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216

임스 체어와 디자인 혁명

1941년 뉴욕 근대미술관 주최로 열린 '오거닉 디자인 설계공모전'에서 찰스 임스가 사리넨과 공동 출품한 성형합판 의자가 대상을 받은 순간, 20세기 디자인 역사의 분수령이 그어졌다. 의자는 권력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오브제였다. 왕좌에서 교황청의 성 베드로 좌까지, 높은 곳에 앉는다는 것은 곧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는 권력을 의미했다. 그러나 임스 부부가 만든 의자는 이러한 위계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켰다. 고가의 수공예품이 아닌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디자인으로, 모든 사람이 질 좋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합판 혁명의 시작전통적으로 고급 가구는 단일한 무거운 목재를 깎아서 만들어졌다. 이는 숙련된 장인의 손길과 값비싼 재료, 그리고 긴 제작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임스 부부는 합판(p..

디자인 2025.06.21

아이폰과 디지털 미니멀리즘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세상에 소개한 작은 사각형은 그저 새로운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 "오늘 애플은 전화를 다시 발명합니다"라고 말한 잡스의 손에 들린 아이폰은 디자인 혁명이었다. 모서리가 둥근 검은 정사각형, 물리적 키보드 없이 매끈한 정전식 터치스크린, 무엇보다도 '터치'로만 반응하는 화면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폰 이전의 전자기기들은 기능을 외관에 드러냈다. 버튼, 키패드, 안테나... 사용자는 '어디를 누를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스티브 잡스가 발표하면서 했던 말이 "버튼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스타일러스 펜은 대체 왜 써야 하냐?"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아이폰은 주요 물리적 입력 요소들을 제거하고 화면 하나에 기능을 통합했다...

디자인 2025.06.21

K-뷰티: 공장 없는 산업

K-뷰티는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보통은 브랜드의 창의성, 제품력, 마케팅 능력을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없는 것'이 중요한 변수였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오랫동안 자체 제조시설 없이도 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 구조 자체가 경쟁력의 일부로 작동해왔다. 이른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과 ODM(제조자 개발 생산) 중심의 산업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화장품 회사 다수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대기업부터 중소 브랜드까지 대부분은 코스맥스, 한국콜마, 인터코스 같은 대형 제조업체에 생산을 위탁한다. 2024년 코스맥스는 연 매출 2조 1,661억 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ODM 업계 1위를 유지했고 한국콜마는 유사한 수준의 매출을 달성했다. 국내 화장품..

패션 2025.06.21

피부의 민족, 스킨케어 공화국

2024년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약 74억 5,000만 달러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의 화장품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널리 알려진 '10단계 스킨케어'라는 개념은 실상과 다르다는 것이 조사에서 드러났다. 2021년 칸타(Kantar)가 1,500명의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아침에 평균 3개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응답이 28%로 가장 많았고, 2개 제품만 사용한다는 응답도 23%에 달했다.‘10단계 스킨케어’라는 용어는 2014년 미국의 뷰티 매거진 Into The Gloss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는 한국계 미국인 기업가 샬럿 조가 운영한 브랜드 'Soko Glam'의 마케팅 전략을 통해 확산되었다. 실제로는 한국 여성들이 복잡한 루틴을 따르기보다는 간결하고 ..

패션 2025.06.21

<재벌집 막내 아들 2/2> 불공정한 성공에 열광하는 이유

은 회귀와 복수라는 기본적인 서사를 넘어, 한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깊은 욕망과 판타지를 구현했다. 주인공 윤현우는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에서 13년간 오너 일가의 온갖 구린 일을 뒤처리하다가 살해당했으나, 이후 진도준이라는 재벌가 막내아들로 회귀한다. 문제는 그가 성공하기 위한 과정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1회부터 시청률 6%를 기록했으며, 최종화에서는 26.9%라는 높은 시청률을 달성했다. 미래 지식이라는 특권도준의 성공은 단순히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천재나 능력자가 아닌 '미래를 조금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목표를 위해 단 하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그는 KAL 858 사건, ..

