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8.8조 달러의 미래: 네옴 프로젝트 8년의 팩트 체크

엘노스 2025. 6. 27. 09:10

 
2017년 10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인근 사막지대에 총 면적 26,500㎢ 규모의 미래형 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 주도 발표한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비전 2030'이라는 국가 개혁 로드맵의 상징적 기획으로 등장했다. 네옴은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국가 체제 전환, 기술 주권 확보, 탈석유 경제 전략, 그리고 외교적 재포지셔닝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프로젝트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가 '미래'를 향해 열어젖히는 창일지, 혹은 정교하게 설계된 권위주의적 기계장치일지는 더욱 불확실해졌다. 2025년 3월 월스트리트저널이 공개한 내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애초 5,000억 달러로 추정되었던 총 비용은 8.8조 달러로 급증했으며, 완성 목표는 2080년으로 연기되면서 네옴은 기술적 유토피아와 감시적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테크노 미래 도시의 설계도와 축소된 현실

네옴의 핵심 구성은 다음과 같다.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km에 달하는 선형 도시 '더 라인(The Line)'을 중심으로, 떠다니는 산업 도시 '옥사곤', 고산지대 관광지 '트로제나', 럭셔리 섬 리조트 '신다라' 등이 연계되어 있다. 이 도시는 자동차와 도로가 없으며, 인공지능 기반 운영 체계가 도시의 모든 기능을 통합적으로 제어하는 구조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 실시간 공기질·소음·보행 패턴 모니터링, 이중 유리로 덮인 파사드 설계 등 '지속 가능성과 기술 혁신'을 명시적으로 전면화하고 있다.
 

옥사곤


하지만 2025년 현재, 야심찬 계획은 현실과 마주하며 대폭 축소되었다. 2024년 4월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애초 2030년까지 150만 명의 거주민을 목표로 했던 더 라인은 3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170km 전체 길이 중 2030년까지는 단 2.4km만 완성될 예정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러한 보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복수의 독립적인 소스들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다. 2025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네옴 임원들은 더 라인의 완전한 건설과 거주민 정착에는 약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네옴은 왜 지금, 사우디에서 가능한가

네옴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가 미래를 독점하는 방식'이자, 정치 권력의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지만, 석유 의존 경제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내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통해 관광, 첨단산업, 문화산업을 국가 차원의 신성장 동력으로 설정했고, 네옴은 그 모든 상징을 압축한 거대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네옴은 외교적 이미지 재편의 수단으로도 작동한다.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국제적 비난에 직면했던 사우디는, 네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을 '혁신국가', '기후의식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다시 포지셔닝하려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주요 파트너십으로는 에어 프로덕츠 앤 케미컬스(84억 달러 그린 수소 프로젝트), 삼성물산(13억 리얄 건설 로봇 기술), DSV 로지스틱스(100억 달러 합작 투자) 등이 있으며, 국제 자본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2025년 2월 기준, 네옴 프로젝트에는 이미 5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이는 기본 인프라 구축에만 사용된 비용이다.

소외된 사람들과 지워진 땅

그 이면에는 도시 설계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네옴 건설지 인근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후와이타트(Howeitat) 부족은 프로젝트로 인해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들에 대한 탄압은 2020년 1월 1일 알-쿠라이바, 샤르마, 가얄 마을 주민들에게 강제 퇴거 명령이 내려지면서 시작되었다.

2020년 4월 13일 오전 5시 40분, 재무부 직원이었던 43세 압둘 라힘 알-후와이티가 토지 등록 위원회의 접근을 거부한 후 사우디 보안군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온라인에 동영상을 올려 강제 퇴거에 항의했으며, 정부가 자신의 집에 무기를 심어 누명을 씌울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었다.

이후 탄압은 더욱 조직적으로 이어졌다. 2023년 2월 ALQST(사우디 시민사회·정치권리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네옴 건설과 관련해 총 47명의 후와이타트 부족민이 구금되었다. 2023년 1월 23일, 사우디 특별형사법원은 압둘 라힘의 형제인 샤들리 알-후와이티를 비롯해 부족민 5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다른 3명에게는 27년에서 50년의 장기 징역형을 선고했다. 2023년 5월 3일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들의 행위가 '가장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들은 강제 퇴거에 저항했을 뿐이라며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다.

