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미국 조선업 몰락 - 쇠락하는 조선소, 떠난 기술자들

엘노스 2025. 6. 14. 16:18

 

 

20세기 중반,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조선업의 맹주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조선 생산력은 경이로웠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총 2,751척의 리버티선을 건조했으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설계 선박 클래스였다. 초기에는 건조에 230일 정도가 소요되었으나, 1943년에는 평균 39일로 단축되었다. 최고 기록은 SS Robert E. Peary호로, 용골 거치 후 단 4일 15시간 30분 만에 진수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총 5,777척의 선박을 건조했으며, 이는 영국의 1,156척, 독일의 954척을 압도하는 수치였다.

 

영국의 세계적인 해운업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Clarkson Research)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은 4,645만 CGT(보정 총톤수)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고, 한국이 1,098만 CGT(17%)로 뒤를 이었다. 같은 해 일본은 4%, 유럽은 6%를 차지했다. 미국의 점유율은 수치로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실제 조선 생산량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조선소 생산량은 13% 증가했는데 중국이 CGT 기준 53%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고, 한국이 28%, 일본이 12%를 차지했다. 유럽은 4%였다.


경제적 수익성의 함정: 비용 경쟁력 상실

조선업 쇠퇴의 핵심은 경제적 수익성 악화에 있다.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비용은 다른 나라의 2배에서 4배에 달한다. 이는 1936년 건조차액보조금 제도가 미국과 외국 건조비용 차이의 최대 50%를 지원했던 것에서도 확인되는데, 이 제도 자체가 미국 선박이 다른 곳에서 건조되는 선박보다 대략 2배 비싸다는 전제 하에 설계되었다. 

 

ING Think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인건비는 한국과 일본 대비 약 50% 저렴하며, 인건비가 전체 생산비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업에서 이는 결정적인 가격 우위를 점한다. 

 

조선업은 본질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대량 투입되는 산업이다. 선박 건조에서 인건비는 전체 비용의 20-40%를 차지하며, 대형 화물선 한 척을 건조하려면 보통 100만 시간 이상의 노동력과 1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제조업 환경은 조선업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강력한 노동조합의 영향으로 임금 인상 압력이 가중되었다. 환경 규제도 까다로워졌다. 반면 경쟁국들은 각각 다른 전략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국가 주도의 중공업 육성 정책을 통해 조선업을 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로 조선소를 설립하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설비를 구축했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부터 구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1981년 조선업 보조금 폐지의 충격

미국 조선업 몰락의 결정적 전환점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 변화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기치로 내세우며 건조차액보조금(Construction Differential Subsidy)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과 해외 건조비용 차이의 최대 50%까지 지원해 주던 제도였다.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 결정에는 마틴 앤더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앤더슨은 정부 보조금에 교조적으로 반대했다. 그의 아내 애널리즈 앤더슨이 관리예산처를 이끌면서 조선업 보조금을 행정부 첫 예산안에서 제외시켰다.

이 정책 변화의 여파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다. 1975년 미국은 77척의 상선을 주문받았지만, 레이건 행정부의 건조차액보조금 폐지 결과 1987년부터 1992년까지 1,000총톤 이상의 상선을 단 8척만 건조했다. 

1973-1978년 기간 동안 상업용 조선업이 전체 조선업 작업량의 약 3분의 2를 차지했으며, 1970년대 말 미국 조선소는 187,000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1980년대에 조선업은 40,000개의 생산직 일자리를 잃었고, 상업용 조선업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고용 붕괴: 사라진 18만 개의 일자리

조선업 쇠퇴의 인적 비용은 참혹했다. 1980년 민간 조선소에는 약 180,000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가장 최근 미국 경제 센서스에 따르면 민간 조선업 일자리는 105,500개로 감소했다. 이는 40% 이상의 감소로, 1980년 이후 10명 중 4명 이상의 조선업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의미다.

1980년 미국의 잠재 노동력은 약 1억 6,800만 명이었지만 2010년에는 2억 3,3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만약 조선업 고용이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비율을 유지했다면, 2010년까지 조선업에 250,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1980년 운영되던 12개 주요 조선소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상업용 조선소만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상업용 선박만 생산하던 조선소는 11개에서 단 1개로 줄어들었다.

