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211

일본의 버블 경제는 왜 터졌을까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위상 속에서 자산가격이 기형적으로 부풀어오르던 시기였다. 문제의 시작은 1985년 9월 22일의 플라자 합의였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고통받던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주요 5개국 재무장관을 뉴욕 플라자 호텔로 불러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합의를 체결했다. 플라자 합의의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합의 당시 약 240엔 수준이던 달러당 엔화 환율은 불과 2년 사이 130엔대까지 하락했다. 즉, 엔화 가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던 일본 기업들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엔고 불황'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쳤다. 1987년까지 기준금리를 5%에서 2.5%..

시사 2025.06.17

융 심리학으로 읽는 스타워즈 시리즈

조지 루카스가 만든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의 중심에는 늘 '자기(self)'를 찾아가는 영웅의 여정이 있다. 이 구조는 그리스 신화나 불교적 깨달음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 루카스 자신이 조지프 캠벨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캠벨의 저서 을 여러 번 읽고 참고하여 스페이스 오페라에 영웅신화적 요소를 반영한 영화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듯이, 스타워즈는 고전적 신화구조에 근거한 서사이며, 이는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과 깊은 접점을 갖는다. 융에 따르면 인간 정신은 무의식과 의식이 상호작용하며 구성되고, '개성화 과정'을 통해 자아(ego)와 자기(self)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이 개성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처음엔 자신의 운명을..

칼럼 2025.06.17

<오징어 게임 1시즌 3/3> 유년의 얼굴을 쓴 공포

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데는 이야기의 힘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장르적 문법을 교묘하게 변형시켜 불편함을 유발하고, 동시에 익숙한 상징들을 낯설게 재배열한다. 아동기의 순수한 놀이를 생사의 무대로 뒤틀어 놓는 방식은 공포와 스릴을 극대화하면서, 이 드라마가 단순한 서바이벌이 아님을 보여준다. 무궁화 꽃과 죽음의 리듬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 4미터 높이의 거대한 로봇 인형 '영희'가 놀이를 주관하고, 그 눈에 장착된 동작 감지 센서에 '감지'되는 순간 진행 요원의 저격총에 즉사한다. 이 인형은 제작진이 옛날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 일러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했다고 밝혔으며, 미술감독 채경선에 따르면 황동혁 감독이 "너무 귀엽거나 부드러운..

드라마 2025.06.17

<오징어 게임 1시즌 2/3> 공정한 게임의 허상

의 모든 룰은 단 하나의 명제를 전제로 한다. "게임은 공정하다." 게임을 운영하는 자들은 반복해서 이 말을 강조하며, 참가자들에게도 그 말은 일종의 안도감을 준다. 최소한 이 안에서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그 공정성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대상은 '불공정한 현실'이 아니라, '공정함이라는 신화' 자체다. 구조적 불평등의 복제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평등하다.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규칙 아래, 같은 게임에 참여하며, 선택은 자유의지에 맡겨진다. 하지만 현실의 계급은 게임 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3단계 줄다리기에서 이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팀을 고를 때, 누군가는 힘센 사람을 찾고, 누..

드라마 2025.06.17

<오징어 게임 1시즌 1/3> 왜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에 몰입했을까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드라마 한 편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초록색 체육복, 거대한 인형, 핏빛 바닥. 은 단순한 서바이벌 장르의 성공을 넘어서, '왜 지금 이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공개 후 1억 1,100만 개의 계정이 시청하며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드라마로 기록됐고, 94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배경 극 중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물들이다. 기훈은 자동차 공장 구조조정으로 실직 후 도박에 빠졌고, 상우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금융 사기로 추락했으며, 새벽은 탈북자, 알리는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고, 정체성은 '빚진 자', '쓸모 없는 자', '불법 체류자' 등 사회적 꼬리표로..