보상 문제에서도 심각한 불공정이 드러났다. 정부는 공정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실제 지급된 금액은 가족당 17,000리얄(4,500달러)에서 620,000리얄(165,000달러)까지 큰 편차를 보였다. 한편 정부는 부족 지도자들에게 100,000-300,000리얄의 뇌물을 제공하며 저항 운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폭력은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도시 설계 그 자체가 누군가의 삶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옴은 빈 땅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동체의 기억과 서사가 깃든 공간 위에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 이상향인가, 감시 체제의 실험실인가

네옴의 기술적 특징 중 하나는 전면적 데이터 통합 시스템이다. 네옴의 기술 자회사 토노무스의 CEO 조셉 브래들리는 "거주민의 스마트폰, 집, 얼굴 인식 카메라, 기타 다양한 센서"에서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스마트 시티가 "1% 미만"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생성된 데이터의 90% 이상"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토노무스는 "초당 수백만 건의 이벤트를 검토"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AI 기반 인지 보안 플랫폼"을 운영하며, 예측 서비스, 자동화된 도시 관리, 디지털 트윈 기술, 실시간 행동 패턴 인식 등을 포함한다. 퀸즈 대학교의 빈센트 모스코 교수는 "감시에 대한 우려는 정당하며, 이는 사실상 감시 도시"라고 평가했다. 

예컨대 네옴의 거주민은 출입 동선, 식사량, 운동량까지 추적당할 수 있고, 시스템은 이를 기반으로 자동화된 생활 관리와 보건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웰빙'을 위한 조치지만, 동시에 개인의 통제권을 국가 시스템이 대체한다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지닌다.

비용 급증과 프로젝트의 불확실한 미래

2025년 3월 월스트리트저널이 공개한 내부 감사 보고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네옴 프로젝트의 총 비용은 당초 5,000억 달러에서 8.8조 달러로 급증했으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연간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첫 번째 단계만 해도 3,7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전체 프로젝트 완성은 2080년으로 연기되었다. 감사 보고서는 경영진과 맥킨지 앤 컴퍼니가 "의도적 조작"을 통해 비용 예측을 부풀렸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사우디 경제부 장관 파이살 알 이브라힘은 "모든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규모 축소를 부인했지만, 여러 독립적인 보고서들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다.

리더십 변화와 컨설팅 업계의 영향력

네옴의 리더십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초대 CEO 클라우스 클라인펠트(2017년 10월-2018년 7월)가 왕세자의 고문으로 승진한 후, 나드미 알-나스르(2018년 8월-2024년 11월)가 CEO를 맡았다가 재정적 압박 속에서 사퇴했다. 현재는 아이만 알-무다이퍼가 2024년 11월부터 대행 CEO를 거쳐 2025년 5월 정식 CEO로 임명되었다.

주목할 점은 국제 컨설팅 업계의 막대한 영향력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PIF(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에 100명 이상의 컨설턴트를 파견했으며, 맥킨지는 연간 1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한 자문을 넘어 프로젝트의 전략적 방향성과 비용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 상황

2025년 6월 현재 일부 성과도 있다. 신다라 섬은 2024년 10월 개장했고(당초 계획보다 3년 지연, 비용 3배 초과), 트로제나는 2029년 아시아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2026년 개장 예정이다. 네옴 그린 수소 프로젝트는 85% 완성되어 2026년 상업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초 약속된 미래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더 라인의 첫 번째 구간인 '히든 마리나'는 2.5km 길이로 2030년 완성 예정이며, 20만 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이는 애초 발표된 170km, 900만 명 계획과는 현저한 차이다.

결국 네옴은 단순히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미래를 설계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기술은 항상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느냐는, 그 사회의 권력 구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네옴이 제시하는 미래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특정 권위가 인간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8년간의 검증된 사실들은 네옴이 당초 약속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용은 17.6배 증가했고, 규모는 대폭 축소되었으며, 인권 침해는 체계적으로 발생했다. 맥킨지 같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동안, 실제 거주민들은 강제 이주와 탄압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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