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이 네임 1/3> 복수의 대가

엘노스 2025. 6. 18. 09:00

 

복수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복수는 마지막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진다면, 여전히 정당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은 이 질문을 한 여성 인물의 행보를 통해 묻는다. 윤지우는 아버지를 죽인 이들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조직에 들어가고, 위장 신분으로 경찰에 잠입한다. 이 복수는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일까?

지우는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접근하며,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끝까지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존의 남성 복수극과 유사한 구조다. 아저씨의 차태식, 황해의 김구남처럼, 지우 역시 목적을 위해 자기파괴적 방식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윤지우는 개인적 고통에 머물지 않고, 복수의 정당성을 끝까지 의심받는 구조 속에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초반, 윤지우는 복수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반부를 지나며, 진실이 밝혀질수록 그녀의 폭력은 목적의 명확함보다 윤리적 모호성을 떠안게 된다. 믿었던 조직의 보스 최무진(박희순 분)이 사실 아버지의 죽음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었고, 자신을 이용한 경찰 조직 역시 도덕적으로 무결하지 않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복수는 점점 정의가 아닌 생존의 기제로 변한다.

마이 네임의 흥미로운 지점은, 복수의 과정이 매우 육체적이라는 점이다. 윤지우는 직접 몸으로 싸우고, 맞고, 피를 흘린다. 이는 관객이 폭력을 체험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누군가를 응징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그 응징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물리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이 폭력은 남성 서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적 폭력'으로 미화되지 않는다. 지우의 전투는 결코 멋지지 않다. 비틀거리고, 찢기고, 비명을 동반한다. 이러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고통의 리얼리즘을 구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의 윤리성을 되묻게 만든다. 폭력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변형시킨다. 윤지우는 복수를 실행하면서 '괴물'이 되고자 결심했지만, 결국 괴물이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복수의 고립, 감정의 부재

복수극은 종종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조명한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윤지우 역시 과거를 묻고, 현재를 뒤흔드는 관계 속에서 복수를 수행한다. 그는 전필도(안보현 분)라는 인물과 신뢰를 쌓아가지만, 이 관계는 끝내 지속되지 못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지우는 다시 고립된다. 복수는 그 어떤 관계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필도와의 관계는 윤지우에게 처음으로 인간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감정적 유대는 복수라는 목적과 충돌하며,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최무진이 전필도를 지우의 눈앞에서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은 복수가 개인의 행복과 관계를 얼마나 철저히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지우는 점점 무표정해지고, 말이 적어지며, 끝내는 누구에게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복수가 완성될수록, 그녀는 점점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상실해간다.

폭력의 순환을 끊을 수 있는가

 

윤지우는 결국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제거한다. 차기호 팀장(김상호 분)과 최무진 사이의 복잡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복수의 대상조차 명확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승리는 허무하다. 조직은 붕괴되고, 경찰과의 관계도 끝났으며, 지우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녀는 더 이상 복수할 대상도, 돌아갈 곳도 없다.

드라마는 복수의 완성이 아니라 폭력의 순환을 보여준다. 아버지 윤동훈(윤경호 분)이 사실은 송준수라는 본명의 언더커버 경찰이었다는 진실은 복수의 의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지우의 복수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의 고리를 만들어낼 뿐이다.

복수 이후에 남는 것

마이 네임에서 윤지우의 여정은 복수의 완성이라기보다, 폭력과 고통의 심연에 다다르는 과정이다. 그녀가 되찾은 것은 정의가 아니라, 모두가 떠난 이후의 침묵뿐이다. 이 드라마는 화려한 응징도, 속 시원한 해결도 주지 않는다. 대신 복수의 끝에서 남는 상실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마이 네임은 복수극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그 결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복수는 불의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지만, 결코 회복이나 구원이 아니다. 복수는 타인을 겨냥한 칼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더 깊이 베는 칼날일지도 모른다. 그 칼을 들고 달린 끝에, 윤지우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묻지 못한 채, 그냥 사라진다. 복수의 대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