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괄과 마속

레스프리 2026. 2. 21. 06:17

기원전 260년 장평 전투 당시, 조나라 효성왕은 진나라와의 장기전에서 오는 보급난과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젊은 왕은 결국 방어전을 고수하던 노장 염파를 해임하고, 병법 이론에 정통하기로 이름난 조괄을 사령관으로 앉히는 패착을 두었죠.

조괄은 '병서의 천재'였지만, 정작 명장이었던 그의 아버지 조사는 "아들이 장수가 되면 조나라 군대를 망칠 것"이라 경고했고, 그의 어머니조차 효성왕에게 직접 상소하여 기용을 반대했습니다. 전장에 부임한 조괄은 염파의 견고한 방어선을 전면 폐기하고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백전노장인 진나라 백기의 거짓 후퇴와 유인책이라는 '실전의 변수'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40만에 달하는 조나라 대군이 포위망에 갇혀 괴멸했고, 조나라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숫자는 고대 사서의 특성상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학계에서는 실제 규모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조나라가 회복 불가능한 규모의 병력을 단 한 번의 전투로 상실했다는 사실이죠.


기원전 260년 장평과 서기 228년 가정, 약 49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국가 지도자가 놀라울 만큼 비슷한 인사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조나라 효성왕은 조괄을, 제갈량은 마속을 기용했죠. 두 인물 모두 병법 이론에 밝은 인재였고, 실전 지휘 경험이 전무했으며,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죠.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전황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충지 가정의 방어 역시 실전 경험이 없는 마속에게 맡겨졌습니다. 진중의 여론은 위연이나 오의 같은 숙장을 보내야 한다는 쪽이었지만, 제갈량은 마속을 고집했습니다.  마속은 평소에도 병법 이론에 정통한 인재로 유명했고 남만 정벌 때는 "마음을 공략하라(攻心為上)"는 탁월한 전략적 통찰을 보여준 바 있었죠. 정사 기록에 따르면, 유비가 마속을 두고 "말이 실제보다 과장되니 크게 쓰지 말라고(言過其實, 不可大用)"고 경고했지만, 개인적인 신뢰가 냉정한 인사 판단을 흐린 셈입니다.

현장에 투입된 마속은 "고지를 점령하면 유리하다"는 병법의 원칙에만 매몰되었습니다. 부장 왕평이 산에 오르면 수원이 끊길 것이라며 만류를 거듭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결과는 위나라 장합의 포위와 식수 차단에 이은 촉군의 허망한 궤멸이었죠. 이 단 한 번의 오판으로 제갈량은 군대를 물려야 했습니다.

효성왕과 제갈량의 인사 실패는 기본적으로 '지도 위의 전략'과 '전장의 지휘'를 혼동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참모는 통제된 회의실에서 최적의 수를 찾지만, 현장 지휘관은 정보가 왜곡되고 공포가 지배하는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즉각적인 결단을 내리고 책임져야 합니다.

이렇듯 이론에 밝고 현장 경험이 없는 인재들이 빚어낸 참극이 현대에도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되어 왔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그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포드 자동차 사장 출신으로 통계적 경영 기법의 달인이었던 그는 전쟁이라는 극도의 불확실성을 계량 모델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장 지휘관들의 보고를 묵살하고 '사상자 수'라는 정량적 통계만으로 승패를 재단하다가 뼈아픈 패배를 겪었죠. 소위 '맥나마라의 오류(McNamara Fallacy)'입니다. 

측정할 수 있는 것만 중시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이 사고방식은 병서에 적힌 원칙만 절대시하고 전장의 불확실성을 무시한 조괄 및 마속의 태도와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맥나마라는 이론과 지표 분석의 전문가였지만, 전장의 불확실성은 스프레드시트 밖에서 존재하죠.

이 고전적이며 현대적인 실패 사례들은 AI 시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최적의 전략을 제시하는 데 탁월합니다. 완벽하게 병서를 외운 조괄이자, 정세 분석에 능한 마속 같은 참모죠. 그렇다면 조직은 AI에게 현장 지휘와 최종 결정도 온전히 맡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조괄은 전사했고, 마속은 참수당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결정에 목숨을 거는 책임감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한 이유는 '실전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AI는 그 조괄과 마속이 가졌던 최소한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심 탈레브가 강조한 'Skin in the Game'의 핵심은 의사결정자가 자신의 결정에 따른 하방 리스크(Downside Risk)를 직접 감수할 때, 판단의 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실패의 대가를 몸으로 치르는 사람은 이론적으로 최적인 답이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견고한 판단을 내립니다. 전장에서 지휘관의 판단이 무거운 이유는, 바로 그 판단이 자신과 조직의 운명을 동시에 결정하기 때문이죠. AI에게는 이 무게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위기는 AI의 분석이 틀렸을 때가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AI가 제시하는 정량적인 지표에 취해 '현장의 안개'를 무시하고 현장 지휘권을 통째로 넘겨버릴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괄과 마속이 빚어낸 비극의 본질이 사실은 그들을 사령관 자리에 앉힌 효성왕과 제갈량의 뼈아픈 인사 참사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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