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줄어든다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가 커지고 팽창한다는 상식을 갖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의 주요 대도시 일부는 이 상식의 경계에 도달해 있다. 그 중에서도 부산과 오사카는 비교 대상이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면서 항만도시로 급성장했고, 해방 후에는 6·25 전쟁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인구가 폭증했다. 1960년대부터는 정부 주도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하에 신발, 섬유, 합판 등 경공업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1970년대에는 남동임해공업지역 조성으로 조선, 기계, 화학공업까지 확장되었다.
오사카는 에도시대부터 '천하의 부엌'이라 불리며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방직업과 중화학공업의 거점으로 발전했다. 한신공업지대의 핵심으로서 철강, 조선, 화학, 전기기기 산업이 집중되었으며, 특히 마쓰시타(파나소닉), 샤프, 다이킨 등 전자·전기 대기업들의 본거지였다.
두 도시 모두 각각 한국과 일본의 제2도시로서 지금도 거대한 항만과 도시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구 감소라는 흐름을 맞고 있으며, 도시의 방향성 자체를 재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부산의 인구 감소 현실
부산 역시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 1995년 통합 부산시 출범 이후에도 인구는 줄곧 370만~380만 명 사이를 유지했지만, 2000년대 들어 뚜렷한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핵심은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다. 부산의 대학 진학자 상당수가 서울·경기권으로 이동하고, 졸업 후에도 현지 취업보다 수도권 취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순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본사와 고급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구조에서 지역 내 고용의 질은 낮아졌고, 이는 청년 정착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부산은 2020년 이후 자연 감소(출생자 < 사망자)와 사회 감소(전입자 < 전출자)를 동시에 겪고 있으며, 그 폭은 빠르게 확대되는 중이다. 2024년 기준 부산의 인구는 약 348만 명으로, 1995년 정점 대비 완만한 감소를 이어가고 있다.
오사카의 인구 감소 구조
먼저 오사카는 1990년대 이후 도쿄 일극 체제가 강화되면서 인구 유출이 시작되었다. 오사카권은 한때 일본 경제의 중심축이었지만, 버블 붕괴 이후 도쿄로의 자본과 인재 집중이 심화되면서 상대적 쇠퇴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젊은층의 이동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취업 기회의 질적 차이, 대기업 본사의 수도권 집중, 고등교육기관의 선호도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일본 전체의 저출생과 고령화 추세가 맞물리면서, 오사카시는 '자연감소'와 '사회감소'를 동시에 겪는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다. 현재 오사카시의 인구는 약 275만 명 수준으로, 요코하마시(약 378만 명)보다 적지만 주간 인구와 도시권 중심성 면에서는 여전히 일본 제2의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외국인 거주자가 증가하면서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듯했지만, 이들 역시 장기 정착보다는 임시 체류 형태가 많아 인구 구조에 본질적 전환을 가져오진 못했다.
고령화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고령화와 젊은층 이탈'이라는 구조적 압력이다. 지역 내 교육·주거·문화 환경이 수도권에 비해 뒤처졌고, 이에 따라 인구는 고르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젊은층 중심으로 빠져나가며 노령 인구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2023년 기준으로 부산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약 21%에 이르렀고, 오사카시는 25%를 넘었다. 부산의 경우 통계청과 학계 보고서에서 “소멸 위험에 직면한 도시”로 지목되었으며, 광역시 가운데 고령화 속도와 출산율 저하가 모두 높은 축에 속한다. 이로 인해 도시의 소비 구조와 노동력 기반 자체가 약화되고 있으며, 향후 사회복지 지출의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의 대응
부산은 '부산 대개조'라는 이름 아래 북항 재개발, 경부선 철도 지하화, 원도심 정비 등을 중심으로 한 도시 재편에 나서고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은 1, 2단계로 나누어 총 사업비 약 6조 8,000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2030년까지 완공 예정이다.
청년층 유입을 위한 전입장려금, 공공임대주택 확대, 창업 지원 등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청년층의 정착률은 여전히 낮고, 무엇보다 2030년 엑스포 유치 실패가 큰 타격이었다. 2023년 11월 28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부산은 29표에 그쳐 119표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압도적으로 패했다. 정부가 2022~2023년 2년간 유치 활동에 453억 원을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고, 이후 도시의 대외적 상징 사업이 불투명해진 것도 부담이다.
오사카의 대응
이 같은 흐름에 대응해 두 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방향을 다시 짜고 있다. 오사카는 2025년 개최되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전기로 도시 재정비에 나섰다. 유메시마 인공섬에 스마트 시티 구상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특별구 지정 등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엑스포는 "생명이 빛나는 미래사회의 디자인"을 주제로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개월간 개최된다 전체 사업비는 직접 건설비 약 1,850억 엔, 인프라 및 연계 사업을 포함한 간접 비용은 수 조 엔 규모로 추정되며, 구체 집행 내역은 아직 조정 중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아직까지는 단기적 건설 중심 개발에 치우쳐 있으며,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과 장기 인구 유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축소 사회로의 전환
두 도시 모두 '팽창'이라는 과거 도시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을 전제로, 도시가 어떻게 축소 사회에 적응할 것인지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공공 서비스 구조를 재편하고, 외곽 지역의 과잉 인프라를 정리하며, 핵심 지역의 밀도를 유지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동시에 외국인 유입 정책, 가족 단위 정착 유도, 고령 인구를 고려한 생활환경 개선 등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부산의 경우 최근 일부 출산율 반등 조짐이 있다는 보도도 있으나, 이를 장기적 전환으로 이어가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재정의의 시대
부산과 오사카는 지금, 도시의 재정의 단계에 있다. 도시의 삶의 질, 미래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다. 줄어드는 도시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도시권이 직면한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두 도시의 경험은 인구 감소 시대의 도시 정책이 단순한 성장 추진이 아닌, 질적 전환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보여준다. 오사카의 엑스포 중심 개발과 부산의 대개조 전략이 각각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향후 동아시아 도시들의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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