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스트 패션은 낯선 산업이 아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단편적으로만 소비된다. 몇몇 유명 브랜드의 가격표, 쇼핑몰 메인화면의 신상품 섹션, SNS에서 빠르게 돌고 있는 코디 영상들. 이 조각들 너머에서, 이 산업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브랜드들의 전략은 어떻게 다를까?
자라(ZARA): 속도를 산업의 표준으로 만든 브랜드
자라는 스페인 인디텍스(Inditex) 그룹 산하 브랜드로, 2000년대 이후 패스트 패션의 전형을 제시한 대표 사례다.
디자인부터 매장 진열까지 평균 10~15일, 최대 3주 내에 완료되는 초단기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기존 브랜드들의 평균 3~6개월 리드타임과 비교해 현격히 짧다. 핵심 경쟁력은 약 50%에 달하는 자체 생산 비중과 원단 염색까지 포함한 수직적 통합 구조에 있다.
자라'는 본사가 위치한 스페인 '라 코루냐'에 '아르텍소 사라고사'라는 중앙 물류센터를 두고 본사 인근의 14개 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진다. 모든 완제품은 세계 어느 곳에서 생산되든지 일단 아르텍소와 사라고사의 물류센터로 집하된다.
전체 물량의 50%가 처리되는 아르텍소 물류센터는 주로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중동시장을 담당한다. 나머지 물량은 사라고사 물류센터에서 처리되는데 여기서는 스페인, 포르투갈을 제외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커버한다. 이런 생산방식을 통해 제품의 이동시간을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RFID 시스템을 통한 효율적인 재고관리도 자라의 강점이다. RFID는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태그가 부착된 제품의 위치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다. 패스트패션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제품 회전율인데, 각 의류에 부착된 RFID 태그를 통해 매장 내 제품의 재고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판매흐름에 맞춰 재고를 빠르게 보충 및 교체할 수 있다.
자라는 연간 약 4억 5천만 점(pieces)의 제품을 생산하며, 이는 하루 평균 120만 점 이상이 새롭게 제작된다는 의미다. 생산량이 많지만 매장에 풀리는 물량은 제한적으로 운영되어 한정 수량처럼 보이도록 연출된다. 소비자의 희소성 인식과 반복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자라는 예측보다 반응 중심의 구조를 취한다. 매장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된 고객 반응 데이터를 기획에 반영하며, 신상품 재고 회전 주기는 연간 12회 이상을 달성한다. 이는 전통 브랜드의 연간 3~4회 대비 3~4배 빠른 수치다.
H&M: 다층적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외주 생산 네트워크
스웨덴의 H&M 그룹은 COS, Monki, Weekday, & Other Stories, ARKET, Afound 등 총 6개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운영한다. 브랜드별로 가격대와 고객층을 세분화하며 다양한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생산은 90% 이상이 외주 방식으로 이뤄지며, 리드타임은 평균 4~6주 수준이다. 이는 ZARA보다는 느리지만, 광범위한 아이템을 저가에 다룰 수 있는 구조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매장 수는 4,369개였고, 2025년 2월 기준 4,213개로 감소했다. 2년간 약 150여 개 매장이 줄어들었으며,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과 리테일 통합 전략으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이뤄진 변화다.
공급망 통제력은 낮지만, 그만큼 글로벌 조달망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장기간 축적된 조달 네트워크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보급형 패션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쉬인(SHEIN): 알고리즘이 기획을 이끄는 디지털 네이티브
쉬인은 중국 난징에서 출발해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적인 모델을 정립한 온라인 기반 패션 플랫폼이다.
AI와 실시간 검색, 소비 데이터를 활용한 C2M(Consumer-to-Manufacturer) 방식으로 운영되며, 신상품의 초기 생산 수량은 100~200개 내외로 시작한다. 이후 판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최대 수천 단위까지 재생산 여부가 결정된다.
공급망은 자체 ERP 시스템을 통해 본사와 공장이 실시간으로 연동되며,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평균 5~7일이 걸린다. 앱에는 하루 수천 개의 신상품이 업로드되며, 이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추천된다.
2023년 매출은 약 320억 달러였고, 2024년에는 포브스나 블룸버그 등에서 380억에서 5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ZARA와 H&M의 합산 매출에 근접하는 수치다.
유니클로: 반복 가능한 ‘기본의 가치’
유니클로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 그룹 산하 브랜드로, 속도 중심 전략보다는 기능과 기본에 집중하는 저가 전략을 택하고 있다.
기획은 철저히 시즌 단위로 진행되며, 트렌드보다 반복 소비 가능한 기본 아이템에 집중한다. 히트텍, 에어리즘 등 자체 개발된 기능성 소재를 통해 단가 대비 높은 실용성과 내구성을 확보하고 있다.
재고는 컬렉션 중심이 아니라 품목 단위 단기·장기 혼합 판매 구조로 운영된다. 일부 제품은 시즌 이후에도 판매를 지속하며, 충성도 높은 고객층의 반복 구매를 유도한다.
유니클로의 LifeWear 전략은 고속 회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상 소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구조다. 패스트 패션 내부의 또 다른 변형이라 볼 수 있다.
패스트 패션은 하나의 방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자라는 연간 4억 5천만 점 생산과 2-3주 단위 회전을 기반으로 한 초고속 공급망을 무기로 삼고, H&M은 4,213개 매장과 6개 브랜드 포트폴리오로 다층적 대중성을 유지한다. 쉬인(SHEIN)은 매일 수천 개의 신상품과 5~7일 생산 주기를 기반으로 C2M 디지털 전략을 펼치며, 유니클로는 반복 가능한 기본 품목과 기능성 소재를 중심으로 다른 방식의 저가 모델을 구축한다.
https://youtu.be/lDDeqv7aRto?si=pf7iuO5WxjFOVY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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