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시나무새 -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엘노스 2025. 5. 30. 13:27

콜린 맥컬로우의 장편소설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 1977?는 출간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은 단순히 금단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품고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갈등, 즉 육체적 사랑과 영적 신앙,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게 그려낸 데 있다.

운명적 만남과 금기된 사랑

소설은 1910년대 호주의 광활한 드로게다 목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가톨릭 사제인 랠프 드 브리카사르트가 가족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자라는 소녀 매기 클레어리를 딸처럼 돌보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순수한 부녀지간의 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기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랑으로 변모한다.

맥컬로는 이들의 관계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도덕적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랠프 신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야망과 신앙, 그리고 매기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충돌하고 공존하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랠프는 교회 내에서의 승진과 권력을 갈망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캐릭터 설정은 그를 단순한 악역이나 성인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3대를 아우르는 서사

<가시나무새>의 또 다른 매력은 3대에 걸친 방대한 서사 구조다. 매기와 랠프의 사랑에서 태어난 아들 데인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해 사제가 되고, 결국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과정은 숙명과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데인의 죽음을 통해 랠프가 자신의 아들임을 뒤늦게 깨닫는 랠프의 절망은 그동안 그가 추구해온 모든 것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매기의 딸 저스틴의 이야기 역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어머니의 상처받은 사랑을 목격하며 자란 저스틴은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녀와 라이너의 관계는 매기와 랠프의 사랑이 다음 세대에 미친 상처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다.

가시나무새의 상징성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 은유인 '가시나무새'는 켈트 신화에서 나온 상상의 새다. 이 새는 평생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다가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 몸을 찔러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전해진다. 이는 랠프와 매기의 사랑을 완벽하게 상징한다.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지만, 바로 그 불가능성 때문에 더욱 간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맥컬로는 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고통의 본질을 탐구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때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며,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닌 희생을 통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호주라는 공간의 의미

작가가 배경으로 선택한 호주의 광활한 대지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와 거센 자연재해들은 인간이 감당해야 할 운명의 시련을 형상화한다. 특히 패디와 스튜어트가 목숨을 잃는 화재 장면은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덧없음을 깨닫게 한다.

마무리하며

출간된 지 거의 50년이 지났음에도 『가시나무새』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랑과 의무 사이의 갈등, 꿈과 현실의 괴리, 가족의 의미와 상실의 아픔은 언제나 인간이 마주해야 할 문제들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강조되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고민한다. 랠프 신부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그가 직면했던 딜레마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