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세상에 소개한 작은 사각형은 그저 새로운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 "오늘 애플은 전화를 다시 발명합니다"라고 말한 잡스의 손에 들린 아이폰은 디자인 혁명이었다. 모서리가 둥근 검은 정사각형, 물리적 키보드 없이 매끈한 정전식 터치스크린, 무엇보다도 '터치'로만 반응하는 화면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폰 이전의 전자기기들은 기능을 외관에 드러냈다. 버튼, 키패드, 안테나... 사용자는 '어디를 누를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스티브 잡스가 발표하면서 했던 말이 "버튼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스타일러스 펜은 대체 왜 써야 하냐?"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아이폰은 주요 물리적 입력 요소들을 제거하고 화면 하나에 기능을 통합했다. 이 극단적 단순화는 한편으로 '직관적 사용성'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통제권의 중심이 사용자에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페이스' 안에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존재가 되었다.
감각의 재배치
스마트폰 이후의 세대는 오브제를 보고 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터치하고 넘기는 데 익숙하다.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에 달려 있던 고정된 플라스틱 쿼티 키보드를 없애고 멀티터치 스크린을 도입했다. 멀티터치 기술 자체는 이미 존재했지만, 아이폰은 이를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첫 제품이었다. 그 뒤로 거의 모든 스마트폰은 이 전례를 따르게 된다. 혁신적 스크린은 두 손가락으로 벌려서 줌인하는 테크놀로지를 대중화시켰고 손가락으로 멀티미디어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게 했다.
말레비치의 검은 정사각형
아이폰의 디자인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1915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전에서 처음 절대주의 선언을 발표하고, 철저하게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검은 사각형>을 발표하였다. 그 그림은 회화에서 모든 재현을 제거하고 순수한 형태만을 남겼다. 예술의 '제로 포인트'.

말레비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물이 없는 비대상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말레비치는 사물의 형태를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절대정신의 경지에 도달하려 했다. 아이폰 역시 기술 디자인의 제로 포인트로 여겨진다. 모든 브랜드가 이 형식을 따라 했고, 그 결과 스마트폰은 더 이상 브랜드별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장치'가 되었다.
단순함의 이면에 감춰진 복잡성
미니멀리즘이 항상 해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폰은 단순화와 직관을 표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능과 선택지는 점점 더 복잡하고 불투명해졌다. 무엇을 볼지, 누굴 만날지, 어떤 정보를 얻을지를 결정하는 건 사용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시리, 추천 콘텐츠, 푸시 알림...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이면에는 복잡하게 짜인 '보이지 않는 결정권'이 있다.
이제 전화 통화는 아이폰으로 하는 일들 중 뒷전으로 밀렸다. 2012년 영국 통신사 O2의 보고서에 의하면 통화는 스마트폰에서 자주 쓰는 기능 중 5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브라우징과 소셜 네트워크가 통화보다 앞섰다. 이는 아이폰이 단순히 전화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재구성하는 플랫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시공간의 재구성
아이폰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한다.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사용자는 '여기'보다 '다른 어딘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현재에서 벗어나 미래를 계획하거나,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장소를 지우고 '플랫폼화된 공간'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하철에서든 침대에서든 '같은 화면'을 본다. 물리적 장소는 점점 더 무의미해졌고, 대신 앱과 알림, 스크롤이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되었다.
아이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주머니에 높은 연산 능력을 가진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게 되었다. 휴대용 컴퓨터의 보급은 수많은 혁신적 어플리케이션을 가능하게 했고, 이로써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한한 정보와 연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현재 순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욕망의 투사체
우리는 왜 이토록 매끄러운 사각형에 끌릴까? 어쩌면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아이콘과 앱 속에 정리하고 싶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레비치가 자신의 정사각형이 그 어느 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하였듯이, 아이폰 역시 과거의 어떤 기기와도 닮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장치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 화면은 언제나 닫히지 않은 창이기도 하다. 보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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