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AI 시대 일본 반도체의 과제

엘노스 2025. 6. 18. 14:57

SBS 뉴스 자료


일본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나 로직 반도체 같은 완성품 영역에서는 존재감을 잃었지만,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는 여전히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JSR, 도쿄응화공업 등 일본 기업들이 포토레지스트 전체 시장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호야와 AGC 두 회사가 EUV 마스크 블랭크 시장의 95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장비 분야에서 도쿄일렉트론은 ASML,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 이어 세계 3위 장비 기업으로 평가된다.

포토레지스트 외에도 CMP 슬러리와 실리콘 웨이퍼 등 주요 소재에서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는 신에츠화학과 섬코가 약 60퍼센트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이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반 기술을 지속적으로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레조낙홀딩스와 세키스이화학공업 같은 기업도 고성능 반도체용 신소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4 회계연도 기준으로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2.9퍼센트 증가한 4조 4356억 엔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4조 6600억 엔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 시장의 독과점 심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상위 기업 중심의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시장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했고, 2000년대에는 50퍼센트 수준이었지만, 2022년에는 약 75퍼센트까지 확대되었다. 상위 기업에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KLA, 어드반테스트, 스크린홀딩스, ASM, 고쿠사이일렉트릭, 테라다인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미국과 일본 기업이 각각 네 곳씩 포함되어 있다.

 

도쿄일렉트론은 2023 회계연도 기준으로 연 매출 약 2조 엔, 영업이익 약 5400억 엔을 기록했고, 2024년 3월 기준 시가총액은 약 16조 엔에 달한다.


일본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2022년 8월, 도요타, NTT, 소니 등 주요 대기업 여덟 곳이 참여해  라피더스(Rapidus)]를 설립했다. 라피더스는 2025년 4월에 2나노미터 시험 생산을 개시하고,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IBM과 기술 협력 중이며,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약 1조 200억 엔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총 사업비는 약 5조 엔으로 추산된다.


라피더스는 대형 파운드리 기업들이 다루기 어려운 AI 반도체 스타트업의 수요를 겨냥하며, 수주에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일본의 과제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술 경쟁을 넘어서, 설계와 제조, 소프트웨어와 수요처가 하나의 플랫폼 생태계를 이루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설계, 일본은 소재와 장비, 한국과 대만은 제조를 담당해온 기존의 분업 구조는 더 이상 안정적인 체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여전히 보완재 중심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라피더스가 2나노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실질적인 산업 영향력으로 전환하려면 통합적 시스템 전략이 필요하다. 2023년 당시 한국과 대만 업계에서는 라피더스에 대한 회의적 반응이 우세했다.

 

중국 의존도 증가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캐논은 2024년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이 약 40퍼센트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었고, 스크린홀딩스는 2023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 중국 비중이 44퍼센트에 달했다. 도쿄일렉트론도 같은 해 4분기 기준으로 중국 비중이 46.9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의 범용 반도체 투자 확대가 일본 장비 기업들의 주요 수요 기반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에서 완전히 퇴조한 것은 아니다. 소재와 장비라는 핵심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중심이 시스템 기반 수요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여전히 구조적 주도보다는 부분적 보완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