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은 전 세계에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단번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기술에 민감한 일부 정부와 기업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AI의 가능성과 위험성 모두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패권 경쟁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었다.
기술에서 전략으로
AI는 원래 군사기술의 일부였다. 미국은 냉전 시절부터 AI에 투자해왔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데이터, 연산력, 알고리즘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면서 본격적인 기술 상용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2012년, 토론토 대학의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일리야 수츠케버, 제프리 힌튼 연구팀이 발표한 딥러닝 기반 이미지 분류 모델 알렉스넷(AlexNet)은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들이 AI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기술이 전략으로 전환된 건 그보다 조금 뒤였다. 2017년 7월 20일, 중국은 '신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세계 AI 패권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American AI Initiative'를 발표했다. AI는 더 이상 민간 기업의 실험이 아닌,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선점자는 누구였나
AI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책적으로 가장 먼저 명확한 로드맵을 내놓은 나라는 오히려 캐나다였다.
2017년 3월 22일, 캐나다는 세계 최초의 국가 AI 전략인 '범캐나다 AI 전략(Pan-Canadian Artificial Intelligence Strategy)'을 1억 2,500만 달러 규모로 발표했다. 몬트리올, 토론토, 에드먼턴 등 AI 연구의 거점을 강화하고, 연구자 유치를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이 전략은 오히려 이후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 전략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 풀과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강점으로 삼아 AI 개발에 속도를 냈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같은 민간 대기업은 국방 및 공공 분야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얼굴 인식이나 감시 기술은 빠르게 고도화됐다. 이 점에서 중국의 AI 전략은 '감시 기술'과 '국가 효율성'이라는 맥락에서 전개됐고, 미국의 자유주의 모델과는 다른 경로를 걷고 있었다.
AI는 왜 패권 기술인가
AI가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패권 기술'로 간주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AI는 군사·안보 영역에서 결정적인 기술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자율 무기, 감시 시스템, 사이버 방어 등에 모두 AI가 핵심 요소로 들어간다. 둘째, AI는 플랫폼 지배력과 결합되면서 글로벌 규칙 설정에 영향을 미친다. 빅테크가 장악한 알고리즘은 글로벌 여론, 소비 패턴, 정치적 선호에까지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AI는 '연결된 기술'이다. AI는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반도체, 클라우드, 통신 인프라, 데이터 주권과 모두 연결돼 있으며, 하나의 기술을 선점하면 연쇄적으로 여러 산업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AI 기술을 장악하는 것은 곧 산업 전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 지금인가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AI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2022년 OpenAI가 ChatGPT를 출시한 이후, 파운데이션 모델과 대형언어모델(LLM)은 기술의 최전선이자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이를 중심으로 '민관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LLM 규제와 동시에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AI 윤리와 법제화로 대응하고 있고, 한국과 프랑스, UAE 같은 중견국들은 '소버린 AI'라는 독자 노선을 준비 중이다. 기술은 동일하지만, 접근 방식은 국가마다 달라지고 있다. 이는 곧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철학과 체제, 전략이 반영된 총체적 시스템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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