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세계: 자원의 무기화

엘노스 2025. 7. 18. 14:10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자원 공급망을 흔들며 지정학적 균형을 뒤흔들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곡물 수급이 불안정해졌으며, 여러 국가들이 무기 확보에 나섰다. 이 전쟁은 자원 자체가 외교적 수단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분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스를 무기화한 러시아


유럽 국가들은 오랜 기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해왔다. 독일은 전체 가스 수입의 상당량을 러시아로부터 들여왔고, 발트해를 관통하는 노르드스트림 파이프라인은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전쟁 이후 러시아는 에너지를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22년 3월 말, 푸틴 대통령은 ‘비우호국’들에 대해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요구했고, 이를 위해 미국의 부분적 금융 제재 대상인 가즈프롬방크에 루블 계좌를 개설하라고 지시했다. 가즈프롬방크는 러시아의 주요 가스 결제 통로로, EU의 SWIFT 퇴출 대상에서는 제외되었지만, 미국은 이 은행의 고위 임원들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킨 바 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이 같은 결제 방식 자체를 계약 위반이자 주권 침해로 간주하고 거부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는 2022년 4월 27일 두 나라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프랑스 역시 루블화 결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크롱 대통령과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했다. 이후 2022년 8월, 러시아는 프랑스 에너지 기업 엔지에 9월부터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공급 차단을 확대해갔고, 유럽 각국은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다. 2022년 여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네덜란드 TTF 기준으로 MWh당 300유로를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은 이에 대응해 LNG 수입 다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절약 정책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시도했고, 독일은 이를 “전쟁이 촉발한 산업 전략 전환”으로 규정하며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본격화했다.


곡물과 흑해, 식량 위기의 경로


우크라이나는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 중 하나다. 2022년 기준으로 옥수수 14%, 밀 9%, 보리 10%, 해바라기유 43%의 수출 점유율을 기록했고, 러시아도 밀 20%, 보리 14%, 해바라기유 20%를 차지하며 세계 식량 시장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2021년 우크라이나의 총 곡물 생산량은 약 1억 600만 톤으로, 이 중 옥수수 4,000만 톤, 밀 3,240만 톤, 보리 1,000만 톤, 해바라기씨 1,630만 톤 등이 포함됐다. 이 곡물 대부분은 흑해 연안 항구를 통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로 수출됐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흑해 항로를 봉쇄하면서, 세계 식량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가격지수는 2022년 3월 159.7포인트를 기록하며 1990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은행은 식량 수입에 의존하는 다수의 개발도상국이 이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집트, 튀니지, 방글라데시 등은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 의존도가 높았으며,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으로 사회적 긴장도 높아졌다.


2021년 우크라이나가 수출한 밀은 약 2,010만 톤이며, 이 중 아시아 국가들이 1,190만 톤, 아프리카 국가들이 760만 톤을 수입했다. 공급망이 막히자 이들 지역은 즉각적인 타격을 받았다.


흑해곡물협정과 그 한계

 

2022년 7월 22일,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흑해곡물협정이 체결됐다.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튀르키예 해협 인근 특별조정센터에서 검사를 받은 뒤 통과하도록 규정되었고, 주요 항구인 오데사, 초르노모르스크, 피브데니를 통해 곡물이 수출되었다.


협정이 발효된 이후 2023년 7월까지 우크라이나는 약 3,300만 톤의 곡물을 수출했다. 협정 이전 톤당 1,360달러까지 올랐던 곡물 가격은 이후 620달러 수준까지 하락하며 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됐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 농산물과 비료 수출에 대한 서방 제재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협정 연장을 거부했고, 2023년 7월 17일 자정을 기해 협정은 종료됐다. 협정은 러시아가 외교적 지렛대로 반복 활용해온 수단이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자료


무기 시장의 판도 변화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전까지 구소련제 무기 체계를 주로 운용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미국, 영국, 독일, 폴란드 등 서방 국가들의 대규모 군사 지원이 이어졌고, 우크라이나는 서방 무기의 실전 운용 시험장이 되었다.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은 1인 운용이 가능하고, 상부 공격 방식으로 전차 포탑을 타격한다. 2022년 하반기까지 러시아군은 수백 대의 전차를 상실했고,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전쟁 초기 9개월간 약 1,000대가 파괴되었다고 분석했다.


NLAW는 영국이 2022년 4월까지 4,200기를 제공했으며, 이후 총 공급량은 6,900기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격파한 전차 중 일부가 NLAW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추정에 가깝다.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시스템은 미국이 제공한 고속기동포병 로켓 시스템으로, 우크라이나 전장 상황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마크 밀리 전 미 합참의장은 하이마스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400개 이상의 러시아군 목표를 타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이마스에서 발사되는 유도로켓은 한 발당 약 15만 달러에 달하며,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군사 지휘부, 탄약고 등 전략적 표적에 집중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장은 무기의 실전 운용 능력을 입증하는 시험장이 되었고,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장비’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검증된 무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이마스는 대표적 사례로, 실전 전과를 통해 게임체인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자원이 외교의 언어가 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스, 곡물, 무기를 단순한 경제 자원에서 벗어나, 외교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전환시켰다. 에너지는 압박의 도구가 되었고, 곡물은 협상의 조건이 되었으며, 무기는 실시간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전선은 단지 땅 위의 전장이 아니라, 항구와 파이프라인, 금융 거래망 위에서도 형성되었다.


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은 탈탄소와 탈러시아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고,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경로를 아시아로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 중이다. 이 전쟁은 단기적인 군사 충돌을 넘어, 세계 공급망과 에너지 질서를 다시 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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