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모네의 파트너 관계가 막 시작될 무렵 일더튼 스케이팅 클럽의 스타는 대니 모이어-셰리 모이어 조였습니다. 대니 모이어는 스캇의 맏형이고 셰리 모이어는 캐롤의 둘째 딸로 스캇의 사촌누나죠.1999년 캐나다 내셔널 아이스댄스 부문 노비스 챔피언이자 2001년에는 주니어 부문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되는 팀이고, 당시 대니-셰리 조는 폴 매킨토시와 수잔 킬링에게 레슨을 받고 있었죠.
폴 매킨토시는 재능 있는 어린 스케이터들을 국제 대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로 키워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버모네가 대니 모이어의 선례를 따라 1998년 여름부터 'Mr.Mac'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키치너-워털루 스케이팅 클럽에 다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폴 매킨토시가 기술적인 면을 담당하고 수잔 킬링은 예술적인 면을 맡는 식으로 대략적인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스캇 모이어의 관심사이자 강점은 정교하고 복잡한 스텝 같은 기술적인 측면이었고 테사는 언제나처럼 안무의 매력에 빠져 있었죠. 테사와 수잔 킬링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춤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1999-2000 시즌부터는 폴 매킨토시의 레슨을 받는 횟수가 주 1회에서 주 3~5회 정도로 늘었고 당시 둘은 새벽 4시 45분쯤에 만나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키치너-워털루 스케이팅 클럽에 다녔다고 합니다. 버모네의 부모들이 교대로 아이들을 데려다줬고, 새벽 연습을 끝낸 뒤 학교에 등교하는 식이었죠. 여름방학 동안 워털루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메인 코치는 여전히 캐롤 모이어였고 싱글 스케이터 레슨도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스댄서로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 싱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보험이었죠.
2000년 kolowna에서 열린 '내일의 챔피언 대회' juvenile 부문에서 버모네는 처음으로 내셔널 우승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 외의 결과에 당사자와 코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죠. 아무도 우승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던데다 테사의 어머니 케이트는 자식이 꼴찌만 면하기를 바랬으니까요. 버모네는 참가 팀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키도 작은 커플이었고, 당시 포디움 사진을 보면 어른들 사이에 꼬맹이 둘이 서 있는 것 같더군요.
이 대회가 둘에게는 분기점이 되었고, 두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제대로 성장한다면 몇 년 후에는 전도 유망한 커플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죠.
이듬해 열린 2001 내일의 챔피언 대회에서는 pre-novice 부문에서 우승했고, 2002 대회의 노비스 부문에 참가할 때 스캇 모이어의 나이는 14살, 테사 버츄는 불과 12살이었습니다. 여전히 참가팀 중 가장 어리고 키도 작은 커플이었죠. 물론, 실력은 꼬맹이가 아니었지만요.
이 시기에 폴 매킨토시는 버모네의 스케이팅 기술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고 스트로킹 같은 기본기 훈련을 엄청 많이 시켰다고 합니다. 버모네의 우월한 스케이팅 스킬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이때였던 셈이죠. 수잔 킬링은 두 사람에게 파트너쉽에서 중요한 소통 방법을 가르치는데 주력했고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로써 둘을 자극하곤 했죠.
2002 내일의 챔피언 대회 노비스 부문에 참가한 버모네는 넘어지는 실수를 한 탓에 종합 3위에 머물렀는데 넘어지지 않았다면 1위에 오를 수도 있었을 만큼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보통은 노비스 2년, 주니어 3년을 보낸 뒤에 시니어에 데뷔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폴과 수잔은 버모네에게 이 과정을 건너뛰고 2002-2003 시즌부터 주니어 부문에 바로 참가할 것을 권했고,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스링크 위에서 보내야 하는 것을 의미했죠.
주니어 부문에 올라가서 경쟁하는 일은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스링크에서 보낼 것을 요구했고, 버츄와 모이어는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100km나 떨어진 키치너-워털루까지 주 3~5회 왕복하며 훈련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던 만큼 거주지를 옮길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2002년 버모네 가족의 연례 모임에서 아이들이 워털루시로 거주지를 옮기는 일이 결정되었고, 딸을 떠나보내기에 앞서 테사의 아버지 짐 버츄는 수잔 킬링에게 궁극적인 계획을 알려주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캐나다의 밴쿠버시가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수잔은 짐에게 딸이 밴쿠버 올림픽 무대에 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써 설득했죠.
2002년 여름, 불과 열 다섯, 열 세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일은 쉬운 선택이 결코 아니었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테사와 스캇에게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워털루에서 처음 1년 동안은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특히 테사는 점심 시간마다 혼자서 식사를 하는 외로움을 견뎌야 했고 둘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죠. 어린 나이에 타향에서 생활하게 된 만큼 둘은 서로에게 사실상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다행히 현지의 좋은 가정에서 두 사람을 각기 맡아서 돌봐준 덕분에 버모네의 부모는 한시름을 덜 수 있었죠.
전도 유망한 이 어린 커플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던 폴 매킨토시 코치의 설득에 따라 02-03시즌부터 주니어 무대에서 경쟁하게 된 버모네는 처음으로 Original Dance 프로그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비스까지는 컴펄서리와 프리만 있었고, 주니어/시니어 레벨에서 세 부문으로 나뉘는 방식이었죠.
