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사일 개발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단연 '현무'다. 1986년 등장한 현무-1부터 최근의 현무-5에 이르기까지, 현무 시리즈는 단순한 무기의 계보를 넘어 한국의 전략 사유 방식 자체를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사거리, 정밀도, 탄두 중량, 발사 방식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점진적 진화를 거쳤으며, 억제력 확보를 위한 수단에서 공격적 응징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잡아 왔다.
초창기: 미국 제약 하에서의 제한적 진화
현무-1은 1986년 시험 발사를 거쳐 1987년 실전배치되었으며, 미국의 MGM-52 랜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사거리 180km, 탄두 중량 약 480kg 수준으로, 당시 한미 미사일 지침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북한의 스커드-B(사거리 약 300km)에 비해 열세였지만, 기술적 기반 확보와 양산 경험을 축적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무-1 개발에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0년대부터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MGM-52 랜스 미사일 도입을 요청했으나 미국이 거절하자,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백곰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전두환 정부는 이 사업을 중단했고, 이후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북한에 대응할 무기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현무사업을 재개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후 개발된 현무-2 시리즈는 사거리와 정확도 면에서 큰 도약이었다. 현무-2A(300km), 2B(500km), 2C(800km)는 모두 고체연료 기반 탄도미사일이며, 사거리뿐 아니라 CEP(정밀도) 개선도 이루어졌다. 특히 현무-2C는 CEP 약 30m 수준으로, 장사정포 진지나 지하벙커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이는 한반도 지형에서의 실전성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볼 수 있다.
고중량 탄두로 전환: 현무-4의 의미
현무-4는 2017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이후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사거리는 기존과 유사한 800km 내외지만, 탄두 중량이 2톤 이상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중량 탄두는 단단한 지하벙커나 미사일 사일로 같은 강화 목표물을 파괴하는 데 적합하며, 단순히 사거리를 늘리는 것보다 실전적 억제 효과가 크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현무-4는 고고도에서의 활강 없이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직접 목표에 타격을 가한다. 고속으로 하강하며, 운동에너지와 폭발력을 결합해 전술핵에 준하는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 지휘소나 핵심 군사시설을 마비시키는 '참수 작전'용으로 실전성이 강하게 의식된 무기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현무-4는 지대지(현무-4-1), 함대지(현무-4-2), 잠대지(현무-4-4) 버전으로 개발되어, 2020년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배치되었다.
순항미사일의 등장: 현무-3 시리즈
현무-3 시리즈는 순항미사일 계열로, 현무-2와는 궤도·용도·플랫폼이 다르다. 현무-3A는 500km, 3B는 1000km, 3C는 최대 1500km까지 사거리를 갖는다. 탄도미사일과 달리 저고도로 비행하며, 지형지형유도(Terrain Contour Matching) 방식으로 탐지 회피 능력이 뛰어나다.
발사 플랫폼도 다양하다. 초기에는 트럭 기반 지대지 미사일로 운용되었지만, 이후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등 해상 플랫폼에도 통합되었다. 특히 장보고-III급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현무-3은 동북아에서 매우 드문 '잠대지 순항미사일'로, 사실상 원거리 타격력을 가진 수중 발사 전력으로 평가된다.
현재 사거리 3000km급의 현무-3D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은 기존 현무-3 시리즈의 성능개량도 추진하고 있다.
현무-5와 고체연료 우주기술
2024년 10월 국군의 날에 공개된 현무-5는 '괴물 미사일'로 불리며 현무 시리즈의 최신 진화를 보여준다. 탄두 중량 8톤, 총중량 36톤으로, 세계 최대 수준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할 수 있으며, 지하 100m보다 깊은 갱도나 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벙커버스터' 역할을 한다.
현무-5의 특징은 극대화된 관통력에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탄두의 80%가 중금속으로 구성되어 충격파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한반도의 화강암 지형에서 압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지하 갱도가 무너지지 않더라도 내부 인원이 충격파로 사망할 정도의 위력을 갖는다고 한다.
현무-5는 탄두 중량에 따라 사거리가 달라진다. 탄두 중량 8톤일 경우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로 분류되지만, 탄두 중량을 1톤급으로 줄이면 사거리가 수천 km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평가가 존재한다. 이는 중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전략적 억제 수단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공식적인 사거리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2023년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공장에서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군은 미사일사령부 예하 부대에 수백 기 수준의 배치를 추진 중이다.
우주발사체 기술과의 연관성
현무 시리즈의 진화는 우주발사체 기술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2023년 12월 한국형 고체연료 우주발사체가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되었는데, 이는 추진체와 유도기술에서 고성능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기술 기반을 공유한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고체연료 발사체는 1단 고체로켓모터의 추력이 75톤급으로, 이는 현무-5 1단과 비슷한 제원을 갖는다. 군과 과학기술계는 이를 분리 관리하고 있지만, 상호 기술 간접 전용 가능성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현무 시리즈의 특징과 의의
현무 미사일 체계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진화를 보인다. 일본이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않고 요격체계에 집중한 것, 대만이 미국 기술 의존 아래 제한된 미사일만 운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독자 설계·생산·운용이 가능한 미사일 종합체계를 갖췄다. 이는 미국과의 기술 협의, 탄두 제한 해제, 대북 억제 전략이라는 복합적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 결과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정밀성'에 있다. 한국의 미사일은 전략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중률과 관통력이 핵심이 된다. 현무-2C의 CEP 30m, 현무-4의 2톤급 탄두, 현무-5의 8톤급 대형 탄두가 모두 관통·정밀 타격 능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미 미사일 지침의 단계적 완화와 2021년 완전 폐지는 현무 시리즈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979년 사거리 180km, 탄두 중량 500kg로 시작된 제약이 2001년 사거리 300km로, 2012년 800km로, 2017년 탄두 중량 제한 해제로, 마침내 2021년 모든 제한이 사라지면서 현무-5 같은 전략급 미사일 개발이 가능해졌다.
현무 시리즈는 단순한 무기 계열이 아니라, 한국이 어떤 전략적 방향을 선택해왔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물이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정밀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며, 점진적 자율성을 넓혀온 기술 축적의 성과다.
현재 현무-5의 실전배치로 북한의 지하시설 무력화 능력을 확보했고, 탄두 중량 조절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능력도 확보 중이다. 현무-3D를 통한 3000km급 순항미사일, 차세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운용의 철학이다. 단순한 보복 수단을 넘어, 억제와 안정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의 정교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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