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

엘노스 2025. 7. 5. 13:21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는 1713년 설립되어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의 발레 교육기관으로, 세계 발레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무용수들은 발레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으며, 각기 다른 세대와 스타일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학교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오렐리 뒤퐁과 실비 길렘을 비롯해 마튀유 가니오, 도로테 질베르, 위고 마르샹 등이 이 학교의 예술적 가치와 교육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오렐리 뒤퐁


오렐리 뒤퐁(Aurélie Dupont)은 1989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한 후 1998년부터 수석무용수 중 최정상급을 일컫는 '에투알(Étoile)'로 활동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이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기술과 표현력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졸업 직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해 빠르게 최고 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녀의 예술적 여정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 감독직을 맡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지젤』과 『백조의 호수』에서의 연기는 뛰어난 테크닉과 깊은 감정 표현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특히 프랑스식 감성과 쉬크한 매력으로 러시아 발레의 기계적 완벽함과는 다른 독특한 예술적 정체성을 구축했다.그녀는 학교 시절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였다고 회상하며, 교육 과정이 무용수로서의 기본기를 넘어 무대 위 존재감을 기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후진 양성과 발레단 발전에 기여하며 프랑스 발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실비 길렘


실비 길렘(Sylvie Guillem)은 1984년 루돌프 누레예프에 의해 19세의 나이로 수석무용수에 임명되었으며, 1989년 24세에 더 많은 자유와 다른 발레단과의 협업을 위해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떠났다. 뒤퐁보다 앞선 세대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최고위 여성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이후 런던 로열 발레단의 주요 게스트 아티스트가 되었다. 전통적인 훈련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개발해 나갔고, 학교에서의 창의성 존중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길렘은 모리스 베자르, 윌리엄 포사이드와 협업하며 현대 무용의 경계를 넓혔고, 런던의 새들러스 웰스 극장과도 협력하며 컨템포러리 댄스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고전 발레의 틀을 넘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한 대표적 사례로,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가 다양한 예술적 방향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튀유 가니오


마튀유 가니오(Mathieu Ganio)는 2004년 5월 20일 루돌프 누레예프 안무의 『돈키호테』에서 바질리오 역을 연기한 후 에투알로 임명되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후, 돈키호테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에투알로 임명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춤은 우아함과 정교함이 조화를 이루며, 전통적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니오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식 투어에 참여하여 스위스, 일본,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전 세계에서 공연했으며, 2025년 3월 1일 『오네긴』을 끝으로 무대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도로테 질베르


도로테 질베르(Dorothée Gilbert)은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를 거쳐 2007년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 공연 후 에투알로 승급했다. 그녀는 균형 잡힌 테크닉과 서정적인 감정 표현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학교에서의 철저한 기본기 훈련이 자신에게 커다란 무기가 되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질베르는 고전 발레뿐 아니라 현대 작품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학교 교육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2022년 에투알 갈라에서도 활약했다. 자그마한 몸집과 외모가 전 에투알였던 모니크 루디에르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발레의 전통적 매력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위고 마르샹


위고 마르샹(Hugo Marchand)은 2017년 3월 3일 도쿄에서 열린 『라실피드』 공연을 마친 후 오렐리 뒤퐁에 의해 에투알로 승급된 젊은 무용수다. 그는 최근 주목받는 젊은 에투알 중 한 명으로, 강렬한 카리스마와 드라마틱한 표현력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학교에서의 집중적인 훈련과 교사들의 밀착 지도를 통해 단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박세은


2021년 동양인 최초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최고 위치인 에투알에 오른 박세은은 서울 태생으로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서 클래식 발레를 배웠다. 2007년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1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해 단계별 승급을 거쳐 2021년 6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후 깜짝 에투알에 임명되었다.


그녀는 발레계 최고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2018)를 수상했고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슈발리에 훈장(2023)도 받았다. 2024년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갈라에서는 프로그램 구성과 캐스팅을 책임지며 동료 무용수들과 함께 한국 무대에 섰다.

 

 

교육 철학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총 15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에투알은 15명 내외를 유지한다. 발레단 산하에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를 두고 무용 엘리트를 지속적으로 육성해오고 있다. 이처럼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는 단지 기술적으로 완벽한 무용수를 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예술적 성향을 존중하며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데 강점을 지닌다.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가능성을 세심히 살피고, 그에 맞춘 맞춤형 지도를 통해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20세기에 들어 세르주 리파르, 루돌프 누레예프 감독을 거치며 세계 최정상 발레단의 위치를 공고히 했으며, 최근에는 브리지트 르페브르(19952016), 오렐리 뒤퐁(2016현재)가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고전 발레의 전통을 이어나가면서 현대 발레의 다양한 안무를 균형감 있게 선보이고 있다.


출신 무용수들의 활약을 보면, 이 학교가 지닌 교육 철학이 얼마나 유연하고도 강력한지 알 수 있다. 전통을 지키는 이들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들 모두,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성장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 무용계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 학교의 진정한 가치는 단일한 스타일의 생산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방향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제공하는 데 있다. 오렐리 뒤퐁에서 실비 길렘, 마튀유 가니오, 도로테 질베르, 유고 마르샹, 그리고 박세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가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세계 발레계를 이끄는 예술가 양성의 산실임을 증명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