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후반부는 마코토의 타임리프 능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복은 끝났고, 시간은 다시 한 방향으로 흐른다. 남은 건 상실과 책임, 그리고 끝내 이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여운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특별한 설명 없이 조용하게 따라간다. 떠난 이와 남겨진 자, 기억하는 이와 잊혀지는 이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치아키의 시간, 마코토의 계절
치아키는 처음부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를 아는 듯한 직감을 갖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듯 그는 먼 미래에서 온 인물이며, 마코토와 함께한 시간은 그에게도 유일무이한 경험이다.
하지만 치아키에게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정해진 타임리프 횟수를 넘기면 그는 돌아가야 하며,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마코토는 치아키를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붙잡을 수 없다. 치아키가 시간을 넘는 이유와 마코토가 시간을 되돌린 이유는 애초에 달랐다. 치아키는 '다시 보기 위해' 시간을 왔고, 마코토는 '피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 그 차이는 이별의 순간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않은 감정, 완성되지 않은 대화 속에서 관계를 구성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치아키의 마지막 말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고백이다. 그리고 "기다릴게"라는 마코토의 대답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마코토는 시간의 반복을 통해 수많은 선택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치아키는 다르다. 그는 모든 기억을 안고 떠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특별한 이유는, 미래에서 온 인물이 과거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아키는 어떤 일도 고치지 않으려 한다. 그는 단지 보고 싶었던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만난 누군가와 잠시 함께하기 위해 시간을 건넜을 뿐이다.
관계 이후의 시간
보통 청춘영화는 개인의 성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마코토는 뚜렷하게 '성장'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녀는 여전히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여름방학은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관계를 되돌릴 수도 없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성장이라는 단어보다 '남겨진 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기억 속에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데리고 미래로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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