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유럽: 저출산 사회의 선택지

엘노스 2025. 7. 8. 16:11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를 경험한 대륙이다. 1980년대 이후 많은 국가에서 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을 밑돌기 시작했고, 2023년 유럽연합(EU) 전체 평균 출산율은 1.3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단지 수치의 하락뿐 아니라, 그 변화의 속도와 지역 간 격차, 정책 대응의 실효성 등이 복합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기준 불가리아(1.81명), 프랑스(1.66명), 헝가리(1.55명)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몰타(1.06명), 스페인(1.12명), 리투아니아(1.18명) 등은 1.2명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출산 장려금, 세제 혜택, 육아휴직 제도, 이민 정책 등 다양한 대응이 시도되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문화적 저항과 사회적 갈등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


스웨덴은 1995년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하면서 성평등 육아 문화를 제도화했다. 전체 480일의 육아휴직 중 한쪽 부모가 최소 90일은 반드시 사용해야 하며, 휴직 중 급여는 약 77% 수준으로 보전된다. 이 제도의 도입 이후 출산율은 2000년 1.54명에서 2010년 1.98명까지 상승했다. 남성 육아휴직 참여율도 25%에 이르렀고, 북유럽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출산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2024년 기준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43명으로 낮아졌으며, 이는 복지 제도만으로는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나 삶의 불안정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남유럽: 청년실업과 돌봄의 사각지대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여전히 전통적 가족 중심의 돌봄 구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2024년 기준 약 27% 수준으로, 유럽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고실업 상황은 비정규직 확대와 주거 불안정으로 이어지며, 자녀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된 한계는 '여성이 육아를 책임진다'는 전통적 성역할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다. 공공 보육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동시장에서 육아와 경력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제도적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출산은 점점 더 개인의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다.


프랑스: 제도 개선의 지속성과 한계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가운데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1.66명으로, 유럽연합 평균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그러나 같은 해 출생아 수는 약 67만 8천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프랑스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출산율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데도 신생아 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프랑스의 가임기 여성 인구 자체가 줄고 있다. 20~39세 여성 인구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감소했고, 이는 전체 인구 구조의 고령화와 연결된다. 둘째, 첫 자녀 출산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도 뚜렷하다. 프랑스 여성의 평균 초산 연령은 거의 30세에 이르며, 이로 인해 출산 자체를 포기하거나 한 자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셋째, 팬데믹 이후의 경기 불안과 물가 상승, 주거 비용 부담 등이 출산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제도적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24년 1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인구 재정비 계획을 발표하며 출산휴가 제도의 전면 개편과 불임 예방 정책을 포함한 인구 대책을 예고했다. 기존의 부모 분담형 육아 수당은 수급 기간을 줄이되, 월급 비례 보상 방식을 도입해 실질 보전율을 높이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출산 장려금을 넘어, 제도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보강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례는 제도가 일정 수준 성과를 냈더라도, 인구 구조와 사회적 변화의 압력이 더 크면 출산 회복이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복지 확대만으로는 출산 감소를 막기 어렵고,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동유럽: 현금 지원의 명암


헝가리는 2010년대 들어 출산 장려 정책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세 번째 자녀를 낳을 경우 주택 구매 보조, 무이자 대출, 차량 구입 지원까지 제공하는 과감한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2023년 기준 헝가리의 출산율은 1.55명으로, 일정 수준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구조적 반전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규모 현금 지원만으로는 청년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민을 통해 일정 수준의 인구 증가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전체 신생아 중 약 25%가 외국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보완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민은 사회통합의 과제를 동반한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 이후 대도시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이민자 커뮤니티의 소외가 사회 불안으로 이어진 바 있으며,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극우 정당의 부상이 이민 정책에 대한 불신을 확대시키고 있다.


팬데믹 기간 중 2021년에는 일시적으로 EU 평균 출산율이 1.53명으로 상승했으나, 이후 다시 하락세로 전환됐다. 2022년에는 1.46명, 2023년에는 1.38명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시적인 재택근무와 가정 내 시간 증가가 단기적 영향은 줬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출산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의 지속성과 사회 구조의 변화


유럽 각국의 인구 정책은 제도 그 자체보다도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사회적 신뢰, 정책의 지속 가능성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리고 있다. 단기적 보조금이나 혜택보다, 삶의 전체 궤적에서 예측 가능한 구조가 출산 결정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점차 공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시도도 병행되고 있다. 독일은 지방 중소도시에 대한 이민자 유입을 유도하고 있고, 프랑스는 농촌 지역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대도시 중심의 양육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분산시키려는 정책적 조정이 진행 중이다.

유럽은 인구 감소를 되돌리려 하기보다, 감소하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고민하고 있으며, 출산율 회복의 가능성은 사회 전체의 구조 변화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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