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211

삼성전자: 초격차 신화의 종말

'반도체 초격차'는 한때 삼성전자의 기술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대명사였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제 색바랜 명함처럼 느껴진다. 진정한 기술 리더십을 의미하던 초격차가 물량 중심의 시설 투자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삼성의 절대적 위상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메모리 부문에서는 여전히 강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합산 점유율은 75.9%를 기록했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58.2%의 합산 점유율을 달성하며 한국 기업의 압도적 지위를 보여줬다. 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터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SK하이닉스가 매출액 기준 36%의 점유율로 D램 시장 1위를 차지했으며, 삼성전..

시사 2025.06.13

미래의 연준: 디지털 통화 시대의 중앙은행

100여 년간 지폐와 금리로 경제를 조율해온 연준이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화폐의 개념 자체를 뒤흔들면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암호화폐, 탈중앙화 금융(DeFi)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 통화 체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2025년 2월, 미국의 디지털 달러 논의는 급작스러운 종료를 맞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는 2026년 5월 파월 의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CBDC 도입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수년간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해온 연준의 기존 방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연준은 2022년 1월 "M..

시사 2025.06.13

달러의 제국: 연준과 세계 경제의 비대칭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연준이 행사하는 권력은 국경을 초월한다. 워싱턴 D.C.의 한 회의실에서 내려진 금리 결정이 몇 시간 만에 서울과 뭄바이, 상파울루의 주식시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는 마법이 아니라, 달러가 세계 금융질서의 절대적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2023년 4분기 기준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58.4%가 달러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무역에서 달러의 지배력은 더욱 압도적이다. 전 세계 수출 인보이싱(trade invoicing)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달하며, 외환거래에서는 88%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든, 브라질의 대두든, 대만의 반도체든 – 거의 모든 주요 상품의 국제거래가 달러로 결..

시사 2025.06.13

2008 금융위기와 연준의 양적완화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6,130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파산 신청을 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 선언되었다. 158년 역사의 이 투자은행 붕괴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실패가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시작된 위기는 파생상품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자산 가격은 폭락했으며, 신용 시장은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4.5% 폭락하며 9/11 테러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리먼 파산의 여파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다. 머니마켓 펀드에서는 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가 벌어졌고, 은행 간 대출 시장은 얼어붙었으며, 신용 경색으로 기업들의 단기 자금 조달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연준은 단순한 통화조절 기관을 넘어, 위기의 중심에서 금융질서를 재설..

시사 2025.06.13

물가냐 고용이냐: 연준의 '이중 목표'

연방준비제도는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만 집중하는 것과 달리, 연준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듀얼 맨데이트(dual mandate)'다. 1977년 의회가 연준법을 개정하여 "최대 고용, 물가 안정, 그리고 적정한 장기 금리를 효과적으로 촉진"하도록 명시한 이래로 지속되고 있는 이 이중 책무는 연준의 정책 결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동시에, 미국 경제정책의 특별한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낳은 정책 전환 듀얼 맨데이트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1977년 의회가 연준법을 개정한 것은 당시 미국이 겪고 있던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시사 2025.06.12

연준의 3대 정책 수단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혹은 '연준'은 직접적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화폐의 흐름과 가격을 조율하는 경제의 지휘자다. 그 조율의 핵심 도구는 세 가지다: 공개시장조작, 할인율, 지급준비율. 이 삼총사는 연준이 경제의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 구사하는 정책 무기이며, 각각 다른 메커니즘으로 금융시장 전반을 움직인다. 첫 번째 무기: 연방기금금리와 공개시장조작가장 중요하고 자주 사용되는 무기는 공개시장조작(Open Market Operations, OMO)이다. 연준이 정부 증권을 사고파는 공개시장조작은 통화정책 실행의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연준이 증권을 매입하면 해당 은행의 준비금 계좌에 자금을 입금함으로써 은행 시스템의 준비금 수준을 변화시킨다. 연준은 연방기금금리를 목표 범위 내..

시사 2025.06.12

누가 돈을 조종하는가: 연준의 탄생과 권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연준)의 탄생은 1913년, 놀랍도록 늦은 시점이었다. 영국 중앙은행이 1694년에, 프랑스 중앙은행이 1800년에 설립된 것과 비교하면 100년 이상 뒤처진 셈이다. 이 지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미국 특유의 정치 DNA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독립혁명의 핵심 동력 중 하나는 영국 정부의 자의적인 세금 징수와 경제 통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미국 건국자들에게 중앙은행은 바로 그런 집중된 경제 권력의 상징이었다. 영국의 중앙은행이 정부 재정을 뒷받침하며 식민지 경제를 통제했던 경험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강력한 금융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민주공화당은 이를 '금융 귀족들의 음모'로 규정..

시사 2025.06.12

SAB의 입시와 경쟁

SAB(School of American Ballet, 미국발레학교)는 1934년 조지 발란신과 링컨 커스틴이 설립한 뉴욕시티발레단의 공식 부속학교다. 학교는 32명의 학생으로 1934년 1월 2일 매디슨 애비뉴 637번지에서 문을 열었으며, 학생들은 그해 6월 첫 공연을 가졌다. 링컨센터에 위치한 이 학교는 매년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천 명의 지원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선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미국발레학교 입학의 문턱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꿈의 관문, 여름 집중 프로그램 미국발레학교 정규과정 입학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나뉜다. 연중 수시로 진행되는 일반 오디션(6-10세는 봄, 11-18세는 9월)과 여름 집중 과정(Summer Course)을 통한 선발이 그것이다. 특히 후자는 ..

발레 2025.06.12

<택시 운전사 2/2> 광주 시민이 만든 연대의 영화

《택시운전사》는 김만섭과 힌츠페터라는 두 인물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영화의 진정한 감동은 광주의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긴 대사나 중심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이 있기에 영화는 단순한 탈출극을 넘어 윤리적 공동체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영화적 재구성 속에서 만나는 시민들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 택시기사의 여행을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필요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바로 이 창작된 조연들이야말로 당시 광주 시민들의 "소시민들만의 방식으로 영웅적 투쟁을 이뤄냈"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주먹밥을 나눠준 시민들이나 공짜로 기름 넣어준 주유소 주인 같은 인물들은 실제 광주에서 일어났던 ..

영화 2025.06.12

<택시 운전사 1/2> 힌츠페터의 저널리즘 윤리와 외부자의 시선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단순한 '외신 기자'를 넘어 역사의 증언자로 거듭난다. 그는 1980년 5월, 철저히 봉쇄된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세계에 알린 실존 인물로서, 영화 속에서도 냉철한 직업 정신과 인간적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합적 인물로 그려진다. 힌츠페터의 광주행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한국의 언론 통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오직 외신만이 검열을 우회해 진실을 외부에 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특종 경쟁이나 저널리스트적 호기심을 넘어선,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영화는 힌츠페터가 카메라를 드는 순간부터 그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의 렌즈는 광주 시민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역할을 ..

영화 202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