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작된 중국의 일대일로(BRI) 구상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 52개 아프리카 국가가 일대일로 협정을 체결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에서 항만, 철도, 발전소 등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케냐의 몸바사-나이로비 철도(SGR)는 약 36억 달러가 투입되었고, 에티오피아-지부티 철도는 약 4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투자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했던 아프리카에 일정한 효과를 가져왔다. 물류 효율이 개선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고용이 창출되었다. 중국은 이를 '남남협력'의 일환으로 설명하며 기존 서구 원조와는 다른 실용적 개발 모델을 강조했다.
하지만 '보이는 성장'의 이면에는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이 남는다. 인프라 자체는 눈에 띄지만, 그 운용 구조와 재정적 지속 가능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케냐 SGR의 현실
몸바사-나이로비 철도는 당초 연간 2,200만 톤의 화물 운송을 목표로 했지만, 2018년 실제 운송량은 500만 톤 수준에 그쳤다. 화물 운송 비용이 기존 도로 운송보다 높아 기업들의 이용률이 저조했고, 여전히 적자 운영 중이다. 국제철도저널 보고에 따르면 운영비 상승으로 2023년 11월 케냐 정부는 1등석 요금을 19달러에서 30달러로, 이코노미석을 6달러에서 10달러로 인상했다.
케냐 국가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SGR 승객 수는 244만 7천 명으로 전년 대비 28만 명 감소했는데, 이는 50% 요금 인상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요금 인상으로 수익은 29억 4천만 케냐실링에서 40억 9천 9백만 케냐실링으로 39.4% 증가했다.
에티오피아-지부티 철도의 운영 현실
AGC NewsNet 보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지부티 철도는 2024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성과 이전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2019년 기준 승객 서비스 수익은 120만 달러에 불과했고, 승객과 화물을 합쳐도 4천만 달러 수익으로 운영비 7천만 달러에 크게 못 미쳤다.
2024년 8월 기준 32대의 화물 기관차 중 15대만 가동 가능한 상태였으며, 이로 인해 연간 화물 수송량이 설계 용량 630만 톤의 38%인 240만 톤에 머물렀다. 미국 무역부 자료에 따르면 철도의 이론적 용량은 하루 21쌍의 열차 운행이지만 실제로는 7쌍만 운행되고 있으며, 연간 화물량은 560만 톤 수준이다.
중국식 개발 모델
중국은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자국의 개발 경험을 포장한 모델을 함께 수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지부티 철도의 경우 2023년 말 중국 기업에서 에티오피아-지부티 합작회사(EDR)로 운영권이 이관되었지만, 2년간 약 80명의 중국 전문가가 기술 지원을 계속 제공하기로 했다.
케냐 SGR의 경우 중국 기업 CRBC가 5년간 운영하기로 계약했으며, 2022년부터 케냐 철도공사가 점진적으로 인수했지만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국 측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인프라 프로젝트는 '보이는 성과'를 우선시한다는 비판도 있다. 개발 효과의 질보다는 규모와 가시성이 우선시되면서, 환경 파괴나 사회적 불균형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다.
지정학적 무대에서의 전략
미국은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응해 2023년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가나, 탄자니아, 잠비아를 방문하며 대아프리카 관여 정책을 강화했다. 지부티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는 중국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가 건설되었으며, 인근에는 미군과 프랑스군 기지가 함께 존재하는 복잡한 안보 지형이 형성되었다.
중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서 1만 개 이상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3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통신망, 항만 운영권, 에너지 공급망은 점차 지역 내 주요 인프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경제 프로젝트 이상으로 평가된다.
부채와 거버넌스, 그 균열의 조짐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잠비아는 2020년 11월 아프리카 국가 중 코로나19 이후 최초로 4,250만 달러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중국 수출입은행에만 약 41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었다.
2023년 6월 중국과 프랑스가 공동 주도하는 채권단과 63억 달러 규모의 부채 재조정에 합의했다. 프랑스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2월에는 프랑스와 양자 이행 협정을 체결하여 실질적인 부채 재조정이 시작되었다. 2024년 3월에는 국제 채권자들과 30억 달러 규모의 유로본드 재조정도 완료했다.
전체 재조정 과정은 3년 반, 약 1,300일이 소요되었으며, G20의 '공동 프레임워크' 하에서 완전한 부채 재조정을 완료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채무 투명성 문제, 계약 조건의 비공개 관행 등이 비판받았다.
다층적 평가
2023년 아프리카 국가들은 217억 달러 규모의 BRI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 2024년에는 BRI 전체 투자가 707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특히 녹색 에너지 투자는 118억 달러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BRI에 대한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는 여전히 중국과의 협력을 환영하고 있으며, 반면 잠비아, 케냐 등 일부 국가는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과 거버넌스 구조에 대해 점점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중국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4년 중국의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고, 화석연료 투자에서 벗어나 더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아프리카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 정치, 지정학이 얽힌 복합적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지부티 철도가 2024년 처음 흑자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 변화도 있지만, 잠비아처럼 3년 반의 긴 부채 재조정 과정을 겪은 경우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해당 국가의 자율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협상력의 비대칭성, 계약 조건의 불투명성, 재정 여건의 제약 등을 고려할 때, 선택이 자유롭지만은 않다. 일대일로는 단순한 자금 조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권력관계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List of projects of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Mombasa–Nairobi Standard Gauge Railway", "Addis Ababa–Djibouti Railway"
국제철도저널(International Railway Journal): "Kenyan government signs contract for Phase 2B of Standard Gauge Railway" (2024년 2월)
케냐 국가통계청: "2025 Economic Survey Report"
AGC NewsNet: "Ethiopia-Djibouti Railway Turns Profitable for the First Time Amid Strategic Overhaul" (2025년 1월)
미국 무역부: "Ethiopia - Roads, Railways and Logistics"
디플로맷(The Diplomat): "The China-Built Addis-Djibouti Railway Gains Steam" (2024년 2월)
네이처 학술지: "Assessing the Belt and Road Initiative's environmental footprint" (2024)
인포탈(Infortal): "China's Belt and Road Initiative in Africa" (2024년 9월)
AP통신: "Debt-plagued Zambia reaches deal with China, other nations to rework $6.3B in loans" (2023년 6월)
프랑스 외교부: "Agreement on restructuring Zambia's debt" (2024년 12월)
로이터: "Zambia's debt restructuring limps over line as painful test case" (2024년 6월)
그린 파이낸스 개발센터: "China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Investment Report 2024"
ISS 아프리카: "Africa has much to gain from a more contained B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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