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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1/2> 타임 리프의 덫

엘노스 2025. 6. 22. 08:12

 

어느 여름날, 평범한 여고생 마코토는 어느 날 뜻밖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리프' 능력을 얻게 된다. 그녀는 그것을 사소한 일상에 써먹는다. 아침 지각을 피하거나, 친구 치아키의 고백을 피해 도망치거나, 수학 시험을 다시 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 능력은 처음엔 재미있고 통쾌하다. 그러나 반복이 쌓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무겁고 낯설어진다.

타임리프는 흔히 SF 장르에서 시간의 구조나 인과를 탐구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하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0대의 일상'을 되감는 수단으로 단순화한다. 이때 반복되는 장면들은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마코토는 자신이 겪은 창피, 후회, 난처함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책임 회피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특히 그녀가 친구 치아키의 고백이나 코스케와의 미묘한 관계를 반복적으로 피하는 모습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10대의 심리를 드러낸다.

마코토는 자신의 시간 조작이 타인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을 대신해 시험을 본 코스케가 사고를 당하고, 무심코 넘긴 대화 하나가 친구를 상처 입힌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무책임하게 개입한 대가를 겪는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 기회를 써서, 치명적인 사고를 막는다. 그리고 더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시간이라는 자유를 잃고 난 후, 마코토는 처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반복은 끝나고, 그녀는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소녀가 성장하는 '순간'이라기보다, 성장을 회피할 수 없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판타지로 제공하면서도, 반복이 끝난 이후의 세계를 정교하게 준비해둔다. '되돌릴 수 있다'는 감각은 한편으로는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모든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위험도 안고 있다. 마코토는 그 무게를 체감하고 난 후에야, 그간의 반복이 사실은 '결정하지 않음'이라는 형태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감정에 책임을 지지 않고, 관계에서 도망치고, 실수를 없던 일로 만드는 삶은 더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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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여행이라는 환상 아래 감춰진 10대의 불안을 섬세하게 다룬다. 쓰쓰이 야스타카의 1965년 원작 소설의 20년 후를 그린 이 2006년 작품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사회가 겪은 장기 침체와 청년층의 고용 불안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반복의 끝에서 소녀는 결국 '되돌아가지 않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진짜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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