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사막의 신기루: 네옴이 남긴 것들

엘노스 2025. 6. 27. 09:24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프로젝트가 세상에 공개된 지 7년이 지났다. 사막 한복판에 길이 170km, 높이 500m의 거대한 미러 시티를 건설해 900만 명이 살게 하겠다는 계획.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탄소 제로 도시라는 화려한 슬로건까지.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7년 동안 약속된 예산의 10%도 쓰지 못했고, 완공 시기는 15년이나 연기됐다. 처음 계획했던 170km는 고작 2.4km로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탄소 제로'를 외치는 도시를 짓는 과정에서만 18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네옴은 정말 기후위기의 해답일까, 아니면 역대급 그린워싱일까?

네옴의 핵심인 '더 라인'은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170km 길이, 500m 높이, 200m 폭의 선형 도시다. 9백만 명이 살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 될 예정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원래 2030년에 완공하겠다던 계획은 2045년으로 밀렸다. 그마저도 1단계는 170km가 아닌 겨우 2.4km만 짓기로 했다. 98% 이상 줄어든 셈이다. 2030년까지 150만 명을 입주시키겠다던 목표도 30만 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현재 14만 명의 건설 노동자가 투입되어 있고, 하루 2만 입방미터의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공장도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필요한 기초 파일 3만 개 중 1,000개만 완성된 상태다. 3%에 불과하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CEO가 사임하고 여러 유명 건축가들이 인권 문제를 이유로 프로젝트를 떠나면서 내부 혼란까지 드러났다.

탄소 제로? 18억 톤의 진실

네옴이 가장 강조하는 건 '탄소 제로 도시'라는 점이다. 하지만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필립 올드필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네옴을 짓는 과정에서만 18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영국이 4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네옴을 지으려면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20%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옴 측도 이를 공식 인정했다. 철강과 시멘트 산업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고탄소 산업이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생에너지 현황은 어떨까? 전체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고작 0.1%다. 99.9%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2030년까지 50%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현재 속도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18억 톤의 탄소를 뿜어내며 짓는 도시가 어떻게 '탄소 제로'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막의 물, 바다의 죽음

사막에 거대 도시를 짓자면 물이 필수다. 사우디는 이미 세계 최대 담수화 국가로, 식수의 70%를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다. 

문제는 담수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빼내고 남은 고농도 염수가 다시 바다로 흘러든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4개국이 전 세계 염수 배출량의 55%를 차지한다. 하루에만 1억 4천만 입방미터가 바다로 흘러간다.

이 염수는 그냥 짠물이 아니다. 구리, 염소 같은 화학물질이 섞여 있어 바다 생물에게 독성을 일으킨다. 실제로 페르시아만의 염도는 자연 상태보다 훨씬 높아져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 염도 39psu보다 훨씬 높은 67psu까지 측정된다.

네옴이 완성되면 홍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철새들의 무덤

네옴 예정지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는 철새들의 주요 통로다. 매년 21억 마리, 100여 종의 새들이 이곳을 지난다. 

그런데 170km 길이의 거대한 거울 벽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새들은 거울에 비친 하늘을 진짜 하늘로 착각해 충돌한다. 네옴 내부 문서에서도 "상당한 수의 새들이 죽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환경영향평가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21억 마리가 지나는 길목을 가로막는 프로젝트인데도 말이다.

피로 물든 꿈의 도시

네옴이 들어설 땅에는 수 세기 동안 후웨이타트 부족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들을 강제로 내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7명이 체포됐고, 5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15명은 15년에서 5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2020년 4월에는 이주를 거부하던 압둘라힘 알-후웨이티가 사우디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UN 인권이사회는 이들에 대한 사형 선고가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긴급 중단을 요구했지만, 사우디는 무시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이주 노동자들 상황도 심각하다. 국제건설목재노조가 국제노동기구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 85%가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채무 노예 상태
- 65%가 여권을 빼앗긴 채 일하고 있음  
- 46%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함
- 하루 16시간, 주당 84시간 노동이 일상

파키스탄 엔지니어 압둘 왈리 스칸다르 칸은 가드레일이 무너져 사망했고, 네팔 노동자 바드리 부젤은 터널 공사 중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네옴은 총 5,000억 달러가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홍보됐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제로 쓰인 돈은 370-500억 달러, 전체의 10%도 안 된다.

5,000억 달러는 사우디 GDP의 43.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연간 정부 예산의 146%에 달한다. 애초에 현실성이 의심스러운 숫자였던 셈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도 실패했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2022년 실제로는 80억 달러만 들어왔다. 결국 석유 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네옴을 관리하는 국부펀드가 전체 프로젝트 예산을 20-60% 삭감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실패한 꿈의 도시들

네옴과 비슷한 프로젝트들을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UAE의 마스다르 시티는 5만 명이 살 세계 최초 탄소 제로 도시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6,000-15,000명만 살고 있고, 탄소 제로 목표도 포기했다. 태양광 패널이 모래바람 때문에 효율이 40% 떨어지자 결국 화석연료 전력망에 연결했다.

사우디의 킹 압둘라 경제도시는 어떨까? 1,000억 달러를 투입해 200만 명이 살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7,000명만 살고 있다. 완전한 실패작이다.

그린워싱의 교과서

네옴은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다.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18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며 짓는 도시가 '탄소 제로'를 내세우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0.1%인 나라에서 '100% 재생에너지 도시'라고 포장한다. .

인권 침해도 심각하다. 원주민을 강제로 내쫓고 사형까지 시키면서 '인류를 위한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

7년 전 화려한 홍보 영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네옴. 하지만 현실은 처참하다. 예산은 10%밖에 못 썼고, 규모는 98% 줄었으며, 일정은 15년이나 밀렸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나온다. 과장된 약속 대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인권을 무시한 개발 대신 주민과 함께하는 발전을, 자연을 파괴하는 건설 대신 환경을 생각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네옴이 기후위기의 해답이 되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네옴은 기후위기의 해답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대한 환경 파괴 프로젝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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