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일본식 해법

엘노스 2025. 7. 6. 13:43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구 감소 시대에 진입한 나라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 지역 소멸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1990년대부터 동시에 진행됐고, 2008년을 전후해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인구의 약 29.3%가 65세 이상이다. 유엔과 일본 정부는 2100년까지 인구가 8천만 명 안팎으로 줄어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단순한 '감소'보다 그 이후 사회가 어떤 구조적 적응을 시도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로 평가된다. 특히 고령화 속에서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실험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참조할 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지역에서 먼저 무너진 인구 구조

일본 인구 문제의 출발점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중이다.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방 도시와 농촌 지역은 고령층만 남고 청년층은 빠르게 유출되었다. 이 흐름은 '지방 소멸'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2014년 일본 창성회의는 전국 1,800여 개 기초지자체 중 896곳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전국 곳곳에서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산간 마을은 행정구역 통폐합 대상이 되었다. 지역 의료 인력 부족과 농촌의 빈집 방치 문제는 지방 경제 전체를 위축시켰고, 특히 중소 제조업과 관광 산업에 의존하던 지역은 소비자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에 직면했다.

고령 인구를 '노동력'으로 재편성하다

일본 정부는 인구 감소 속에서 고령층을 새로운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강화했다. 정년 연장, 고령자 재고용 제도, 간병·보건 등 고령자 친화 직업군 확대가 주요 정책 축이다. '70세까지 일하는 사회'를 표방하며,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지원 제도가 마련되었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취업률은 25.2%에 이르며, 65~69세 집단의 취업률은 50%를 넘는다. 전체 취업자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3.6%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기업들도 정년을 폐지하거나 상향 조정하는 추세다.

도시 인프라도 이에 맞춰 변모 중이다.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는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 개선, 고령자 전동보행기 대여, 병원과 연결된 커뮤니티 공간 조성 등이 추진되고 있으며, 금융상품·보험·주거 설계 등 고령 친화 산업이 확대되며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유입이라는 신중한 선택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민에 보수적인 국가였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인력 유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특히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인재를 중심으로 간병, 건설, 농업 분야에서 '기능실습생 제도'와 '특정기능자 제도'를 운용 중이다.
 
2024년 기준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는 약 230만 명으로, 전체 노동력의 3.4%에 해당한다. 이 중 특정기능자 비자 소지자는 약 25만 명, 기능실습생은 45만 명 규모다. 또한 고숙련 전문직 비자 소지자도 41만 명 이상에 이른다. 외국인 고용 기업 수는 34만 개를 넘으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고용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부터는 실습생에서 특정기능자, 나아가 고숙련 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육성취업제도'가 본격 시행되어, 일본 내 노동력의 구조적 재편을 도모하고 있다. 다만 시민권 부여나 가족 동반 등 이민의 완전한 개방에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파국이 아니었다

일본은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사회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총 GDP는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했고, 산업 자동화, 생산성 향상, 기업의 해외 이전 등 다양한 대응 전략이 병행되었다. 특히 고도화된 인프라와 자산 기반의 경제 구조는 단기적인 충격을 일정 수준 흡수하는 데 기여했다.

반면, 내수시장 축소와 청년 소비층 감소는 장기적인 경기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지역 간 격차도 커졌고,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과 고령화라는 이중 부담 속에서 통화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인구 감소를 ‘축소사회’의 출발점으로 보며, GDP 성장률보다 삶의 질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무리한 팽창이 아닌, 축소된 사회 규모에 맞는 도시 설계와 복지 구조 재편이 핵심 과제로 논의된다.

'일본화'는 경고인가, 모델인가?

많은 나라가 ‘일본화’를 경계한다. 장기 불황,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이라는 복합 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은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겪었고, 가장 먼저 제도적 대응을 시작한 국가이기도 하다.

2024년 일본 인구전략회의는 2100년 총인구 8천만 명, 고령화율 30%를 목표로 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 ‘정상화 전략’과, 축소된 사회 규모 속에서도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강인화 전략’을 결합한 것이다.

지금의 일본은 파국도 회복도 아니다. 단지, 인구 구조 변화가 사회 전반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 실험장이 되고 있다.

반응형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 저출산 사회의 선택지  (1) 2025.07.08
한국: 세계 최저 출산율의 구조  (3) 2025.07.07
글로벌 저출산 시대  (0) 2025.07.06
중국 청년 세대와 무너진 사다리  (3) 2025.07.02
중국의 유령 도시  (1)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