드라마 2025.06.17

블랙 드레스의 혁명

1926년, 미국 패션지 는 샤넬이 디자인한 블랙 드레스를 한 페이지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이 옷은 패션계의 포드 자동차이며, 이제 대중이 입을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디자인,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직선 실루엣, 장식 없는 검정 크레이프 드레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리틀 블랙 드레스’(LBD)의 시초였다. 당시만 해도 검은색은 일상복의 색상이 아니었다. 장례식과 상복, 혹은 하층 노동복에서 주로 사용되던 색이었다.검정, 애도에서 세련으로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사회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남편이나 아들을 전쟁으로 잃었고, 사회 전체가 애도의 분위기 속에 있었다. 검은 옷은 단지 슬픔을 표현하는 옷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연대..

패션 2025.06.16

향기의 제국, 샤넬 No.5

"여자는 꽃 냄새가 아니라, 여자의 향기가 나야 한다." 코코 샤넬이 남긴 이 명언은 단순한 미적 선언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여성의 정체성과 시장에서의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명의 시작이었다. 향수는 언제부터 '브랜드'가 되었울까1921년, 샤넬은 프랑스 그라스 지방 출신의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와 함께 그녀의 첫 향수를 개발한다. 보는 이전에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를 위해 향수를 만들던 조향사였다. 당시 향수는 주로 장미, 바이올렛, 재스민처럼 특정 꽃의 냄새를 그대로 재현하는 단일 향조가 대부분이었다. 샤넬은 이런 '자연주의적 향수'가 아닌, 추상적인 감각의 조합을 원했다. 에르네스트 보는 최고급 자연 유래 성분과 당시에는 생소했던 합성 분자인 알데하..

패션 2025.06.16

브렉시트 이후: 데이터로 보는 영국 현실

2020년 1월 31일, 영국은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탈퇴는 곧 종결이라는 기대와 달리, 브렉시트는 일련의 복잡한 전환과 재협상의 시작에 불과했다. 무역과 이민, 노동시장과 식량 공급망, 금융 산업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회는 점진적이고도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무역과 경제 2021년 1월 1일, 유럽연합과의 전환 기간이 종료되며 영국은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최종적으로 체결된 무역협정은 '무관세 무쿼터' 조건이었지만, 다양한 규제 장벽과 행정 절차는 새롭게 생겨났다. 2024년 기준, 영국의 대EU 수출은 2019년 대비 약 18% 감소하였다. 자동차, 의약품, 화학제품 등 규제 기준이 까다로운 산업에서 인증 절차의 복잡성과 통관 지연이 특히 문제로 부각되었다. 영국무역감..

시사 2025.06.16

합리성의 패배, 감정의 승리: 2016년 브렉시트 캠페인

2016년 6월 23일, 영국 유권자의 51.9%가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정체성과 경제 논리, 정치적 불신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갈림길이었다. ‘Leave’와 ‘Remain’ 캠페인은 상반된 메시지 전략을 취했으며, 결과적으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선택이 됐다. 설계자 도미닉 커밍스와 슬로건의 힘 공식 탈퇴 캠페인 조직인 ‘Vote Leave’의 전략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인물은 도미닉 커밍스였다. 그는 유럽 문제를 추상적인 외교 정책이 아닌, 유권자 개인의 통제감 상실,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 지역 격차와 연결했다. 그 결과물이 “Take Back Control(통제권을 되찾자)”라는 슬로건이다. 이 구호는 주권, 국경, 세..

시사 2025.06.16

브렉시트를 만든 정치적 오판

2016년 6월 23일, 영국 전역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질문은 간단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남아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결과는 탈퇴 51.89%, 잔류 48.11%였다. 표 차이는 126만 9,501표였고, 투표율은 72.2%에 달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만든 주체는 유권자였지만, 그 배경에는 한 명의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의 정치적 결단이 있었다. 보수당과 유럽: 끝나지 않은 내전영국 보수당의 유럽 회의론은 오래된 문제다.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보수당은 유럽 문제를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분열했다. 마거릿 대처는 브뤼셀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다 당내 반발로 1990년 퇴진했고, 후임 존 메이저 역시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에 시달렸다. 유럽 통합은..

시사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