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독립 이후 아랍에미리트는 전형적인 산유국으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나라는 스스로 석유 의존을 벗어나는 국가 모델로 전환하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석유 없는 미래를 상상하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6위권의 석유 매장량 보유국으로 약 1070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지만,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4.4%로 낮아졌다. 2024년 기준, 비석유 부문은 GDP의 75.5%(1조 3,420억 디르함/25년 6월 환율 기준 약 421조 4000억원)를 구성하고 있으며, 2009년까지만 해도 85% 이상이던 석유 의존도에서 급격한 전환을 이뤄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UAE 정부는 장기적으로 세 단계에 걸친 국가 비전을 수립했다. 2021년에 종료된 ‘UAE Vision 2021’ 이후, ‘We the UAE 2031’은 2031년까지 GDP를 3조 디르함으로 확대하고 비석유 부문 비중을 더욱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Abu Dhabi Economic Vision 2030’과 ‘UAE Centennial 2071’은 각각 아부다비의 산업 다변화 전략과 국가의 50년 장기 계획을 담고 있다. 공통된 핵심은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이다.
산업 다변화: 석유 이후를 위한 준비
UAE는 항공, 물류, 신재생 에너지 등 비석유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왔다. 항공산업의 경우, 에미레이트 항공은 2024~25년 세후 순이익 191억 디르함을 기록하며 5,370만 명의 승객을 수송했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18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에티하드 항공도 2024년 17억 디르함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항만 및 물류 분야에서는 DP World가 세계 주요 항만 운영사로 성장했다. 2024년 컨테이너 처리량은 8,830만 TEU에 달했으며, 전 세계 40개국에서 78개 터미널을 운영하며 200억 달러 규모의 연간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마스다르 시티는 아부다비가 주도한 대표적인 친환경 도시 프로젝트로, UAE의 탈석유 전환을 상징한다. 2008년 착공된 이후 현재 약 1만 5천 명의 거주자와 통근자가 생활하고 있으며, 1,00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마스다르 시티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본부를 유치한 중동 최초의 국제기구 도시이기도 하다. 지멘스 중동 본부, UAE 우주청, G42 인공지능 기업, MBZUAI(모하메드 빈 자이드 AI 대학교) 등도 이곳에 모여 에너지·우주·AI 분야의 연구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건물 에너지 절감률은 일반 빌딩 대비 40% 이상이며, 물 사용량도 40% 줄었다. 거리 온도는 주변 사막보다 5~10도 낮고, 전체 도시 전력은 87,777개의 태양광 패널에서 공급된다.
현재도 확장 계획이 진행 중이다. 2024년 완공 예정인 ‘마스다르 시티 스퀘어(MC2)’는 29,000㎡ 규모에 넷제로 에너지 오피스 빌딩을 포함한 7개 건물이 포함된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더 링크(The Link)’는 30,000㎡ 복합 개발로 넷제로 기준을 충족하는 주거·사무·상업공간을 조성한다. 다만, 당초 20201만 5천 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넷제로(탄소 중립) 오피스는 건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무실을 목표로 한다.
교육과 과학기술: 새로운 성장 동력
UAE는 지식 경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 교육기관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캠퍼스는 2010년 개교 이후 120개국 출신 1,6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중동 최초로 로즈 장학생 22명을 배출했다. 소르본 아부다비는 2006년 개교해 프랑스어, 영어, 아랍어로 수업을 제공하며 60개국 이상 출신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2019년 설립이 발표된 ‘MBZUAI’는 세계 최초의 대학원 중심 AI 연구 대학으로, 2021년 개교했다. 첫 입학생 78명 중 52명이 2022년 졸업했고, 이 중 91%가 UAE에 잔류했다. 2025년부터는 학부 과정도 신설됐다.
2020년 7월 19일에는 자체 개발한 화성 탐사선 ‘Hope’를 발사해, 2021년 2월 9일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이는 세계 다섯 번째이자 아랍권 최초의 성공 사례였다.
국부펀드와 금융 전략
UAE는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아부다비 투자청(ADIA)은 약 4조 디르함 규모의 운용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로, 2024년 한 해 동안 630억 디르함(25년 6월 환율 기준 약23조 4천억원)을 투자했다. 선진국 주식, 사모펀드, 신흥시장 자산 등에 분산 투자하며 20년 평균 수익률은 6.4%, 30년 평균 수익률은 6.8%다.
AI 및 기술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00명 이상의 퀀트 인력을 포함한 ADIA Lab을 통해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한편,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는 2024년 기준 6,920개 활성 기업과 7,000억 달러의 운용자산을 기록하며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에서 세계 12위에 올랐고, 아부다비 글로벌 마켓(ADGM)도 2024년 운용자산 기준으로 중동 2위에 올랐다. 두 기관은 독자적인 법률 체계와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구조적 한계와 이중성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여러 제약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UAE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적인 구조다. 전체 인구 1,030만 명 중 88.1%가 외국인이고, 노동력의 90% 이상이 비UAE 출신이다. 정부는 170억 디르함 규모의 에미레이트화 프로그램(NAFIS)을 통해 자국민 고용을 늘리려 하고 있으나, 근본적 해결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정치적 자유나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비판도 존재한다. 과학기술 투자와 보수적 통치체제가 공존하는 독특한 이중 구조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환의 실증적 성과
2024년 UAE는 GDP 성장률 3.8%, 비석유 GDP 성장률 4.6%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은 1.7%로 안정적이며,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10.7% 수준이다. 중앙은행은 2025년 4.7%, 2026년 5.7%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이후’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그 대응에 나선 국가 중 하나다. 비석유 부문 GDP 비중 75.5%, 항공과 물류 산업의 세계적 위상, 교육과 AI 중심의 연구 허브, 최대 규모 국부펀드 운용 등은 이 전환이 단지 계획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전략은 자원에 의존해온 국가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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