 라틴어 성경이 지역어 인쇄물로 대체되면서 흩어진 방언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표준어로 통합되었고, 그 언어 시장의 경계가 훗날 국경의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만난 적 없는 이들 사이의 동시성이라는 감각이 앤더슨이 짚어낸 근대 민족의 발명 원리입니다. 이후 공교육이 그 위에 공통의 기억을 덧입혔고, 국가의 의례가 낯선 이들 사이에 일체감을 조형했습니다.
근대 민족주의가 내세웠던 서사들, 예를 들어 순수한 단일 혈통이나 태곳적부터 이어진 민족혼 같은 것들은 신화나 은유에 머물지 않고 검증 가능한 사실처럼 제시됩니다. 하지만 인구집단의 유전자는 끝없는 이주와 혼합의 기록이지 순혈의 계보가 아니고, 오늘날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여겨지는 공동체 상당수는 근대 국가 형성기에 비로소 표준화 작업을 거쳐 통일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를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처음부터 범주의 오류입니다. 좌우는 이미 경계 지어진 공동체 안에서 옳고 그름을 다투는 논증이고, 민족주의는 그 경계 자체를 상상된 동질성을 근거로 선을 긋는 별개의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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