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중국 청년 세대와 무너진 사다리

엘노스 2025. 7. 2. 12:59

중국 청년층에게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당연한 미래가 아니다. 오히려 주거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며,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


이전 세대가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갔던 구조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 세대는 소득 정체, 고용 불안, 자산 격차 속에서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사다리'가 있었던 시절


중국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주택을 구입한 가정은 이후 수차례의 가격 상승을 통해 자산 가치가 수 배로 불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고,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주택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선분양 제도와 저금리 대출은 '영끌 투자'의 기반이 되었고, 부동산은 사실상 중국 중산층의 자산 대부분을 구성했다.


이 시기에는 사회 전체적으로 '주택은 반드시 오르며, 언제든 되팔 수 있다'는 확신이 강했다. 결혼을 앞둔 남성은 주택을 마련해야 하고, 여성은 이를 조건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화적 압력도 있었다. 즉, 주택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결혼·직장·자녀교육 등 모든 삶의 출발선이자 조건이었다.

2020년 이후, 이러한 구조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이후 출생한 청년 세대에게 부동산은 '기회의 상징'이 아니라 '막다른 현실'로 다가온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


첫 번째 이유는 소득과 고용의 구조적 불안정이다. 중국 청년 실업률은 2023년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24년 7월에는 17.1%를 기록하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2023년에 베이징 대학교 장단단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실제 청년 실업률이 46.5%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학 졸업자가 연간 1,179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는 제한적이다. 소득은 정체되어 있고, 비정규직·단기직의 비중이 높아 주택담보대출 자격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주택 가격 부담


두 번째는 주택 가격과 대출 부담의 불균형이다. 선전의 경우 2020년 11월 평균 집값이 1㎡당 8만위안(약 1,366만원)을 돌파했으며, 이는 1평당 4,507만원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주택 가격 대비 소득 비율(PIR)이 5~7배를 넘으면 주택 구매가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는데, 중국 주요 도시들은 이를 크게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일부 도시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지만, 청약 경쟁이 심하고, 중산층 이상의 부모 지원이 없이는 실질적인 구매가 어렵다.

 

부동산 시장 신뢰의 붕괴


세 번째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신뢰 붕괴다. 헝다 사태 이후 완공되지 않은 아파트, 대금 미반환, 시공 중단 등의 사례가 확산되면서, 분양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중국의 실질 부동산 가격 지수는 2024년 9월 93.823으로 2024년 6월의 96.851에서 하락했다. 청년층은 "집을 사느니 월세가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돌아서고 있으며, 특히 '절대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투자로서의 매력도 사라졌다.

결혼과 출산의 붕괴


이러한 주거 불안은 개인의 삶의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2022년부터 공식적인 인구 감소 국면에 들어섰고, 2024년 출생아 수는 954만 명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2년 중국 초혼자 수는 1,051만 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전년보다 106만 명 감소했다. 초혼자 수가 1,1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8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중국사회과학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주요 이유로 '주택 비용 부담'이 상위에 올랐다. 결혼을 위해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로 여겨지던 전통적인 구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세대가 늘고 있다.


2010년 24.89세였던 중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20년 28.67세로 3.78세 올랐다. 제로코로나 정책 시기(2020~2022년) 중국인들이 결혼을 미뤘던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 초혼 연령은 30세 수준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청년층 사이에서는 "결혼은 감정의 문제이기보다는 경제적 계약"이라는 냉소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도시별 양극화, 이동성의 제한


청년층 주거 문제는 지역 격차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1선 도시는 상대적으로 인프라와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으나, 거주비용은 지나치게 높고, 외지 청년이 정주(戶籍 등록)를 하기가 어렵다.


반면 2선 이하 도시는 주택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낮다. 이러한 구조는 청년들이 어느 도시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만든다.


정부는 청년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 확대, 보증금 없는 월세, 신혼부부 지원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공급량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실제 효과에 대한 의문도 많다.

탕핑(躺平) 문화의 확산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청년 문화에서 '탕핑(躺平, 드러눕기)'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탕핑은 '평평하게 누워있기'를 뜻하는 중국어이며, "열심히 노동을 해도 대가가 없는 중국 사회의 노동 문화에서는 최선을 다해 눕는 게 현명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은 청년들이 선택하는 태도를 상징하며, 중국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근로도 소비도 회피하고 최소한의 생계활동만 수행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주거 실험들


부동산 시장에서의 '탕핑'은 월세를 선택하고, 주택 구매를 아예 고려하지 않거나, 중장기적으로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또한 독신 가구 비율이 증가하면서, 가족 중심의 주택 정책이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편, 일부 청년층은 '낮은 기대' 대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가보유 대신 쉐어하우스, 임대 공동체, 협동형 거주 등 새로운 형태의 주거 실험도 소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탕핑족들은 임금이 높아도 집값과 월세가 너무도 비싼 대도시 대신 임금이 좀 더 낮더라도 중소기업 직장인 몇 달치 급여로도 충분히 집을 사고, 생활비도 낮은 지방도시로 이동하는 지방회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무너진 계층 상승의 환상


중국 청년층에게 주택은 더 이상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다. 오히려 진입장벽이자, 삶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구조적 장애물이다. 과거에는 아파트 한 채가 미래를 약속해주는 자산이었다면, 이제는 그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주거 불안은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인구 구조, 소비 패턴, 정치적 신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국 정부나 공산당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런 자포자기 심정의 탕핑족이 늘면서 사회 불만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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