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2021년 11월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 직후 24시간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V 프로그램 순위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84개국 이상에서 넷플릭스 인기 순위 TOP 10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공개 10일 동안 월드 랭킹 1위를 수성했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첫 주 동안 4348만 시청 시간을 기록해 비영어권 TV 프로그램 부문 정상에 올랐으며, 71개 나라에서 톱 10에 들었다.
시청자 반응은 예상대로 양극으로 갈렸다. 파격적인 설정과 빠른 전개에 호평이 따랐지만, 인물 감정선의 비약과 결말부의 전환에 당혹감을 표한 이들도 많았다. 그 논쟁적 반응 자체가 <지옥>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 기획할 때부터 보편적인 대중들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는 오락적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험'에 가까운 시도다.
초자연적 설정이 드러내는 현실의 민낯
<지옥>은 설정부터 이례적이다.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지옥행 선고(고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지옥의 사자들이 등장해 '시연'이라 불리는 처형을 거행한다. 죄의 내용은 설명되지 않으며, 당사자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공개 처형당한다. 이 장면이 뉴스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대중은 자연스레 도덕적 해석을 시도하게 된다. "죽은 자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명제는 증거도 설명도 없이 믿음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 군중의 믿음이 만들어낸 진실이다.
한국 사회의 종교 현실과의 연결점
이러한 설정은 한국 사회의 종교 현실과 긴밀히 연결된다. <지옥>에 등장하는 '새진리회'는 특정 종교를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지만, 그 운영 방식은 한국의 신흥 종교 및 사이비 종교의 실태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적인 '의미'를 제공하는 교주, 초자연적 사건을 체계화하는 교리, 그리고 종교적 믿음을 사회적 지배 구조로 확장하는 조직력까지. 특히 새진리회가 동원하는 '화살촉'이라는 준폭력 집단은 실제로 사회적 이단 규정과 낙인을 통해 폭력을 정당화한 과거 사례들을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단지 종교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옥>이 겨냥하는 핵심은 '사회 전체가 어떻게 초자연적 공포에 반응하는가'라는 집단 심리의 문제다. 시청자 입장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지옥의 사자가 아니라, 시연 장면을 생중계하고, 인터넷 댓글로 희생자를 조롱하며, 그 현상을 '정의'라 믿는 사람들이다. 이는 단순히 극 중 세계의 문제로만 보기도 어렵다. 한국 사회는 이미 각종 미디어를 통해 '도덕적 공포'를 공유하고 있으며, 특정 인물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문화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 있다.
<지옥>이 제시하는 초자연적 설정은, 그 공포를 더욱 명백하게 가시화하는 장치일 뿐이다.
연상호 감독은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서브컬처 마니아"라고 밝히며, "'지옥'을 만들면서도 웰메이드 영화를 지향하지만, 키치하고 서브컬처적인 요소가 들어가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복합성은 《지옥》을 단순한 블랙 코미디나 디스토피아 스릴러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회적 장르이면서도 윤리극이며, 동시에 종교극의 요소도 지닌다. 그 안에서 인물은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혼란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옥>이 묘사하는 세계는 분명 파괴적이지만, 그 세계를 이끄는 건 악마가 아니라 인간의 해석이다. 신의 존재보다 더 위협적인 건, 신의 뜻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글로벌 공감대
《지옥》은 특히 바레인, 이집트,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요르단, 말레이시아, 모로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같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공개된 이후로 줄곧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의 주제가 한 나라,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적 맥락을 넘어서는 보편적 메시지가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삶과 죽음, 죄와 벌, 정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종교와 문화를 초월하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및 제작사와 드라마의 타겟 관객층을 협의할 때 전체 대중보다는 깊은 감상을 하는 매니아들을 노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은 예상을 뛰어넘는 대중적 관심을 끌어냈다. 연상호 감독은 "자고 일어났더니 1위가 됐다. 어리둥절했다"고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정진수는 '세계를 평균적으로 좋게 만들겠다'며 현재 '지옥' 세계관의 논리를 만들었다. 초자연적 현상이 죄인을 지옥으로 데려간다는 것이 '평균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배영재의 이야기는 다수의 정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이 옳은가에 대한 것"이라며 작품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을 명확히 했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후 세계의 지옥은 보여주지 않는다. 죽을 시간을 고지 받은 사람들이 있는 현실 세계가 진정한 지옥으로 변해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정은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옥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포는 괴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내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제나 '신의 이름으로' 말해진다. <지옥>이 보여주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의 심판이 아니라, 그 심판을 해석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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