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운전사》는 김만섭과 힌츠페터라는 두 인물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영화의 진정한 감동은 광주의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긴 대사나 중심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이 있기에 영화는 단순한 탈출극을 넘어 윤리적 공동체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영화적 재구성 속에서 만나는 시민들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 택시기사의 여행을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필요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바로 이 창작된 조연들이야말로 당시 광주 시민들의 "소시민들만의 방식으로 영웅적 투쟁을 이뤄냈"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주먹밥을 나눠준 시민들이나 공짜로 기름 넣어준 주유소 주인 같은 인물들은 실제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외지인을 경계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선뜻 도움을 주는 광주 시민들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국가의 폭력이 일상을 짓밟는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윤리적 직관이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있다.
침묵 속의 연대,
영화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클라이맥스의 택시기사들 추격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해 "개연성에서도 문제가 있을 뿐더러 억지 감동스러운 면모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광주 택시가 네다섯 대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왔다는 건 개연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맞지도 않는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장훈 감독은 "추격 신에 대해 내부 갈등이 많았다"고 하면서도 "소시민들의 활약상을 담고 싶어서 최종적으로 삽입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택시로 보호벽을 구축하는 장면은 역사적 고증에도 들어맞으며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제목의 당사자들인 택시 기사들에게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신파적인 요소 없이 담담하게만 그려냈다고 해도 충분한 영화였으나, 과도하게 극적인 이 장면이 영화에 오점으로 남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반까지 등장하는 조연들의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한 건의 절도사건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극한 상황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들의 행동은 거창한 영웅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바로 그 소박함 때문에 더욱 진실하고 감동적이다.
평범함이 만드는 숭고함
《택시운전사》에서 "부상자들을 열심히 병원으로 실어 나른 택시 기사들, 주먹밥을 나눠준 시민들이나 공짜로 기름 넣어준 주유소 주인 등 광주의 소시민들"의 모습은 실제 역사와 부합한다. 이들의 행동은 평범한 일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평범함이 극한 상황과 만날 때 가장 숭고한 연대의 형태로 전환된다.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택과 용기가 모여서 이뤄져 가는, 멀리서 조망한 벽화가 아닌, 가까이서 들여다 본 세밀화"로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다. 조연들은 바로 이 세밀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다.
결국 《택시운전사》에서 김만섭의 변화도, 힌츠페터의 기록도, 모두 이들 조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일부는 영화적 창작이지만,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지 37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갚지못한 부채 의식"을 대변한다.
과도한 극적 연출로 비판받은 추격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는 조연들을 통해 하나의 진실을 전한다. 역사의 진실은 언제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화려한 무대가 아닌 일상의 구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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