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사일 전략은 오랫동안 지상 플랫폼에 기반해왔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수중과 우주라는 두 극단으로 기술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미사일 전략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핵심에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고체연료 우주발사체가 있다. 각각 수중과 대기권을 넘나드는 기술이지만, 추진체·항법·발사 플랫폼 등의 기술적 토대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한국형 SLBM은 2021년 9월, 도산안창호함에서의 수중 시험발사를 통해 처음으로 존재가 공개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7번째 SLBM 보유 사례이며, 한국 해군이 독자적인 수중 발사 능력을 갖추었다는 신호였다. 해당 미사일은 현무-2B를 기반으로 개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거리 약 400~500km, 고체연료 추진 방식이다. 도산안창호함(장보고-III Batch-I)에는 6기의 수직발사관(VLS)이 탑재되어 SLBM과 순항미사일의 혼용 운용이 가능하다.
SLBM이 갖는 전략적 의미는 생존성과 은밀성에 있다. 지상 발사체는 탐지와 선제타격에 취약한 반면, 잠수함에서의 발사는 위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어 실질적인 ‘2차 타격능력’ 확보에 가까운 효과를 준다. 물론 한국형 SLBM은 현재 재래식 탄두에 한정되어 있어, 전략 핵전력과 동일선상에 놓기 어렵지만, 비핵국가로서 가능한 최대치의 해상 기반 응징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향후 건조 예정인 장보고-III Batch-II급 잠수함에는 수직발사관이 최대 10기 이상 탑재될 예정이며, SLBM 플랫폼 확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와 맞물려, 기술의 상반된 방향축인 우주 공간에서도 전략적 확장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 10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시험 발사를 시작으로, 2022년 6월 실용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독자적 위성 발사 능력을 확보한 7개국 중 하나가 되었다. 이어 2023년 12월, 국방과학연구소는 고체연료 기반의 우주발사체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위성 탑재 및 궤도 진입도 확인되었다. 이는 군 정찰위성 운용을 위한 기술 실증이자, 중장거리 탄도미사일과의 기술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특히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에 비해 저장성·기동성·발사 준비 시간에서 유리하며, 탄도미사일 기술과 구조적 공통점이 많다. 2024년에는 첫 정찰위성(425호 위성 1호)이 고체연료 발사체가 아닌 미국의 스페이스X ‘팰컨9’을 통해 발사되었지만, 향후 후속 위성은 국내 개발 플랫폼에서의 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SLBM과 우주발사체는 각각 수중과 우주라는 상반된 물리적 환경에서 운용되지만, 기술적 기반은 고체연료 엔진, 관성항법장치(INS), 페이로드 분리 기술 등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심지어 개발 인력, 시험 시설, 연구 조직 역시 상당 부분 중복된다. 이는 한국이 이중용도(dual-use) 기술 기반의 자주국방 전략을 점진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기술 통합은 군사적 효용성과 동시에 외교적 부담도 수반한다. 고체연료 발사체는 군사 전용과 민간 우주 개발 간 경계가 불분명한 분야로, 주변국 및 국제사회의 감시 대상이 되기 쉽다. 특히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와의 조화, 우주기술의 평화적 이용 원칙 등을 감안한 투명한 기술 관리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현재 SLBM,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다목적 군 정찰위성, 수중 플랫폼, 우주관측 능력을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거나 확보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각각 별개의 기술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전략적 연속체’로 기능하며 억제와 감시, 보복 대응, 정보 획득 능력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체계를 구성한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유무보다도, 그 기술을 어떤 전략적 구조 속에 배치하느냐에 있다. 한국은 이제 수중과 우주라는 양 극단에서 실질적 전력을 확보한 국가로 이동 중이며, 이러한 구조적 전환은 단순한 방어 능력을 넘어, 지역 안보 질서에서의 입지 변화를 뜻한다. 기술의 외연은 확장되었고, 다음은 그것을 활용하는 전략적 상상력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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