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섹스 심볼: 성적 이미지의 탄생과 변주
20세기 중반 ‘섹스 심볼(sex symbol)’이라는 말은 단순한 미인이나 인기 배우를 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대 대중이 집단적으로 투사한 욕망과 질서의 상징이었다. 특히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여성 스타의 이미지는 단지 성적 매력이 아니라, 시대가 규정한 여성성과 사회 구조를 압축한 문화적 기호였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며, 이 기호는 점점 해체되고 있다. 고전 할리우드에서 디지털 시대까지, 섹스 심볼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고전 할리우드와 ‘기획된 여성성’
‘섹스 심볼’이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40~60년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중산층 중심의 문화 확산을 경험했고, 영화 산업은 이 흐름을 선도했다. 당시 할리우드는 배우의 외모와 성적 이미지를 철저히 기획했다. 금발, 도톰한 입술, 볼륨감 있는 몸매, 무해하면서도 유혹적인 표정. 이 모든 요소는 연기력보다 우선시되는 스타의 조건이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인물은 마릴린 먼로였다. 그녀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만든 전형적 섹스 심볼의 완성형이었다.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 치마가 날리는 장면은 미국 문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각적 클리셰로 남았다. 하지만 실제의 마릴린, 즉 노마 진은 끊임없는 우울과 자기 의심, 연기자로서의 인정 욕망에 시달렸다. 그녀는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였고, 그 이미지가 흔들릴 때 산업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버렸다.
이러한 섹스 심볼은 영화 속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광고, 잡지, 심지어 정치적 상징으로까지 기능했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보기 좋은’ 외모는 여성의 존재 이유이자 산업적 자산으로 취급됐다. 제인 러셀, 리타 헤이워스, 라켈 웰치 같은 배우들 역시 비슷한 이미지 전략 속에 포지셔닝되었다.
변화의 조짐과 페미니즘의 충돌
1970년대 이후, 상황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성 해방 운동과 제2물결 페미니즘은 섹스 심볼이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누가 그 이미지를 규정하고, 누구의 시선으로 소비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등장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하는 방식이 더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일부 배우들은 섹스 심볼의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전유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을 통해 성적 긴장을 통제하고 반전시키는 인물로 등장했고, 마돈나는 자기 몸을 무대 위에서 스스로 기획하는 퍼포머로 기능했다. 섹스 심볼은 더 이상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 주체’라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안젤리나 이후
2000년대 들어, 안젤리나 졸리는 또 다른 형태의 섹스 심볼을 대표했다. 전통적 미인상에 기반한 외모를 지녔지만, 동시에 사회운동가, 입양모, 액션 히어로, 유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복합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에게서 성적 매력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층성이 있었다. 이 시기의 섹스 심볼은 단순한 이상형이 아니라, ‘경계를 넘는 인물’로서 등장했다.
남성 배우들도 섹스 심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라이언 고슬링 같은 인물들은 ‘섹시함’과 ‘감성’ ‘유머감각’ 등을 함께 지닌 존재로 그려졌다. 남성적 매력 또한 단일한 근육 이미지에서 벗어나 점차 다원화되었다.
디지털 시대와 섹스 심볼의 해체
2010년대 이후, SNS의 확산은 섹스 심볼 개념의 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과거에는 영화사와 잡지가 배우의 이미지를 통제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유튜브 채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배우는 더 이상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 팔로워와 소통하는 동적 존재로 작동한다. 이미지의 권력이 분산되면서 섹스 심볼이라는 개념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젠더와 성적 지향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젠다야, 팀시 샬라메, 해리 스타일스 같은 인물들은 고전적 성 역할을 거부하고, 성 중립적인 미학을 수용한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이들에게서 섹시함은 근육이나 노출이 아니라, 태도와 감성, 연약함과 자유로움의 균형 같은 요소로 전이되었다.
동시에 빌리 아일리시처럼 ‘성적 평가를 거부하는’ 이미지를 선택한 인물도 등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몸에 대해 사람들이 판단할 수 없도록 옷을 입는다”고 말하며, 무채색 오버사이즈 의상으로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고 기획했다. 이 또한 새로운 시대의 섹스 심볼—혹은 그 대안적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섹스 심볼은 사라졌는가?
오늘날 섹스 심볼이라는 단어는 과거처럼 자주 쓰이지 않는다. 그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기보다는,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섹스 심볼은 이제 하나의 이상형을 강요하지 않고, 사회가 선택적으로 소비하고 실험하는 일종의 프레임에 가깝다.
단일한 미의 기준은 사라지고, ‘어떤 이미지가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섹시하게 여겨지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고전 할리우드가 만들었던 절대적 기준은 이제 플랫폼 속에서 쪼개지고, 해체되고, 다시 조합된다.
섹스 심볼은 더 이상 ‘누구’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갔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시선과 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