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립스틱이 갑자기 사라졌다. 마스크를 쓰는 일상이 시작되면서 입술에 색을 더하는 일은 불필요해졌고, 때로는 번거로워졌다. 브랜드들은 틴트나 립밤 대신 손 소독제, 클렌징, 기초 스킨케어에 집중했고, 색조 제품은 매장에서 한쪽으로 밀려났다.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심화되었던 2020년 2분기 색조화장품 구매횟수는 1분기 대비 두자릿수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파우더, 에어쿠션, 블러셔, 컨실러,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 판매량이 각각 15%, 22%, 6%, 9%, 17% 감소했다. 반면 스킨과 로션은 49%, 에센스는 53%, 클렌징 제품은 50% 늘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주요 브랜드의 실적에서도 스킨케어 비중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마스크 착용으로 눈이 강조되자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등 아이 메이크업 제품은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립스틱은 원래 얼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마스크는 이 기능을 무력화시켰고, 립스틱은 침묵하게 되었다.
그 사이 피부는 더 정제된 방식으로 부각되었다. '보이는 부분만이라도 완성도 있게'라는 심리 속에 글로우 베이스, 톤업 선크림, 스킨 틴트가 주목받았다. 마스크 착용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며 꼼꼼한 잡티 커버에 대한 소비자 니즈는 다소 감소했고, 파운데이션, 비비크림은 빠르게 위축됐다. 이때 자연스러운 톤 보정에 기초 화장품의 보습과 영양 기능을 겸비한 베이스 복합 제품이 파운데이션, 비비크림의 이탈 수요를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2023년부터 전환된다. 마스크 해제와 함께 색조 제품 수요가 되살아나며, 2023년 1분기 국내 색조 화장품 구매 횟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9% 증가했다. 2022년 같은 기간 증가율이 0.3%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색조가 돌아왔지만, 방식은 이전과 다르다. 이전처럼 강한 레드나 브릭 계열보다는, 피부 톤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생기 메이크업'이 주류가 되었다. 색조화장품은 립 제품 중심으로 가장 많은 생산 증가를 보이며 기초화장품에 이어 생산액 2위를 차지했다. 색조화장품 가운데 립스틱과 립글로스 생산액은 2022년의 4천93억 원에서 2023년 6천540억 원까지 늘어났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중요하게 고려하는 색조화장품 구매 요인으로는 제품의 '지속력'과 마스크와 손에 묻어나는 것을 예방하는 '밀착력'이 상위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컬러 트렌드도 이를 반영한다. 아이 메이크업에서는 파스텔 톤의 라벤더, 베이비 블루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반면, 립 제품은 버건디, 플럼, 베리 계열의 자연스러운 깊이감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강렬한 컬러보다는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는 립 메이크업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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