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책을 덜 읽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책상 위에 놓인 책이 펼쳐둔 채 며칠째 같은 페이지에 책갈피가 꽂혀 있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궁금한 게 생기면 유튜브를 열거나 AI에게 묻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접하는 정보의 양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반도체 공급망이 궁금하면 15분짜리 영상이 준비되어 있고, 더 깊이 파고 싶으면 AI가 맥락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에 주제 대여섯 개는 충분히 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통계 역시 이러한 감각을 뒷받침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독서율은 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웹툰과 전자책까지 포함한 종합 독서율은 87.8%에 달합니다. 특히 50대의 종합 독서율은 2019년 대비 9.2%포인트나 떨어졌다고 하네요. 우리가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종이책에서 멀어진 것이며, 그 빈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채우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명확합니다. 바로 속도와 효율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알아서 먼저 보여주고, AI는 원하는 답을 원하는 형식으로 즉시 내놓습니다. 책은 3장까지 읽어야 겨우 핵심이 나오지만, AI는 첫 문장부터 결론을 제시합니다. 현대인의 정보 소비가 책에서 멀어진 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일까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대학 시절 노암 촘스키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세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죠.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흔들렸고, 머릿속에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적 충격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지요.
지금의 유튜브와 AI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두 매체 모두 이미 가진 관심사를 더 상세히 설명해 주는 데는 탁월합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좋아할 법한 것들만 골라 보여주고, AI는 질문하는 방향 안에서만 답변을 내놓습니다. 생각을 강화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그 생각의 토대를 근본부터 재검토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셈입니다.
꼰대라는 단어의 본질은 사실 나이가 아니라 생각의 유연성이 사라진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세상을 보는 나름의 프레임을 완성해갑니다. 하지만 그 프레임이 견고해질수록 내가 아는 것만 정답으로 여기고, 낯선 의견을 배척하게 됩니다. 내 생각의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못할 때 사유는 정지하고 꼰대라는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유튜브와 AI는 본질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용자의 기분을 맞춰주고 생각을 보강해주지만,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반면 책은 다릅니다. 저자는 독자의 반응을 살피며 비위를 맞추지 않습니다. 독자가 읽기에 불편해도, 당장 페이지를 덮고 싶어도 저자의 논리는 이어집니다. 독자는 바로 그 불편함 안에서 비로소 내 프레임의 균열을 발견하고 생각의 유연성을 회복할 기회를 얻습니다.
쌓인 경험이 지혜가 될지, 아니면 사고의 감옥이 될지는 결국 이 유연성에 달렸을 것입니다. 내 세계관을 기분 좋게 흔들어줄 수 있는 도구가 여전히 책이라면, 책상 위 멈춰있던 책갈피를 다시 집어 들 이유는 충분합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데이터센터의 모듈화 (0) | 2026.02.26 |
|---|---|
| 메타의 라마는 왜 무료일까 (0) | 2026.02.26 |
| 달라진 여행 문법 (0) | 2026.02.26 |
| 지니어스법의 한계 (0) | 2026.02.26 |
| 전장의 운영체계 (0) | 2026.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