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의 탈오일 전략이 국가 차원의 거시적 설계라면, 그 실험의 최전선에는 두바이라는 도시국가가 있다. 아부다비가 국부펀드와 에너지 기반의 안정성을 추구해온 반면, 두바이는 스스로를 석유 없는 도시로 규정하며, 21세기 글로벌 자본과 관광, 기술을 끌어들이는 쇼윈도로 기능해왔다.
석유 없는 도시는 어떻게 탄생했나
두바이는 초기엔 석유 산업에 기반해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이후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결과 현재는 도소매업, 운송 및 물류, 금융 서비스, 관광업 등이 주요 경제 부문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기준으로 석유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에 그친다.
1990년대부터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자, 두바이 정부는 이를 위기가 아닌 전환의 기회로 보았다. 비석유 산업의 GDP 비율을 실질적으로 100%에 가깝게 끌어올리고, 자본집약적 산업을 통해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했다. 그 결과 2003년 기준으로 비석유 부문이 GDP의 93%를 차지했으며, 현재는 탈석유 경제 구조가 거의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경제 전환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프로젝트로는 1999년의 버즈 알 아랍, 2007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팜 주메이라 인공섬, 그리고 2010년 개장한 세계 최고층 건물인 버즈 칼리파가 있다. 이들은 두바이가 석유 없이도 번영할 수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시스템
두바이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매우 적극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여러 자유무역지대에서는 외국인의 100% 지분 소유가 가능하며, 소득세나 법인세도 거의 부과되지 않는다. 특히 2004년 설립된 두바이 국제금융센터는 영미법에 기반한 독립 사법 시스템을 갖추면서 글로벌 금융기관의 신뢰를 확보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HSBC, 도이치은행, 시티그룹 같은 주요 금융사들이 두바이에 진출했고, 구글, 페이스북, 메타 등의 IT 기업도 중동 지역 허브로 이 도시를 선택했다. 2020년대 이후에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 기반 스타트업 유치를 위한 디지털 전략도 강화되고 있다.
관광과 부동산의 양면성
두바이의 관광 전략은 단기 실적이 뚜렷하다. 2022년에는 1,436만 명의 외국인 숙박 관광객이 방문해 전년 대비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86%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같은 해 전 세계 평균 회복률인 63%를 훨씬 웃돈다. 두바이는 3년 연속 글로벌 여행지 1위로 선정되었고, 쇼핑 페스티벌과 EXPO 2020,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해왔다.
그러나 관광과 부동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구조적 취약점도 안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두바이는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2009년 11월에는 국영기업 두바이월드가 260억 달러 규모의 부채에 대해 상환 유예를 선언했고, 부동산 가격은 단기간에 40% 이상 하락했다. 2009년 12월에 아부다비가 1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과 추가로 100억 달러를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두바이의 재정은 파산에 가까운 상태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두바이 경제의 기반이 얼마나 유동적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후에도 고층 오피스와 고급 주택의 공급 과잉은 반복되고 있으며, 경기 둔화기마다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경제에 충격을 주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산업 구조가 다양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관광과 부동산 의존도가 높은 점은 불안 요인이다.
노동 구조와 사회적 긴장
두바이의 경제적 효율성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UAE 전체 인구 944만 명 중 88%가 외국인이며, 두바이는 이보다 더 높은 92%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며, 이들은 주로 건설, 서비스, 운송, 청소 등의 분야에서 일한다. 시민권은 거의 부여되지 않으며, 이들 노동자는 제한된 권리 아래 생활하고 있다.
성비 불균형도 두드러진다. 남성이 약 69%로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노동자 대부분이 독신 남성이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 시스템이 사실상 전근대적인 고용 후원제, 즉 카팔라 제도와 유사하다고 비판해왔다. 카팔라 제도는 고용주(스폰서)가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자격과 법적 지위를 전적으로 통제하는 후견 기반 제도로, 노동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이직이나 장기출국이 어렵고 여권 압수나 임금 체불 등 다양한 인권 침해에 노출된다. UAE는 2022년과 2024년에 노동법 개정을 통해 고용주 처벌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후원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어 구조적인 종속 관계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한편, 고소득 전문직 외국인 거주자들은 소비와 투자 측면에서 두바이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계층이지만, 이들 역시 비자 체류자일 뿐 시민권이 없다는 점에서 높은 유동성과 불확실성 속에 존재한다.
기술 도시로의 진화
두바이의 스마트 시티 전략은 1999년의 ICT 도입에서 시작되어, 2014년 스마트 두바이 프로젝트로 본격화되었다. 현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해 행정, 교통, 보안 체계를 디지털화하고 있으며, 혁신 기관인 Dubai Future Foundation과 Area 2071도 설립되어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도시 전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화가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냐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효율성과 안전성이 높아지는 반면, 감시와 통제의 가능성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얼굴 인식 순찰, 실시간 차량 추적, 통합 행정 시스템 등은 현실화되었다.
보여주는 도시, 그러나 지속 가능할까
두바이는 성공적인 도시 브랜드이자 자본 유입 플랫폼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그 기반은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 투자자와 노동자에 의해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글로벌 경기와 자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도시 모델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타 도시에 복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바이는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실험해온 도시지만, 그만큼 불안정성과 모순도 내포하고 있다.
UAE 전체의 탈오일 전략이 구조 개편이라면, 두바이는 그 구조 속에서 속도와 상징성을 선택한 도시다. 그것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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