폴은 버모네가 주니어 데뷔 시즌에는 고전을 할 것으로 예상했음에도 02-03시즌은 내셔널 주니어 부문 7위로 무난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주니어/시니어 레벨은 노비스 시절과는 대회 규모와 참가 팀들의 인지도 자체가 달랐죠. 스캇 모이어는 지금도 대회에 참가했을 당시 셰린 본-빅토르 크라츠 조와 같은 쟁쟁한 시니어 팀들을 직접 봤던 놀라운 경험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2003년 캐나다 내셔널에서 주니어 부문 7위에 머물렀음에도 캐나다 연맹은 버모네의 가능성을 보고 다음 시즌인 03-04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 출전권을 배정했고, 성적에 따라서 주니어 세계선수권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버모네의 초기 경력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개의 경우 도전자의 입장이었다는 점입니다. 2000년 내일의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할 때부터 참가팀 중에서 가장 어리고 체구도 작은 커플이었으니까요. 테사와 스캇 모두 집안의 막내였던 터라 어릴 때부터 형제들의 뒤를 쫓아가기에 바빴는데 초기 경력에도 이런 경향이 있으니 재미있죠. 아마도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성장이 빨랐던 것은 막내 그리고 도전자의 입장에서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잡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기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주지하다시피 버모네는 아이스댄스 부문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죠.
2004년 캐나다 내셔널 주니어 부문에서 1위를 한 뒤 200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11위로 시즌을 마감한 버모네가 훈련 장소를 마리나 주에바와 이고르 슈필반트가 있는 미시건 주의 아크틱 피겨 스케이팅 클럽으로 옮긴 주된 이유도 그때 이미 둘은 폴 매킨토시가 가르치는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스댄스 조였기 때문이었죠.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스케이터들이 있는 곳으로 훈련 장소를 옮기는 것은 경쟁심과 향상심이 강한 두 사람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안무와 예술적 부분을 담당하던 수잔 킬링이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코치 일을 그만둔 것도 버모네가 새로운 환경을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였죠. 아크틱 클럽이 고향인 온타리오 주에서 차로 2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점도 고려대상이었다고 합니다.
03-04시즌 프리 프로그램은 수잔 킬링이 안무한 러시안 메들리였고 폴 매킨토시의 요청에 따라 마리나 주에바가 버모네의 안무를 봐준 적이 있던 만큼 아크틱 클럽을 선택한 배경에는 주에바와 안면이 있다는 사실도 영향을 줬을 듯합니다.
미시간 주의 아크틱 피겨 스케이팅 클럽으로 훈련 장소를 옮기고나서 맞이한 04-05시즌부터 버모네는 2시즌 동안 캐나다 내셔널 대회는 시니어 부문에서 경쟁하고 ISU 그랑프리 대회는 주니어 부문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죠. 주니어 대회의 프리 댄스는 3분이지만 시니어는 4분이니까요.
2005년 초에 열린 캐나다 내셔널 대회에서 시니어로 데뷔해 4위로 선전한데 이어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며 좋은 성적으로 04-05시즌을 마감했지만, 버모네 특히 스캇 모이어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200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05-06시즌부터는 ISU 시니어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것이 둘의 목표였으니까요.
200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스캇 모이어가 프리에서 실수를 하면서 2위에 머물렀는데, 시합이 끝난 뒤로 모이어는 자신이 팀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감에 시달렸죠. 테사와 스캇은 주위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는 것에 익숙했던 만큼 1년 더 주니어 부문에 남아 있으라는 코치진의 요구는 좌절감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할 정도로 실망감이 컸는데 승승장구하던 버모네가 처음으로 겪은 심적인 시련이었던 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었죠.
도전자의 입장에서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서 가열차게 노력하던 버모네가 05-06시즌에는 자신들을 목표로 쫓아오는 팀들을 상대로 방어에 나서야 했던 만큼 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우승 후보의 중압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건지를 처음으로 배운 시기도 이때였죠. 결과적으로 코치진의 판단이 옳았던 셈입니다.
버모네는 일더튼 스케이팅 클럽에서 스캇의 이모인 캐롤 모이어에게 피겨 스케이팅을 처음 배웠고, 98년 여름부터 6년 동안 폴과 수잔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만큼 코치와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가지는 것에 익숙했죠. 하지만 새로이 옮긴 아크틱 스케이팅 클럽의 코치들은 엄격했고 때론 고함치는 것도 사양하지 않을 만큼 직설적이었으며 학생들과도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터라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물론, 빠르게 적응했지만요.
아크틱 피겨 스케이팅 클럽은 이후 북미의 대표적인 피겨 스케이팅 클럽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처럼 우수한 코치진 아래 재능 있는 스케이터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고, 아이스링크 안에는 분주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흘렀다고 합니다. 버모네가 원하던 새로운 환경으로 적합했고 현재까지 여기에서 훈련하고 있죠.
** 본문의 내용은 버모네가 2011년에 출판한 < Our journey from childhood dream to gold> 내용을 주로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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