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중국 광둥성 선전과 광저우의 헝다 본사 앞에는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투자 피해자 수백 명이 모여 집단 항의를 벌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분양 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그 중심에는 중국 최대 부채 규모를 기록한 부동산 개발사 '헝다(恒大)'가 있었다.
'중국 최대 부채기업'의 확장 전략
헝다는 1996년 쉬자인(許家印, 한국명: 허가인, 영문명: Hui Ka Yan)이 광저우에서 설립한 지역 건설사였다. 초창기에는 저소득층 대상 주택을 위주로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고급 아파트 단지와 대단지 재개발 사업을 통해 급성장했다. 2009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이후 자금 조달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헝다는 '빚으로 확장하는 모델'을 극단적으로 구사했다.
핵심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째, '선분양' 모델을 통해 소비자에게 분양대금을 먼저 받아 공사비에 투입하는 방식. 둘째, 외부 차입금과 고수익 신탁상품으로 유동성을 유지하는 고레버리지 구조. 헝다의 프로젝트는 지방정부로부터 대규모 택지를 확보하고, 단기 고수익을 내세워 일반 투자자와 신탁사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였다.
헝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2019년 기준, 헝다의 총 부채는 약 3,000억 달러(약 2.4조 위안, 약 400조 원)에 달했고, 프로젝트 수는 전국 280개 도시에서 1,300개가 넘었다. 이는 당시 중국 GDP의 약 2%에 이르는 규모로, 사실상 '자기 돈 없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위기의 시작: 규제의 칼날
중국 정부는 2020년 8월부터 부동산 개발사에 '3가지 레드라인(三條紅線)' 규제를 도입했다. 이는 ①자산 대비 부채비율 70% 이하, ②순자산 대비 부채비율 100% 이하, ③현금 대비 단기채무 비율 1배 이상을 기준으로 기업의 부채 관리를 유도하는 조치였다.
헝다는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고, 신규 차입이 사실상 차단되었다. 규제에 따라 3개 기준 모두 위반 시 신규 부채 증가가 금지되며, 2개 위반 시 5%, 1개 위반 시 10%, 모두 충족 시에는 15%까지 허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때부터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됐다. 새 프로젝트 착공은 줄고, 기존 분양자에게는 완공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동시에, 다수의 고수익 신탁상품(理财产品)에 대한 원금 상환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면서 투자자들의 항의가 확산되었다.
은행들은 대출 회수를 시작했고, 협력사들은 공사 중단과 비용 미지급으로 피해를 호소했다. 2021년 9월 24일, 헝다는 8,350만 달러 규모의 해외 채권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했고, 이어 12월에는 역외 채권에 대한 공식 디폴트를 선언하며 시장의 불신이 현실로 드러났다.
'붕괴'의 여파: 삼중 피해 구조
헝다 사태의 충격파는 단순히 건설사 하나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흔들렸다.
첫째는 소비자 피해다. 선분양 방식으로 계약한 약 150만 명의 일반 시민들이 미완공 상태의 주택을 안고 있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시작되었고, 거주하지도 못하는 집에 매달 상환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모기지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둘째는 하청업체와 협력사 피해다. 철강, 시멘트, 인테리어, 설계 등 수많은 하청 업체들이 헝다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고 줄도산했다. 이들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고, 지방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셋째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헝다가 발행한 채권, 신탁상품, 투자 상품은 다수의 중산층과 고령층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었으며, 다단계식 구조로 재판매된 경우도 있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 상품은 사실상 정부가 보장한 것 아니냐”는 믿음이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헝다를 직접 구제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 제한적 개입과 신호 관리
2021년 말, 중국 정부는 헝다 회생 절차에 돌입했지만, 전면적인 국유화나 구제는 피했다. 헝다는 파산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유 계열 기업에 자산 일부를 넘기고 분양자에 대한 완공 보증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식의 ‘질서 있는 해체’를 시도했다.
2024년 1월, 홍콩 고등법원은 헝다에 공식 청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전인 2023년까지 헝다는 전국에서 총 42만 1천 채의 주택을 완공해 인도했고, 2023년 상반기에도 334억 위안(약 47억 달러) 규모의 주택을 판매한 바 있다.
이러한 접근은 두 가지 시그널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하나는 무책임한 확장에 대한 경고, 다른 하나는 금융 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헝다 이후에도 중국 전체 주택 판매의 40%를 차지하던 주요 민간 개발사들이 연쇄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했고, 정부는 ‘집은 사되, 투기하지 말라’는 기조 아래 제한적 신용 공급만을 유지하고 있다.
미완공 주택의 규모와 현실
헝다 사태의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미완공 주택 문제다. 노무라 증권은 2023년 11월 발표에서, 헝다를 포함한 부도 개발사들이 남긴 미완공 주택이 전국적으로 약 2,000만 채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 물량을 완공하는 데에는 약 4,480억 달러(약 600조 원)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정부는 2022년부터 '보장 인도(保交楼)' 정책을 추진해 일부 프로젝트에 대해 특별 대출 350억 위안(약 49억 달러)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전체 필요 자금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방 도시의 부동산 거래량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창업주 쉬자인의 몰락
헝다의 창업주 쉬자인의 개인사도 이 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58년 허난성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1992년 철강회사를 그만두고 1996년 헝다를 설립했다. 2017년 그의 재산은 약 453억 달러로 정점에 달했지만, 2023년 10월 기준 약 9억 7,900만 달러로 줄어들며 96%가 증발했다.
2023년 9월, 쉬자인은 중국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고, 현재 선전의 특별 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3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헝다가 2019년과 2020년 회계연도 매출을 약 780억 달러 규모로 허위 신고했다고 발표하며, 쉬자인에게 6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증권시장에서 평생 퇴출시켰다.
헝다 이후
헝다 사태는 '위험한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식 부동산 성장모델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고속 도시화, 토지 재정, 선분양, 고레버리지라는 네 축이 동시에 작동했지만, 그 지속 가능성은 인구 정체와 소득 정체, 신뢰 붕괴라는 현실 앞에서 멈췄다.
헝다 이후, 컨트리가든을 비롯한 다수의 대형 개발사들이 유사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지방정부 역시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은 더 이상 ‘안정적인 투자처’가 아니라, 오히려 부채와 리스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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