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 에너지 질서의 재편

엘노스 2025. 7. 4. 12:05

셰일은 점토와 유기물이 퇴적되어 굳어진 암석층으로, 그 틈 사이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미세하게 갇혀 있다. 하지만 이 자원은 너무 깊고 확산되어 있어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채굴이 불가능했다. 오랜 기간 에너지 산업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 암석층은, 2000년대 이후  수평 시추와 수압 파쇄, 두 가지 기술의 등장으로 에너지 혁명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SK이노베이션 뉴스룸 자료

 
 
수평 시추는 지하 수천 미터의 셰일층을 따라 수평으로 관정을 뚫어 넓은 면적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수압 파쇄는 고압의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주입해 암석을 인위적으로 깨뜨리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1990년대 후반 텍사스 북부 바넷 셰일 지역에서 상업적 가능성이 입증됐고, 미첼 에너지 같은 선구적 기업들의 주도로 상용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내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수치로 본 셰일 혁명

2023년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하루 약 113.1억 입방피트에 도달했다. 이 가운데 약 81.2억 입방피트가 셰일가스에서 생산됐으며, 전체 생산량의 약 79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기술은 석유 개발에도 적용되어 셰일 오일 생산을 촉진했고, 미국은 하루 13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주요 생산지는 텍사스의 퍼미언 분지, 노스다코타의 바켄, 펜실베이니아의 마셀러스 등이다.

미국은 2017년부터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전환되었으며, 2023년에는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수출과 지정학의 전환

2024년 미국의 LNG 수출량은 하루 약 11.9억 입방피트로, 카타르와 호주를 앞서며 세계 1위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LNG 시장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지정학은 급격히 재편되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며 유럽으로의 공급을 제한했고, 유럽은 그 대안으로 미국산 LNG에 의존하게 되었다. 카네기 연구소의 2025년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이전 유럽의 천연가스 수입 중 약 45퍼센트가 러시아에 의존했으나, 2024년에는 19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다. 러시아산 수입량은 2021년 약 1500억 세제곱미터에서 2024년에는 약 520억 세제곱미터로 급감했다.

2024년 기준 미국의 LNG 수출 중 약 53퍼센트가 유럽으로, 약 33퍼센트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은 미국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수입 체계를 안정화했고, 이를 통해 LNG 터미널과 수송 인프라의 전략적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었다.

동아시아 시장과 LNG 선박 수요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산 LNG의 핵심 수입처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2017년부터 미국산 LNG 수입을 본격화했고, 2023년 기준 전체 수입량의 약 20퍼센트를 미국에서 조달했다. 일본 역시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수출 확대는 LNG 운반선 수요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액화된 천연가스는 영하 163도 이하로 냉각된 상태에서 수송되며,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장거리 항로에는 고사양 대형 운반선이 요구된다. 한국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현대중공업은 카타르 국영기업과 LNG 운반선 17척, 약 39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각각 수십 척 규모의 수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셰일가스 수출 확대는 한국 조선업에 실질적인 산업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과 환경 이슈

셰일가스 개발은 미국 내 낙후 지역에 일자리와 세수를 제공했지만, 수압 파쇄에 따른 환경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대규모 물 사용, 지하수 오염 가능성, 메탄가스 누출, 그리고 소규모 지진 발생 등은 일부 주 정부의 규제 강화로 이어졌고, 몇몇 지역에서는 시추 허가 제한 조치가 시행되었다.

2024년에는 처음으로 셰일가스 생산이 감소세를 보였다. 헤인즈빌 지역은 전년 대비 12퍼센트, 유티카 지역은 10퍼센트의 생산 감소를 기록했다. 헨리 허브 기준 천연가스 가격은 2022년 8월 약 9.85달러/MMBtu에서 2024년 8월에는 약 1.99달러로 79퍼센트 하락했다.

팬데믹과 유가 폭락이 겹쳤던 2020년에는 중소 셰일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졌고, 산업 전반에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이후 유가 반등과 수출 확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산업은 점차 회복세에 들어섰다.

미국의 전략과 알래스카 개발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시추에 돌입하겠다"는 발언과 함께 화석연료 개발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기에는 셰일 자원은 물론 알래스카 북부의 연방 보호구역 시추 재개도 포함된다. 알래스카에는 이미 440억 달러 규모의 LNG 개발 프로젝트가 설계되어 있으며, 트럼프 측은 이를 통해 미국의 에너지 수출 능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핵심 파트너로 언급되었다. 2025년 초, 알래스카 주지사와 에너지 대표단은 서울을 방문해 한국 정부 및 민간 기업들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LNG 수입 다변화와 에너지 안보 확보를 고려하는 한국은 경제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실무 차원의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알래스카는 북극항로를 우회해 태평양을 거쳐 직접 한국과 일본에 LNG를 수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갖는다. 트럼프 측은 이를 활용해 알래스카를 북미의 에너지 수출 전진기지로 만들고, 아시아 시장과의 연결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가 무너뜨린 유럽의 에너지 의존 구조 속에서, 미국 셰일가스는 단순한 대체 자원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 질서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알래스카 개발계획까지 더해지며,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은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셰일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지형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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