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장의 운영체계

레스프리 2026. 2. 25. 08:36

과거 전쟁의 정보 체계는 위성, 지휘소, 포병 부대가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사람이 그 틈을 메우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이 이제는 이 세 요소가 하나의 유기적인 소프트웨어 스택 위에서 돌아갑니다.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위성 영상과 드론 피드, 시민들이 앱에서 신고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한 작전 화면 앞에서 러시아군보다 앞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의 속도 차이가 전력의 열세를 일정부분 메꾸었죠.



팔란티어가 미 우주군 및 국가정찰국(NRO)과 협력해 발전시킨 메타콘스텔레이션은 수백 기의 상업/군용 위성을 단일 가상 망원경처럼 통합해 제어합니다. 원본 이미지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대신 위성에 탑재된 엣지 AI가 1차 분석을 마친 뒤 "기갑 차량 5대, 좌표 ○○○" 같은 압축된 결과값만 전송하죠. 통신 대역폭 부담을 대폭 줄이고 분석 지연을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 통신망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사실상 통신 인프라로 기능했습니다. 러시아군의 전자전(재밍/스푸핑) 공격에 반복 노출됐지만, 스페이스X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빠르게 대응했죠. 하지만 2022년 일론 머스크가 크림반도 인근 해역에서 우크라이나군 드론 작전을 위한 스타링크 서비스 확장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이후 공개되면서, 민간 기업이 전장의 통신 인프라를 독점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가 심각한 안보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팔란티어의 고담 플랫폼은 위성 영상, 드론 피드, 통신 감청, 오픈소스 정보(OSINT)를 단일 작전 지도로 통합합니다. 여기에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가 결합되면서 의사 결정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죠.

지휘관은 자연어로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현재 가용 자산 중 적 보급로 차단에 가장 효율적인 타격 옵션은?"
팔란티어 AIP는 실시간 위성 데이터와 부대 현황을 즉시 분석하고, 적의 예상 기동로와 병참선을 바탕으로 다중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 뒤, 성공 확률이 높은 작전안을 제시합니다.

미 육군이 도입 중인 이동식 지휘통제 플랫폼 TITAN은 이 모든 소프트웨어와 위성 통신 장비를 트럭 한 대에 응축시킨 시스템입니다. 팔란티어가 2024년에 소프트웨어 인티그레이터로 선정되었죠. 전장의 승패가 공장이 아니라 AI 개발실에서 결정되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감시 자산(눈)과 통신망(신경망)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지능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통합 소프트웨어(두뇌) 역량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425 사업을 통한 정찰위성 확보와 저궤도 위성 사업은 눈을 만드는 과정이죠. 하지만, 위성이 찍은 수천 장의 사진 중 유의미한 표적을 골라내고, 이를 즉시 포병 화력과 연결하는 통합 알고리즘은 개별 사업 단위로 흩어져 있습니다. 

Link-K와 K- JADC2가 데이터링크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신체로 치면 Link-K는 말초신경계이고 K-JADC2는 척수에 해당합니다. 그 위에서 실시간 결정을 지원할 팔란티어의 고담/AIP 같은 두뇌 역할의 플랫폼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국방인공지능기술연구원'이라는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육·해·공이 AI 개발을 각자 독립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각 군의 데이터 체계는 연결되지 않은 채 개별 AI 사업이 병렬로 진행되고 있죠.

예산이 늘어도 통합적으로 집행할 구조가 없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팔란티어의 강점이 수십 년에 걸친 통합 실행 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각 군의 AI 사업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입니다. 미 국방부가 파편화된 각 군의 AI 사업을 통제하기 위해 예산 집행권과 획득 권한을 독점한 최고디지털인공지능관(CDAO)을 신설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명함만 파줄 게 아니라 AI와 관련된 예산과 집행 권한을 한곳에 몰아줘야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있죠.

소버린 AI는 자국의 데이터, 인프라, 모델을 독자적으로 보유·운용하는 AI 역량을 의미합니다. 군사 영역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죠. 그런데 소버린 AI 논의에서 종종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좋은 LLM을 만드는 것'이 소버린 AI의 핵심이라는 생각이죠.

LLM은 대체 가능한 부품입니다. 프랑스는 미스트랄을, UAE는 팔콘을 만들고 있죠. 하지만 자체 LLM을 만든다고 환각이 사라지지 않고, 데이터 주권이 자동으로 확보되지도 않습니다. 팔란티어의 AIP처럼 어떤 LLM을 쓰더라도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AI 운영체계도 필요합니다.

현재 추진 중인 425사업, 백두 2, 한화 저궤도 위성, Link-K, KJADC는 방향성은 맞지만, 이 퍼즐 조각들을 하나의 통합 스택으로 묶어내는 것은 소버린 AI 모델이 아니라 AI 운영체계입니다. 각기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온톨로지, 에이전트가 어디서 멈출지를 강제하는 워크플로 설계, 지휘관의 결정과 AI 추천이 맞물리는 승인 시스템 — 이 세 가지가 갖춰져야 전장의 운영체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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