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안무의 모차르트와 수잔 패럴

엘노스 2025. 6. 3. 07:36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수잔 패럴의 춤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정말 인간일까?'

그녀의 몸은 마치 정교하게 조율된 바이올린처럼, 음악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놓치지 않고 움직임으로 번역해낸다. 

천재 안무가가 만난 완벽한 뮤즈

수잔 패럴은 20세기 발레계의 전설, '안무의 모차르트' 조지 발란신이 말년에 만난 최고의 파트너였다. 발란신과 함께 작업한 수많은 발레리나들 중에서도 그녀는 독보적이었다. 

발란신은 백조의 호수나 지젤처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대신, 오직 '춤 그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음악이었고, 그 음악을 어떻게 몸의 언어로 번역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음악을 춤으로 번역하는 마법사

"성공적인 안무를 만들려면 발란신처럼 먼저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것처럼, 발란신은  음악성이 탁월한 안무가였고, 그는 단순히 음악에 맞춰 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구조 자체를 춤으로 시각화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다른 선율이 각기 흐르다 엮어지는 대위법이나 싱코페이션 같은 작곡상의 기법을 춤 안무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식이었다.

 

무대 위 무용수의 동작은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다양하고 섬세한 변용을 보여줘야 했고, 여자 무용수들에게 위험한 수준까지 테크닉 연마를 요구했을 정도로 비정한 측면도 있었다.

 

발란신의 안무는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음악을 깊이 연구하면서 다양한 동작을 창조했던 발란신은 극에 매몰된 극 중심의 발레를 지양하고 춤을 통해 신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던 유미주의자였다.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기적

 

발란신의 작업 스타일은 음악 분석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안무는 공연 3주 혹은 1주 전에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던 터라 관계자들은 바싹 피가 마르곤 했다.  공연 3-4개월 전에는 새 작품의 안무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으니까. 공연 1주일 전에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충분히 연습할 시간도 없이 무대 위에 서야 하니 음악성과 기교가 탁월한 일류 무용수이 발란신과 작업할 수 있었다.

 

발란신은 무용수의 외모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가늘고 긴 팔다리, 유난히 날씬한 체형을 선호했는데, 이는 그의 안무에서 요구되는 선의 아름다움을 잘 살릴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까다로운 조건들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무용수가 수잔 패럴이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발란신은 이전에는 시도할 수 없었던 동작들을 안무할 수 있었고, <모차르티아나> 같은 불멸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모든 음악은 발레 음악이 될 수 있다."

 

발린신의 신념은 수잔 패럴과의 만남을 통해 현실이 되었고, 미국에서 신고전주의 발레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양식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모차르티아나 영상

https://youtu.be/I3LYZvUgNdo?si=OKkSTI0ms52Ncl1b

 

* 수잔 패럴 다큐멘터리

https://youtu.be/UZcXicovqf4?si=hrAUhQ8eJtZFY6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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