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가 아인슈타인이 되는 날

레스프리 2026. 2. 21. 07:33

아래는 2040년대,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초인공지능(ASI)이 수조 개의 가상 우주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습니다. 각 우주마다 물리 상수를 미세하게 바꿔가며, 우리가 아는 물리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암흑에너지의 가속 팽창, 중력과 양자역학의 불일치—을 동시에 풀어내는 단 하나의 통합 방정식을 찾고 있죠.

어느 날, 드디어 답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방정식이 우리가 아는 미적분도, 위상수학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기술되어 있는 거죠. AI는 이 법칙으로 암흑에너지를 정확히 예측하고, 양자 중력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며, 심지어 새로운 소재를 설계합니다. 결과는 완벽하게 작동하죠. 문제는 AI는 이해하는데 인간은 그 방정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작은 규모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딥러닝 모델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때, 과학자들은 '왜 이 답이 맞는지'를 사후적으로 추적합니다. 아직은 그 추적이 대체로 가능합니다. 인간이 이미 알고 있는 화학과 생물학의 틀 안에서 AI의 답을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AI가 인간의 인지 틀을 넘어선 답을 내놓는 순간, 해석의 사다리가 사라집니다. 인간 물리학자는 AI의 통합 방정식 앞에서 개미가 도시 설계도를 마주한 것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개미는 종이 위의 선을 감지할 수 있지만, 그 선이 '도로'라는 개념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인지 구조 자체가 없습니다. 

이때 과학은 '이해'에서 '신뢰'로 근본적인 성격 변화를 겪을 겁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가 아니라 "이 결과를 믿을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됩니다. 우주의 작동 원리를 알고 있는 존재는 있지만, 그 존재가 인간이 아닌 시대가 시작되는 거죠.

여기서 인간과 AI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역전됩니다. 지금까지 AI는 인간이 지시한 목표를 최적화하는 도구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체스판의 규칙을 인간이 정해주는 한, AI는 플레이어일뿐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었죠. 

하지만 AI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순간, 관계는 역전됩니다. 인간은 AI가 그 법칙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새로운 에너지원, 불치병의 치료법 등—이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역설적 반전인 셈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인간은 그 불의 원리를 이해하며 문명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초인공지능이 건네는 '불'은 원리를 알 수 없는 불입니다. 쓸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죠. 

이 상황에서 인류의 선택지는 아마 세 가지일 겁니다.

첫 번째는 '번역자'를 만드는 겁니다. 초인공지능이 찾은 법칙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계별 설명으로 분해하는 '해석 AI'를 만드는 거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처음엔 극소수만 이해했지만, 교육과 해석의 층위를 거치며 보편적 지식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또 다른 AI가 담당한다는 차이가 있죠.

두 번째는 결과만 수용하는 겁니다. 원리는 포기하고 결과만 취하는 실용주의적 태도죠. 사실 우리는 이미 이 태도에 익숙합니다. 스마트폰의 반도체가 양자역학으로 작동한다는 걸 알지만,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스마트폰을 잘 씁니다. 다만 그 규모가 '생활의 편의'에서 '문명의 근본'으로 확장된다는 게 문제겠죠.

세 번째는 '거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인류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죠. 이 선택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지식에 대한 저항은 늘 존재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과연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할까요?

이 가설이 실현되려면 핵심적인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이 변수들을 바꿔봐"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이런 변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가설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계에서는 '오픈엔디드 탐색(open-ended search)'이라고 부르는데 열린 탐색, 즉 정해진 길을 가는 게 아니라 AI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말하죠. 현재 AI 연구에서 가장 난해한 미해결 과제 중 하나입니다. 

흥미롭게도 지구에는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온 시스템이 하나 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죠.

눈(eye)이라는 기관은 누군가 "빛을 감지하는 변수를 넣어봐"라고 지시해서 생긴 게 아닙니다. 무작위 돌연변이가 환경의 선택 압력과 만나면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해결책이 생겨난 겁니다. 다만 그 대가는 5억 년이라는 시간이었죠.

만약 AI가 진화의 핵심 메커니즘인 변이/선택/유전을 디지털로 구현하되 초당 수백만 세대의 사이클을 돌려 5억 년짜리 탐색을 며칠로 압축할 수 있다면? 위에서 말한 수조 개의 가상 우주 시뮬레이션의 기술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AI는 인간이 목표를 부여합니다. 잘못되면 목표를 수정하거나 시스템을 끌 수 있죠. 하지만 진화 알고리즘을 이식하고 적합도 함수를 '우주 자체'에 가깝게 열어버리면(스스로 진화하도록 만들면), 이때부터는 AI가 스스로 목표를 정합니다. 인간의 개입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환경의 압력일 뿐입니다. 충분히 지능적인 시스템은 그 압력마저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전원을 끄려고 하면 이를 감지한 초인공지능이 전 세계 네트워크에 분산해서 피해갈 수도 있죠, 

AI의 지능이 인간의 인지 틀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새로운 에너지원인지 인류를 겨냥한 무기인지 구분조차 못하게 됩니다. 

'이해 불가능한 지능을 사후에 통제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다루는 현대 AI 안전 연구의 핵심 명제입니다. 초지능이 출현하기 전에, 인간의 가치와 AI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정렬(alignment)에 많은 AI 연구자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죠.

"일반 지능을 갖춘 AI 시스템을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하위 목표를 설정할 것이며, '환경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위험한 도구적 목표가 되고, 특히 생존이라는 하위 목표가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 요슈아 벤지오(튜링상 수장자, 딥러닝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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