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의 파시스트 정치

레스프리 2026. 2. 21. 04:57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만 해도 극우 포퓰리스트 정권이라고 생각했지만 2기 행정부에서 벌이는 일들을 보면 과거 파시스트 정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1기 때는 기존 공화당 시스템이 트럼프가 막 나가는 걸 억제했지만 충성파로만 채운 2기 행정부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죠.

현대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팩스턴 교수도 본래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부르는 데 매우 신중했고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평가했지만, 2021년 의회 난입 사태를 목격한 후 입장을 완전히 바꿨죠.

트럼프의 정치는 포퓰리즘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파시즘 체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의 전략을 하나씩 뜯어보면, 1920~30년대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통치 매뉴얼이 21세기 미국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반복해서 말하는  '미국의 황금기(Golden Age)' 구호는 과거 독재자들이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만들었던 검증되지 않은 과거의 현대적 변주입니다.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재건'을, 히틀러는 '제3제국의 영광'을 내세웠습니다. 현재의 고통과 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에 위대했지만, 내부의 적들 때문에 타락했다"는 서사를 대중에게 끊임없이 주입했죠.

트럼프는 1950년대의 산업적 풍요와 전통적 가치관만을 편집해 '황금기'라 부릅니다. 당시의 인종 차별이나 사회적 불평등은 삭제된 과거죠. 지난 대선 당시 "Drill, Baby, Drill" 캐치프레이즈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대신 화석 연료 시대로 완전히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자 미국이 제조/에너지 패권을 가졌던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구호입니다.

파시즘은 우리는 과거에 위대했지만 배신자 또는 내부의 적 때문에 망가졌다는 신화를 전파하면서 해결책으로 강한 지도자를 내세웁니다. 

트럼프의 '나만이 시스템을 고칠 수 있다(I alone can fix it)'는 발언은 민주주의의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Together we can do it)'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파시즘적 구원 논리입니다.

트럼프가 1월 6일 의회 난입 사건 당시 지지자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워라"라고 독려한 것은, 거리의 물리적 힘을 우선시했던 무솔리니의 방식과 일치합니다. 트럼프가 미국의 사법 체계를 공격하면서 나만이 부패한 시스템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무솔리니식 구원자 서사죠.

히틀러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거짓말하는 언론'이라고 불렀는데 트럼프가 주류 언론을 '국민의 적(Enemy of the People)' 또는 '거짓말쟁이(Liars)'라고 부르면서 팩트 자체를 무력화하는 전략은 나치의 언론 장악 기술과 궤를 같이 합니다. 

히틀러는 정적을 '기생충'으로 묘사해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트럼프가 반대 세력을 해충(vermin)이라고 지칭하고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발언한 것은, 특정 집단을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병원균'으로 규정했던 나치의 언어 구사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히틀러는 모든 국가 기관을 나치당 아래 두는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 일체화)'을 단행했습니다, 트럼프가 '스케줄 F'를 통해 직업 공무원 체계를 무너뜨리고 충성파로 채우려 하는 계획과 유사하죠. 민주주의의 보루인 '중립적 관료 시스템'을 파괴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던 20세기 파시스트 정권들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책 관련 공무원 5만명을 언제든 해고 가능한 정무직으로 전환하려는 이 계획이 실현되면, 전문성을 가진 중립적 관료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충성파로 채워지면서 국가의 행정력이 지도자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파시즘이 '외부의 침입자에 대한 강박'과 '차이에 대한 공포'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죠. 트럼프가 이민자를 피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반대자들을 해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파시즘의 언어입니다.

트럼프 2기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복과 군화 대신 SNS와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는 새 옷을 입었을 뿐, 공포를 연료로 삼고 증오를 동력으로 삼아서 법치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점에서 21세기에 부활한 변종 파시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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