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 1/2> 이생망 세대의 판타지

엘노스 2025. 6. 21. 05:38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은 회귀라는 장치를 이용해 복수극과 기업 서사를 교차시킨다. 주인공 윤현우는 순양그룹의 미래자산관리팀장으로 일하다 억울하게 죽고, 1987년으로 돌아가 그룹 창업주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도준은 미래를 아는 능력을 활용해 경제적 성취와 가족 내 권력투쟁 모두에서 승리하려고 한다. 이야기의 얼개만 보면 낯설지 않다. 회귀물은 이미 2010년대 이후 웹소설 플랫폼에서 주류 장르로 자리잡았고, 복수는 한국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서사다.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회귀물의 인기는 현재를 '되돌리고 싶은 시간'으로 인식하는 집단적 정서의 방증이다. 실제로 네이버 시리즈의 2022년 종합 순위 10위 중 6개, 카카오페이지의 종합 순위 10위 중 5개가 회귀물이었을 정도로 이 장르는 한국 웹소설 시장을 휩쓸고 있다. 윤현우가 회귀하는 시점은 1987년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6월 항쟁을 통해 제도적 전환을 시작한 해이자, 경제적으론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등에 업고 고도성장을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순양그룹이 이 시점에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한때 자신이 비서로 모셨던 이 가문을 내부에서 다시 만나고, 그들의 비밀을 '미래 정보'로 무장한 채 파고든다. 

하지만 도준은 윤현우의 과거를 복원하지 않는다. 그는 순양그룹을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더 유능하고 치밀한 기업가로 성장하며 '제2의 순양'을 세운다. 이 지점이 이 드라마의 아이러니다. 회귀와 복수라는 서사는 도준이 원래 속했던 계급—비정규직, 소외된 노동자—을 회복하려는 게 아니라, 재벌가의 핵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윤현우는 "열심히 일했지만 보상받지 못한 자"였다. 그러나 진도준은 "먼저 알고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는 자"로 다시 태어난다. 복수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선점과 축적을 위한 전략이 된다.

드라마는 이 전환을 특별히 숨기지 않는다. 도준은 과거의 금융위기, IT버블, 정치 정세를 정확히 예측해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가족들의 약점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더 나은 재벌', '정의로운 기업가'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기존 재벌가의 시스템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부조리한 현실은 구조적 개선이 아니라, 더 똑똑한 한 개인의 개입으로 해결된다

회귀물이 한국에서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날로 불경기와 불황 등으로 삶이 팍팍해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와 부동산·가상화폐 열풍으로 인한 좌절감이 회귀물의 대중적 소비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무의미한 환상만을 파는 것은 아니다. <재벌집 막내 아들>이 동시대 시청자들에게 강한 반응을 얻은 이유는, 윤현우의 억울함과 무력함이 현재의 청년 세대가 처한 구조적 좌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재벌집 막내 아들>은 결국 성공한 개인의 이야기다. 회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위로보다는 대리만족을 준다. 드라마가 첫 방송부터 6%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2022년 JTBC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대리만족감을 느낀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이었다.. 윤현우는 왜 다시 태어나야 했을까? 그것은 이 세계가 그를 살아있게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런 세계 안에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