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211

트럼프 이후, 관세는 어떻게 공화당의 DNA가 되었을까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의 두 번째 임기는 첫 번째 임기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관세 정책으로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처음엔 예외처럼 보였다. 공화당은 1980년대 레이건 이래 자유무역을 정체성으로 삼아온 정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공화당 내 차세대 지도자들인 J.D. 밴스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모두 트럼프의 무역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일시적 반동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구조적 전환을 보여주는 조짐이 되었다. 1장: 레이건에서 트럼프로 – 보수의 재구성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은 무역 자유화를 통해 미국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이끌었던 보수주의는 세계화와 시장 개방을 통해 미국의 리..

시사 2025.06.11

미중 7년 무역전쟁의 진실: 누가 이겼는가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상대는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 표면적 명분은 명확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기술 탈취, 극심한 무역수지 불균형. 트럼프는 이를 "미국이 수십 년간 속아온 결과"로 규정하며, 고율 관세로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무역전쟁은 정말로 미국의 국익을 지켜낸 것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초래한 위험한 도박이었을까? 2018~2020: 체계적 관세 공세트럼프는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압박을 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과 2019년에 약 3,800억 달러 규모의 수천 개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는 미국 상품 수입의 약 15%에 해당했다(Tax Foundation, 2025). 구체적인 관세 ..

시사 2025.06.11

'오드리 햅번의 옷'인가 '지방시의 옷'인가

1954년 《사브리나》의 한 장면. 오드리 햅번이 지방시의 드레스를 입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패션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 순간은 단순히 배우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것을 넘어서, 20세기 패션과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이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가 '오드리 햅번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그 전설적인 이미지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오드리 햅번 개인의 타고난 스타일 감각의 산물일까, 아니면 위베르 드 지방시라는 천재 디자이너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걸작일까? 스타일의 재정의: 개성과 창조의 경계 전통적으로 패션계에서는 디자이너를 창조자로, 착용자를 소비자로 구분해왔다. 그러나 오드리 햅번과 지방시의 관계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뒤바꿔놓았다...

패션 2025.06.11

SAB의 하루: 발란신 메소드를 구현하는 시간표

뉴욕 아메리칸 발레 학교(SAB)의 일과를 단순히 나열하면 평범해 보인다. 발레 클래스, 포인트워크, 파트너링, 리허설. 하지만 이 시간표 속에는 조지 발란신이 평생에 걸쳐 개발한 신고전주의 발레의 정수가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학생들은 단순히 테크닉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뉘앙스를 몸으로 번역하고 공간을 수학적으로 분할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움직임의 질감을 조절하는 능력을 단계적으로 체화한다. 학급 구조의 실체 - 4개 단계, 다층적 레벨 시스템 SAB는 연령과 기술 수준에 따라 4개의 단계로 구분된다: 예비반, 아동반, 중급반, 상급반이다. 아동반은 여학생의 경우 6개 레벨(Girls I-VI), 남학생의 경우 4개 레벨(Boys I-IV)로 세분화되어 있다. 중급반은 현재 여학생의..

발레 2025.06.11

마네: 충돌의 회화, 혹은 현대성의 얼굴

19세기 후반 파리의 미술계에서 에두아르 마네만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화가는 없었다. 그는 인상주의 전시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인상파라 칭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모네, 드가, 모리조, 세잔 등 후배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인상주의의 문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 스캔들의 탄생: 《올랭피아》와 시선의 전복 1865년 파리 살롱에서 전시된 《올랭피아》(Olympia, 1863)는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화면 정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나체 여인은 신화 속 비너스가 아닌 현실의 창부로 읽혔고, 흑인 하녀가 건네는 꽃다발은 그녀의 직업을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구도는 마치 고전 명화의 패러디처럼 보였지만, 그 ..

회화 2025.06.11

라캉과 정신의학

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과 20세기 정신의학 간의 긴장과 교차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저작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미셸 토르는 이 책을 통해 정신병리학이라는 진단 체계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라캉의 사유를 통해 정신의학의 언어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 단순한 임상 기법이 아니라, 언어와 무의식을 매개로 한 철학적-비판적 사유임을 명확히 드러내며, 라캉의 텍스트를 실천적 맥락에서 재조명한다. 정신의학의 언어와 '실재의 삭제' 책의 전반부는 정신의학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미셸 토르는 현대 정신의학이 임상적 관찰과 진단 기준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언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

서평 2025.06.11

피에르 부르디외로 읽는 영화 기생충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를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그리고 드라마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가난한 가족의 상류층 침투기' 정도로만 이해하면, 그 정교함은 절반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말하는 계급은 단지 소득 격차나 주거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언어, 태도, 감각, 반응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훨씬 더 교묘한 구조다. 문화자본: 보이지 않는 자산의 위력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단순한 빈부 격차 이상의 '계급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예술 감상 능력, 언어 사용, 예절, 학력, 옷차림, 태도 등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계급을 가르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문화자본은 단순히..

칼럼 2025.06.11

<기생충 2/2> 냄새는 계급을 말한다

《기생충》에서 가장 폭력적이고도 결정적인 한마디는 "아저씨는 지하철 냄새가 나요"라는 말이다. 박사장 부부의 아들 다송은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만, 이 짧은 문장은 기택을 포함한 하층민들이 넘어설 수 없는 선을 찌른다. 냄새는 보이지 않고, 이름도 붙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더 잔혹하게 작동한다. 이 대사가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아직 사회적 예의를 체화하기 전이라, 가장 솔직하게 감각적 차이를 표현한다. 다송의 말은 그래서 가식 없는 계급 인식의 발현이다. 그는 학습된 차별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체득된 구분을 내뱉는다. 이는 계급 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재생산되는지를 보여주는 무서운 순간이다. 반지하의 후각적 현실 봉준호는 ..

영화 2025.06.11

<기생충 1/2> 고도 차이가 만든 계급

《기생충》은 계급을 다루는 영화지만, '계급'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봉준호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위치'를 통해 계급을 시각화하고, 또 감각화한다. 반지하라는 한국적 현실 영화는 처음부터 '아래'에서 시작한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있고, 창밖으론 겨우 사람 다리나 지나가는 개만 보인다. 시야도, 공기도, 햇볕도 절반쯤 차단된 공간에서 그들은 간신히 삶을 영위한다. 이 반지하는 한국만의 특수한 주거 형태다. 법적으론 '주택'이지만 실질적으론 지하실에 가깝다. 봉준호는 이 독특한 주거 형태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가시화한다. 더 주목할 점은 반지하 특유의 '애매함'이다. 완전한 지하도, 완전한 지상도 아닌 이 공간은 기택 가족의 계급적 위치와 정확히 ..

영화 2025.06.11

운명적 만남: 지방시와 오드리 햅번의 인연

1953년 어느 날, 파리 아베뉴 조지 V에 위치한 지방시 아틀리에의 문이 열렸다. 26세의 젊은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는 "미스 헵번"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할리우드의 거물급 배우 캐서린 헵번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가느다란 체구에 짧은 머리, 소박한 옷차림의 젊은 여성. 그녀는 오드리 햅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24세의 오드리는 《로마의 휴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 배우였지만, 지방시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캐서린 헵번의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를 기대했던 디자이너에게 오드리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여리고 섬세했다. 직감적 발견 초기의 당황에도 불구하고, 지방시는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는..

패션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