드라마 2025.06.21

<재벌집 막내 아들 1/2> 이생망 세대의 판타지

JTBC 드라마 은 회귀라는 장치를 이용해 복수극과 기업 서사를 교차시킨다. 주인공 윤현우는 순양그룹의 미래자산관리팀장으로 일하다 억울하게 죽고, 1987년으로 돌아가 그룹 창업주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도준은 미래를 아는 능력을 활용해 경제적 성취와 가족 내 권력투쟁 모두에서 승리하려고 한다. 이야기의 얼개만 보면 낯설지 않다. 회귀물은 이미 2010년대 이후 웹소설 플랫폼에서 주류 장르로 자리잡았고, 복수는 한국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서사다.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회귀물의 인기는 현재를 '되돌리고 싶은 시간'으로 인식하는 집단적 정서의 방증이다. 실제로 네이버 시리즈의 2022년 종합 순위 10위 중 6개, 카카오페이지의 종합 순위 10위 중 5개가 회귀물이..

드라마 2025.06.21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상성과 환상 사이

영화는 죽은 아내가 장마철에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설정은 장르적으로 보면 판타지지만, 영화는 일상의 감정에 집중한다. 세 인물—남편 타쿠미, 아내 미오, 아들 유우지—의 작은 일상과 정서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시간의 구조를 섬세하게 짠다. 결정적인 반전(20살의 미오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서 미래로 타임슬립하여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는 설정)도 이야기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고리를 완성한다. 타쿠미가 미오를 만나러 왔다가 포기하고 돌아갔던 날, 미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뒤쫓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연출 도이 노부히로 감독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은 대사보다 시선과 공간에 담겨 있다. 비가 오는 장면에서 창밖을 보는 인..

영화 2025.06.21

로열의 무게: 국가 브랜드가 된 발레

로열 발레단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 출신의 니네트 드 발루아가 런던에서 '아카데미 오브 코레오그래픽 아트(Academy of Choreographic Art)'를 설립한 것이 시초였다. 1931년 그는 이 학교를 새들러스 웰스 극장으로 이전하며 '빅-웰스 발레 스쿨'로 변경했고, 동시에 빅 웰스 발레단을 창설했다. 드 발루아는 무용단을 만든 것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학교와 레퍼토리 시스템을 함께 구상했다.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발레 중심 국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국 안에 새로운 '국립 발레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1956년 10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로열 차터(Royal Charter)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으며, 로열 ..

발레 2025.06.20

수출하는 미사일: K-방산과 무기 외교

한때 해외 무기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이제 자국산 미사일과 유도무기를 세계 각지에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K-미사일로 대표되는 유도무기 체계와, 이를 떠받치는 한국형 방산 수출 전략이 있다. 천궁-II, 중동 방공망의 일환으로대표적인 사례는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천궁-II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수출 계약이다. 약 35억 달러 규모로, 한국 방산 역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치였다. 천궁-II는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다층방어체계로, 레이더-발사체-지휘통제소가 통합 운용되는 점에서 실전성이 높다. 이 계약은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교육, 정비, 기술지원을 포함한 포괄적 방산 협력 패키지로 구성되었다.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도 천궁-II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

시사 2025.06.20

수중에서 우주까지: SLBM과 우주발사체

한국의 미사일 전략은 오랫동안 지상 플랫폼에 기반해왔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수중과 우주라는 두 극단으로 기술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미사일 전략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핵심에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고체연료 우주발사체가 있다. 각각 수중과 대기권을 넘나드는 기술이지만, 추진체·항법·발사 플랫폼 등의 기술적 토대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한국형 SLBM은 2021년 9월, 도산안창호함에서의 수중 시험발사를 통해 처음으로 존재가 공개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7번째 SLBM 보유 사례이며, 한국 해군이 독자적인 수중 발사 능력을 갖추었다는 신호였다. 해당 미사일은 현무-2B를 기반으로 개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거리 약 400~500km, 고체연료 추진 방식이다. 도산안창호함(장보고-I..

시사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