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백곰에서 현무까지 - 한국 미사일 기술의 진화

엘노스 2025. 6. 19. 11:38

백곰(왼쪽)과 현무-1(오른쪽)

 

1979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미사일 관련 양해각서를 교환하며 사실상의 미사일 개발 제한에 합의했다. 이는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 시도를 경계하던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자체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고,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을 참고한 '백곰' 개발로 이어졌다.

백곰은 나이키 허큘리스의 외형을 기반으로 했지만 주요 구성품의 대다수를 국산화했으며, 1978년 9월 안흥시험장에서 사거리 180km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이 자체 기술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상징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미국의 우려를 자극했다. 그해 9월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 국방부에 미사일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노재현 장관이 이에 응답하면서 이른바 한미 미사일 지침이 사실상 시작되었다.

당시 합의된 기준은 사거리 180km, 탄두 중량 500kg 이내였다. 이는 자주적인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조건이었고, 그 대신 미국은 기술 자료와 장비 제공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한국 미사일 체계의 기초 개발을 간접 지원했다. 백곰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중단되었고, 이후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현무-1 개발로 재개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변화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의 억제력 확보 문제가 대두되었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는 '대포동 쇼크'로 불리며 한미 간 정책 전환을 촉진했다. 그 결과, 2001년 한국은 MTCR(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에 가입하면서 기존 지침의 첫 개정을 이끌어냈다. 사거리는 300km로 확대되었고, 탄두 중량은 기존 500kg을 유지했다.

2012년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2차 개정은 보다 실질적인 확장으로 이어졌다. 사거리 상한이 800km까지 늘어나면서, 북한 전역을 타격권에 두는 능력이 확보되었다. 탄두 중량은 그대로였지만, 사거리와 중량 간 조절이 가능하다는 원칙이 도입되어 고중량 단거리 타격 수단 개발이 가능해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간의 3차 개정에서는 800km 이하 미사일에 한해 탄두 중량 제한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이어 2020년 4차 개정에서는 민간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사라지면서, 한국의 우주기술 개발에도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2021년: 제약의 전면 종료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의 전면 종료를 선언했다. 백악관은 “한국은 이제 미사일 지침의 제한 없이 필요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42년 만의 완전한 제약 해제로, 명실상부한 '미사일 주권 회복'이라 불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결정은 단순히 기술개발의 자유를 넘어서, 전략 설계와 군사적 선택의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중거리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등 기술적 경계를 넘는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졌고, 이후 현무-4, 현무-5, SLBM 등의 시험 개발로 이어졌다.


제약 속 진화


한미 미사일 지침이 단순한 억제책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제한된 사거리와 중량 조건 속에서 한국은 관통력, 정확도, 속도 등 제한받지 않는 기술 요소에 집중하며 정밀타격 체계를 고도화해왔다. 현무-2C나 현무-4 같은 미사일은 고속, 고중량 구조를 갖추면서도 탄도미사일의 정밀도 문제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또한, 이 같은 설계 방향은 방어적 성격을 강조하는 외교적 명분과도 맞물렸다. 미국의 요구는 공격용 중장거리 미사일 통제에 있었고, 한국은 그 조건 안에서 비공격적 명분을 유지하며 고위력 무기체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약은 기술적 집중과 명분이라는 두 측면에서 독특한 진화를 만들어냈다.


북한과의 균형


2021년 이후, 한국은 다양한 중·장거리 미사일과 우주 발사 수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 국군의 날에는 탄두 중량 8~9톤급으로 추정되는 현무-5가 실물로 공개되었고, 이는 북한이 2024년 7월 공개한 화성포-11다 4.5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으로 주목받았다. 다만 북한 측 발표의 신뢰성과 실전 배치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한은 2024년 한 해 동안 30회 이상 전략무기 실험을 진행했고, 고체연료 ICBM(화성-18형)과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을 선보였다. 2025년은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이자 5개년 국방력 강화 계획의 마지막 해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사일 지침 해제는 한국이 보다 독립적으로 대응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동시에 미국과의 안보 협력에서 한국의 위상과 책임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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