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 체제의 대외정책에서 중국은 점점 더 중요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전략적 동반자이자 ‘서방 중심 질서에 대한 대안 축’으로 묘사되지만, 양국 관계는 실질적으로 대등한 동맹보다는 비대칭적 공생에 가깝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국제 금융망과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고립되면서, 중국은 사실상 대체 시장이자 생존 통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환점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였다. 유럽과 미국의 제재로 유럽 투자와 기술 도입이 중단되자,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과 금융 거래를 중국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가즈프롬은 중국 CNPC와 30년 장기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이를 위한 ‘시베리아의 힘(Power of Siberia)’ 가스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위안화 결제 조건과 중국 자본의 관여는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호였다.
무역 구조도 빠르게 재편되었다. 2022년 기준 러시아의 대중 무역 비중은 약 29%에 달한다. 유럽 수출입이 급감한 이후 러시아는 산업재, 가전, 자동차, 통신 장비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2024년 상반기 기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60%를 넘어서며 2021년의 8%에서 급증했다. 판매되는 브랜드 수만도 50개를 넘겼으며, 체리, 지리, 하발 등이 시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 구조 자체는 러시아에 불리하다. 러시아는 여전히 석유, 가스, 석탄, 식량 등 원자재 수출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입은 제조업·기술 중심이다. 에너지 가격도 유럽 수출 대비 낮게 책정되고 있으며, 결제 통화는 위안화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제재 회피 통로를 제공하지만, 그 대가는 가격과 조건의 양보다.
군사 협력은 연례 합동훈련이나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지속되고 있으나, 기술 교류는 제한적이다. 중국은 과거 러시아산 무기에 의존했지만, 이후 자체 개발과 국산화를 통해 러시아 무기 수입을 줄여왔다. 수호이 전투기, S-300 방공시스템, 디젤 잠수함 등이 대표적인 수입 사례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 대규모 무기 계약은 급감했다. 일부에서는 무기 부품을 분해하거나 기술을 모방해 독자 생산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명확히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영토 보전에 대한 존중’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공격형 무기나 군수물자 제공은 확인되지 않았다.
금융 부문에서는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된 이후 위안화 결제망(CIPS)이나 루블-위안 직거래 시스템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주요 은행들은 2차 제재를 우려해 러시아 거래에 소극적이다. 일부 중소 은행이 결제를 지원하긴 하지만 규모나 안정성은 제한적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 2024년 기준, 러시아는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 되었고, 러시아산 LNG 수입도 전년 대비 3.3% 증가해 약 830만 톤에 달했다. Power of Siberia 가스관은 2025년까지 설계 수송량인 연 380억 입방미터에 도달할 예정이며, 추가 가스관 사업을 포함하면 2030년경에는 연간 총 850억 입방미터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 무대에서는 ‘서방의 내정 간섭 반대’라는 공동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은 언제나 균형 유지를 염두에 둔다. 유엔, G20, 브릭스 등의 다자회의에서 양국은 협력하지만,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구하는 반면, 러시아는 탈달러를 주장하는 등 전략의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불만은 존재한다.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기업이 농업, 산림, 물류, 인프라 사업에 진출하면서,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종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변 항만, 도매시장, 물류기업 등에 중국 자본이 확대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2025년 전망은 이 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중국 경제는 미중 갈등과 세계 경기 둔화 속에서도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으로 4%대의 성장이 예상되며, 트럼프 2기 대미 관세 압박이 거세지면 러시아는 더 큰 대체 시장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하지만 푸틴 체제의 대중 접근은 외교적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서방과의 관계 단절에 따른 생존형 전략이다. 중국은 미국 견제의 카드로 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중국을 대체할 파트너를 찾기 어려운 처지다. 이 불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그 공생은 더욱 비대칭적인 구조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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