조선업 쇠퇴는 관련 공급망에도 연쇄적 타격을 주었다. 미국은 한때 약 30개의 주요 조선소에서 180,000명의 근로자가 연간 70척 이상의 상선 계약을 처리했지만, 1980년대 이후  수만 개의 조선소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국 조선업의 부상

클락슨 리서치의 2024년 데이터는 현재 조선업 판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전 세계 조선 수주는 6,600만 CGT, 총 2,040억 달러 규모에 달했는데, 이는 17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이 중 중국이 71%를 독점했고, 한국(17%), 일본(4%), 유럽(6%)이 뒤를 이었다. 미국은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벌크선, 탱커선, 컨테이너선에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은 LNG선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 조선업계는 LPG 운반선 시장에서 93%의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존스법의 역설: 보호가 낳은 경쟁력 약화

미국 조선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20년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이다. 이 법은 미국 연안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 국적 회사가 소유하며, 75% 이상이 미국 시민으로 구성된 승무원이 운항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원래는 자국 조선업과 해운업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법안이었지만, 조선업 기반이 붕괴된 현재는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2019년 OECD 연구에 따르면 존스법 폐지로 인한 미국 경제의 이익은 190억 달러에서 6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인베스토피아 자료에 따르면,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 간 화물 운송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의 경우 미국 국적선과 외국 국적선 간 비용 차이가 벌크 화물의 경우 41%에서 62%,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29%에서 89%에 달한다. 이로 인한 푸에르토리코 경제의 추가 비용은 연간 약 12억 달러로, 주민 1인당 374달러의 부담이다.

2023년 현재 존스법 선단은 1980년대 약 250척에서 91척으로 줄어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법이 산업 기반 붕괴 후에는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방산과 민간의 분리: 이중화된 기술 체계

흥미롭게도 미국은 군함 건조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니미츠급과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줌왈트급 구축함 등 첨단 군함들은 미국만이 건조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 집약체다.

레이건 행정부는 8년 임기 동안 71척의 함정을 추가해 1981년 521척에서 1989년 592척으로 해군 전력을 확대했다. 1980년과 1985년 사이 해군 건조 및 수리 부문은 42% 증가한 반면, 전체 조선업은 15% 감소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조선업 내 국방 관련 일자리는 거의 24,000개 증가했지만, 전체 산업 일자리는 34,000개 감소했다.

그러나 이런 방산 조선업체들의 기술이 민간 시장으로 이전되지는 않는다. 보안상의 이유로 기술 공유가 엄격히 통제되고, 생산 규모나 방식도 민간 상선과는 완전히 다르다. 군함은 소량 주문생산 방식인 반면, 상선은 대량생산 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함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민간 상선은 전혀 건조하지 못하는 기이한 이중 구조를 갖게 되었다.

산업 생태계의 붕괴

조선업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산업이 아니다. 철강, 기계, 전자, 화학 등 수많은 관련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 해군의 정기간행물 <프로시딩스(Proceedings) 2025년 2월호에 따르면,1950년대 이후 미국 조선업 생산량은 85% 이상 감소했으며,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미국 조선소의 수는 80% 이상 줄어들었다.

미국 조선업의 몰락은 이런 산업 생태계 전체의 연쇄 붕괴를 의미했다. 조선업 쇠퇴는 이 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수많은 공급망에도 타격을 주었다. 알루미늄, 케이블, 유리, 파이프, 강철, 단조품, 미끄럼 방지 격자재, 방수 캐비닛, 모터, 스프링 등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건조에 필요한 수많은 품목을 제조하는 수만 명의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부터 조선업 중심지인 울산과 거제도를 중심으로 방대한 부품 공급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현재 경남 지역에는 2,000여 개의 조선 관련 업체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 인력 부족과 비용 급증

Marine Insight 2024sus 8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해군은 25년 만에 최악의 조선업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심각한 인력 부족, 비용 급증, 지속적인 설계 변경으로 인해 중국에 비해 생산량이 크게 뒤처지고 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위스콘신의 주요 조선업체인 마리네트 마린은 현재 6척의 유도미사일 호위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연간 1척만 건조할 수 있다. 미 해군은 마리네트 마린에 1억 달러를 할당했으며, 이 중 최대 1만 달러가 직원 유지 보너스로 사용되어 2,000명에 가까운 근로자의 높은 이직률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해양 강국의 기초 체력 상실

조선업의 몰락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제조업 한 분야의 쇠퇴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 해양 국가로서 갖춰야 할 기초 체력의 상실을 의미했다.

유사시 군수 물자나 전략 물자를 해외로 수송할 상선이 부족하고, 이를 건조할 조선소도 부족하다. 현재 미국이 등록한 원양 상선은 전 세계 44,000척 중 200척 미만에 불과하다.

미국 조선업의 몰락은 하나의 정책 실패나 시장 변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제 정책, 산업 정책, 교육 정책, 노동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맹신, 제조업 경시 풍조, 단기 수익 추구, 인력 양성 소홀 등이 누적되어 일어난 구조적 붕괴였다.

이런 몰락 과정은 서서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진행되었다. 조선업은 한번 기술과 인력, 산업 기반을 잃으면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숙련 기술자 양성에만 10년 이상이 걸리고, 현대적 조선소 건설에는 수십억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 조선업의 몰락은 한 산업의 쇠퇴를 넘어, 국가가 전략 산업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시장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때로는 국가의 장기적 비전과 지속적 투자만이 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