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 동시대를 노래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사교계 여성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베르디의 대표작이다. 1853년 초연 당시,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사교계 여성이 주인공이고, 배경이 동시대였으며, 교훈적 결말 대신 개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부르주아 계층이 오페라의 주 관객이 되던 시대에 베르디는 과감하게 당대의 현실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이 ‘동시대성’은 초연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853년 베니스에서 열린 초연에서 베르디는 무대와 의상을 모두 당시 유행하던 복식으로 설정했지만, 당국과 보수적 관객들은 “매춘부의 이야기를 현재 복장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검열과 여론의 압박 속에서 작품의 시대 배경은 18세기 초반으로, 의상 역시 1700년대 스타일로 변경됐다. 베르디는 “현대적인 주제를 현대 복장으로 공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불만을 표했지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막은 비올레타의 살롱에서 열리는 화려한 파티로 시작한다. 청춘과 열정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경쾌한 왈츠 리듬의 브린디지 〈Libiamo ne' lieti calici〉(축배의 노래)가 유명하다. 브린디지는 이탈리아어로 건배를 뜻하는 단어이고, 오페라에서 축배의 노래를 의미한다.
https://youtu.be/gLnfVdwv9ls?si=7i2CRkL-D0Hq5qmu
알프레도와의 만남 후 비올레타가 부르는 〈Ah! fors'è lui〉는 "아, 어쩌면 그 사람이..."라며 서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한다다. 느린 템포와 부드러운 선율은 그녀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이어지는 〈Sempre libera〉에서는 내림나장조로 갑작스럽게 전환되면서 콜로라투라 기법을 통해 빠르고 화려한 선율이 전개된다. 비올레타는 언제나 자유롭게 살겠다고 선언하지만, 아리아 도중에 알프레도가 부르는 〈Amor è palpito〉의 테너 선율이 삽입된다. 외면적으로는 사랑을 거부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이미 알프레도에게 사로잡혔음을 선율이 말해준다.
https://youtu.be/CYZngjS04SI?si=WopTLYy3CnIwuKay
2막 1장은 파리 근교의 조용한 별장이 배경이고,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함께 평화로운 전원 생활을 보낸다다. 알프레도의 〈De' miei bollenti spiriti〉는 젊은 사랑의 열정을 밝은 선율로 노래한다.
하지만,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등장과 함께 분위기는 급격히 무거워진다. 〈Pura siccome un angelo〉에서 제르몽은 느린 템포와 반복되는 단순한 선율로 도덕적 압박을 가한다. 그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규범을 말하고, 음악 역시 딱딱한 화성과 직선적인 진행으로 사회적 권위를 표현한다.
비올레타는 제르몽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Dite alla giovine〉을 부른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위주의 절제된 편성으로 비올레타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한다. 비올레타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지만 관현악이 그녀의 복잡한 심정을 대신해서 전달한다. 베르디는 이런 음악 심리적인 효과에 능숙한 작곡가였다.
https://youtu.be/wF6ku79i_LU?si=-QSi7CJSfhd4q_qC
2막 2장의 파티 장면에서 〈Invitato a qui seguirmi〉는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와 작별을 연기하는 순간이다. 베르몽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비올레타의 진심을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3막의 공간적 배경은 비올레타의 침실이고, 서곡에서 들렸던 주제 선율이 느리고 무겁게 다시 등장한다. 비올레타는 제르몽의 편지를 읽으며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올레타의 마지막 아리아 〈Addio del passato〉는 내림마단조, 느린 템포로 구성되어 있다. 좁은 음역 내에서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마치 선율이 멈춰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올레타가 절망 속에서 체념하고 있는 정서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https://youtu.be/qiZ7ReVrwmw?si=Pkx4wTwQ56iTkra1
뒤이어 알프레도와 함께 부르는 〈Parigi, o cara〉는 다시 희망이 피어나는 듯 보이지만, 음악은 이룰 수 없는 환상임을 암시한다. 마지막 듀엣은 희망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베르디는 관현악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드러낸다. 서곡의 현악기 약음기는 비올레타의 병약함을 미리 암시하고, 1막에서 3막으로 갈수록 같은 선율이 점점 느려지고 무거워진다.
특히, 비올레타 테마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변주되는데, 1막에서 처음 등장한 비올레타 테마는 3막에서 훨씬 느리고 쓸쓸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면서, 음악만으로도 그녀의 변화된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비올레타는 실존 인물 마리 뒤플레시(1824–1847)를 바탕으로 한다. 원작자 뒤마 피스와 가까웠던 그녀는 문학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 당시 '쿠르티쟌느'라 불린 그들은 단순한 고급 창녀가 아니라 궁정 사교계의 지적인 여성들이었다. 마리는 경제적으로 독립했지만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았고,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