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릴린 먼로 이후의 금발 미학

엘노스 2025. 6. 26. 05:57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기 전에도 금발의 미인은 존재했다. 그러나 '금발=섹시함'이라는 공식은 그녀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각인됐다. 먼로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아니라, 특정한 미의 규범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통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 기원에는 한 명의 배우뿐 아니라, 헐리우드 시스템과 광고, 사진, 화장품 산업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먼로가 금발로 염색한 건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할 때였다. 1945년 모델 에이전시의 요청과 먼로의 결정으로 헤어색을 금발로 바꾸었고, 금발의 마릴린은 갈색머리였던 전의 모습보다 훨씬 눈에 띄었기에 컬러 변경은 대성공이었다. 1946년 8월, 그녀는 20세기 폭스와 6개월간의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헐리우드는 '브루넷은 진지하고 금발은 가볍다'는 식의 명백한 스테레오타입을 전제로 여배우를 이미지화했다. 그녀는 본래 태어날 때는 밝은 금발에 가까웠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갈색으로 변한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고, 금발로 탈바꿈한 후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을 제안받았다. 
 
반복을 통한 이미지의 고착화

영화 속의 먼로는 단순하고 사랑스럽지만 성적으로 매혹적인 캐릭터로 반복 등장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에서 그녀는 보석을 사랑하는 천진한 쇼걸로,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에서는 부자 남편을 찾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이 캐릭터들은 지능이나 사회적 위치보다 외모와 매력이 중심이었고, 그녀의 외모가 여성성 그 자체를 상징하게 만들었다.
 


먼로의 백금색 금발, 붉은 립스틱, 아치형 눈썹은 이후 수십 년간 헐리우드와 광고 산업에서 복제되었다. 제인 맨스필드는 미국 내에서 ‘제2의 마릴린’으로 홍보되었고, 유럽에서는 브리지트 바르도처럼,자율성과 성적 해방을 상징한 금발 여성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이미지 계보에 편입되었다. 

뷰티 산업의 확산과 제한
 
광고와 뷰티 산업도 이 미의 기준을 적극적으로 확산시켰다. 1950년대 이후 염색약, 마스카라, 립스틱 제품 광고에서는 "마릴린처럼 되세요"라는 식의 슬로건이 반복되었다. 금발은 단지 태어날 때의 특징이 아니라 미의 모델로 제시됐고, 미의 기준은 자연스럽고 다양하기보다는, 특정한 인종적·문화적 틀을 따르도록 유도되었다. 백인, 둥근 얼굴형, 볼륨 있는 곡선. 마릴린 먼로는 이런 기준의 정점이었다.

이런 기준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았다. 흑인 여성이나 라틴계 여성은 이 미학의 외부에 있었다. 실제로 20세기 중반 헐리우드에서는 유색인종 여성 배우들이 주조연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아름답다'는 개념 자체가 백인 여성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마릴린 먼로는 자신도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이미지가 결국 백인 여성성을 이상화하는 데 이용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의 기준의 변화와 회귀

하지만 이 기준은 영원하지 않았다. 1990년대 케이트 모스처럼 깡마르고 유약한 외모가 헤로인 시크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했다. 중성적인 깡마른 몸, 광대뼈가 나와 푹 파인 볼, 검은 스모키 아이, 흐트러진 머리, 공허한 눈동자와 무심한 표정의 퇴폐미로 90년대 패션 화보를 점령했다. 먼로식 곡선미는 잠시 퇴장했다.

1993년 캘빈 클라인 광고로 세계적인 모델로 급부상한 케이트 모스는 기존의 슈퍼모델들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그녀의 깡마른 체형과 앙상한 몸매, 무표정한 얼굴이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먼로가 대표했던 풍만하고 화려한 미적 기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킴 카다시안, 마고 로비 등의 등장으로 다시금 금발과 곡선이 부활했다. 특히 2022년 메트 갈라에서 킴 카다시안이 마릴린 먼로가 1962년 존 F. 케네디 생일 파티 때 입었던 실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사건은 먼로 이미지의 재소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킴 카다시안은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3주간 7kg을 감량했고, 14시간 동안 백금발로 염색했다. 미의 기준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먼로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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